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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고양]희정공 성억 묘, 성세정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1. 30. 10:00

    희정공 성억 묘, 성세정 묘

     

    성억선생 묘는 여러번 다녀왔다. 성녕대군 묘가 앞에 있어서 그의 장인이 되시는 성억선생묘를 함께 묶어 답사를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갔더니 신도비를 새로 세웠고 성억선생 묘 밑에 후손 묘를 옮기려는지 절개를 하고 있었다. 단면을

    잘 보시면 알겠지만 흙속에 돌이 섞여있어서 유골안으로 바람이 들어가서 풍렴이 든다고 되어있다. 지금 몇백년이 지나서

    유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은 아니다. 가을에 찍은 사진이라 겸사겸사해서 새로 올린다.

    성억(成抑)
    1386년(우왕 12)∼1448년(세종 30).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판도사총랑(版圖司摠郞) 성군미(成君美)의 증손이고, 정당문학(政堂文學) 성여완(成汝完)의 손자이며, 예조판서 성석연(成石珚)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공정고주부(供正庫注簿)가 되고 감찰·공조정랑·공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414년(태종 14) 군자시부정·대호군을 거쳐 1416년에 동부대언(同副代言)·좌군사지총제(左軍司知摠制) 등을 역임하였다.
    1414년에 딸이 태종의 넷째 아들인 성녕대군(誠寧大君)에게 출가하여 경녕옹주(敬寧翁主)로 봉해지고, 1418년에 성녕대군이 홍역으로 14세에 요절하자, 태종이 애통히 여겨 그의 일족을 공신의 예로 대우하게 하였다. 이로써, 성씨일문은 조선의 명가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1421년(세종 3) 집현전부제학, 이듬해 전라도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공조참판, 1427년 우군도총제(右軍都摠制)·공조판서를 거쳐 1431년 중군도총제가 되었다.
    이때 호군 최성(崔成)과 순청(巡廳)에서 큰 소리로 싸운 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나 외척이라 하여 용서받았다.
    1439년 우찬성·중추원사(中樞院使)를 역임하였다.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희정(僖靖)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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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49호
       희정공 성억 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27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27
       창녕성씨


     

     

     

     

     

     

     

     

     

     

    ▼ 희정공 성억선생 신도비..

    ▼ 희정공 성억선생 묘소 안내판

    ▼ 희정공 성억선생 묘 앞면을 깎아 묘터를 조성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풍렴(바람)을 맞는다고한다.

    ▼ 희정공 성억선생 묘 전경

    ▼ 희정공 성억선생 묘표

    ▼ 희정공 성억선생 묘 장명등..

    ▼ 성억선생 묘 석물

     

     

    ▼ 희정공 성억선생 묘 둘레석.. 네모난 형태다..

     

    ▼ 희정공 성억선생 묘 후경

     

    ▼ 성억선생의 증손 대사헌 성세정 묘 전경

    ▼ 대사헌 성세정 묘

     

    ▼ 대사헌 성세정 묘비

    ▼ 대사헌 성세정 묘표

    ▼ 대사헌 성세정 배위 정부인 남양홍씨 묘표

    ▼ 대사헌 성세정 묘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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