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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은평]세종대왕 9자 화의군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2. 22. 10:00

    세종대왕 9자 화의군 묘

     

    북한산둘레길 마실길을 걷다보면 은평뉴타운을 지나 진관사 입구에 이르면 왼편에 커다란 묘역이 보인다. 

    얼른봐도 왕가묘역인 것으로 보인다. 둘레길을 답사할 때는 시간이 부족하여 그곳을 방문하지 못했는데 

    은평구 답사시에 찾아갔다.

    그런데 화의군 묘역은 열쇠로 단단히 잠겨져있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무색할 정도이다.

    재실에도 사람이 없는지 몇 사람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른다고만 답한다. 열쇠는 언제 열어주는지...?

    화의군은 그 이력을 보면 여자문제로 아주 화려하다. 왕가에서도 몇번씩이나 고신이 몰수되고 가산이 

    적몰당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의리는 있어서  단종복위에 참가하였는데 그 때문에 나중에 신원이 복위된 

    것이다.

    사람이 한가지는 줏대가 있어야 그 덕에 생명도 부지되고 후손도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

    화의군(和義君)
    1425년(세종 7)∼미상. 조선 제4대 왕 세종의 아홉째 왕자.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영(李瓔). 자는 양지(良之).
    어머니는 영빈 강씨(令嬪姜氏)이다. 박중손(朴仲孫)의 사위로 박팽년(朴彭年)의 매부이다.
    1433년(세종 15) 화의군에 봉해지고, 1436년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441년 임영대군(臨瀛大君)과 함께 민간 여인에게 남복(男服)을 입혀 궁내로 들이려다가 수문장에게 발각되어 직첩과 과전을 몰수당하였다. 1447년 다시 화의군에 봉해졌고, 1449년 조관(朝官)의 기첩을 빼앗은 사건으로 다시 직첩이 몰수되었다가 1450년(문종 즉위) 다시 화의군에 봉해졌다.
    1455년(단종 3) 평원대군(平原大君)의 첩 초요경(楚腰輕)과 사통한 사건이 발각되면서 또다시 고신을 몰수당하고 경기도에 부처(付處)되었다가, 곧 방면되었다.
    같은해 세조가 즉위하면서 대간(臺諫)으로부터 금성대군(錦城大君)·혜빈양씨(惠嬪楊氏)와 결탁하여 국기(國基)를 어지럽혔다는 탄핵을 받고 외방에 부처되었다가 1456년 사면되고, 같은해 상왕(上王: 단종) 복위사건에 참가한 뒤에 가산을 적몰당하고 고신을 회수당한 뒤 전라도 금산에 안치되었다.
    1457년 순흥에 유배되어 있던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단종복위운동을 도모하였다가 사사(賜死)되고 영월에 방출된 노산군(魯山君: 단종)이 교살(絞殺)되자 이에 연루되었다.
    1482년(성종 13) 윤사흔(尹士昕)의 탄핵으로 외방종편(外方從便)되었고, 1484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유교(遺敎)에 따라 경외종편되었다.
    그뒤 《선원록(璿源錄)》에 이름만 오르고 직이 삭제되었던 것을, 1518년(중종 13) 손자 이윤(李綸)의 요청으로 관작이 추복되고 자손도 종친록에 추록되었다.
    품행은 문란하였지만 절의가 있었고, 초서와 예서에 능하였다. 일찍이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세종대의 한글 창제에도 깊이 관여하였으며, 훈민정음처의 감독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791년(정조 15) 장릉(莊陵)에 배식단(配食壇)을 구축하면서 단종조의 충절이 인정되어 정단(正壇)에 배식되었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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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4호 
       화의군 이영 묘역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산42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산42
       전주이씨 화의군파종회


     

    이 묘역은 조선 제4대 왕인 세종(世宗)의 아들로 단종(端宗의)의 복위 운동에 가담하여 세조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화의군 이영의 분묘가 자리한 곳이다.
    화의군 이영은 제4대왕 세종의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며,어머니는 영빈 강씨이며 후에 박중손(朴仲孫)의 사위가 되었다. 사육신 박팽년의 매부이기도 하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단종 복위사건에 참가하여 전라도 금산에 안치되었다. 종친으로서는 드물게 단종 복위운동에 참여하는 등 절의로 이름 있는 화의군의 묘역으로 선조~영조 연간의 묘제(墓制)와 석물(石物) 조각 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화의군의 묘소와 사당인 충경사(忠景祠)와 제실(祭室), 그리고 신도비(神道碑)와 홍살문(紅箭門)이 자리하고 있다. .

    <서울시 은평구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인용>

     

     

     

     

     















    ▼ 화의군 이영 사당 전경.. 

    ▼ 화의군 이영 묘역 문화재 안내판... 이런 안내판은 보기는 좋을지 몰라도 사진촬영은 엉망..

    ▼ 화의군 신도비

    ▼ 화의군 사당 충경사..

    ▼ 화의군 이영 묘역... 열쇠가 굳게 잠겨져 있다..

    ▼ 철망 너머로 간신히 촬영을 한다.

     

    ▼ 화의군 묘역... 철망너머로 찍다보니 측경만 찍었다...

     

     

    ▼ 화의군 묘역 정면사진이 없어서 다음카페에서 퍼왔다.( http://cafe.daum.net/ew7530)

    ▼ 화의군 묘표...(은평구 문화관광사이트에서 퍼옴) 

    ▼ 화의군 묘역에 있는 후손들 묘

    ▼ 화의군 묘역 올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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