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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안산]최용신 선생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5. 29. 10:00


    최용신 선생 묘


    상록수의 작가 심훈보다 여주인공으로 소설에 나오는 채영신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최용신 선생이 오히려 더 알려져 있다. 좀 특이한 경우이다. 안산시는 단원구와 상록구가 있을 정도로 문화와 무척 관계가 깊은 도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원 김홍도와 심훈의 상록수... 회화와 소설... 여러모로 문화 도시 같다는 생각이 많이든다. 그런데 최소한 능원묘 답사객으로서 보건데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일부 묘지가 철조망과 자물쇠로 잠겨있어 답사를 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고 입구에 연락처도 없다. 너뎃군데를 그냥 허탕치고 돌아왔는데(정정옹주,최정걸,최혼...) 이런곳은 문화재 지정을 취소 하든지 아니면 항시 개방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문화재 지정이 취소되면 우리같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갈 필요도 없을테니 말이다.

    최용신선생 묘는 기념관 뒷편에 모셔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옆에 남편이 아닌 약혼자김학준 교수 묘가 있다. 김교수 묘를 보니 본인이 최용신 선생 묘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으로 말하여 이곳으로 이장을 했다 한다. 묘비 뒷편에 미망인 길여사 이름도 나오는데 조금은 특이한 경우라 고개가 갸우뚱 거린다.

    이곳을 답사하려면 시간의 여유를 갖고 기념관도 들러보고 조각품과 기념물을 천천히 둘러보고 와야할 것 같다. 시간에 쫓겨 묘소만 대충보고 왔더니 별로 쓸 내용이 없다. 

    사진으로 현장 분위기만 소개해 올린다..



    최용신(崔容信)


    1909년∼1935년. 농촌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함경남도 원산 출신. 아버지는 최창희(崔昌熙)이다.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협성여자신학교 농촌과에 재학하면서 농촌계몽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황에스터의 지도로 농촌운동 이론을 터득하는 한편, 1930년 황해도 수안에서 동료 김노득과 함께 3개월 동안 실제적인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학교를 중퇴하고 농촌운동에 전념할 것을 결심, 감리교선교사 밀러(Miller)의 후원을 받고 파송단체는 YMCA 소속으로 하여 경기도 화성군 샘골에서 농촌교육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야학으로 시작하였으나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정식 교사를 지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촌어린이들을 가르쳤다.

    교육내용은 문맹퇴치를 위한 한글 강습뿐만 아니라 산술‧보건 및 농촌생활에 필요한 상식과 기술, 애국심과 자립심을 북돋우는 의식계몽 등에 힘을 기울였다. 당시 김활란(金活蘭) 등은 샘골에서의 최용신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여러 방면으로 지원하기도 하였다.

    1934년 일본 고베신학교(神戶神學校)에 유학하였으나 신병으로 귀국하였고, 샘골에서 휴양하면서 농촌교육을 계속 전개하다가 장중첩(腸重疊)으로 죽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6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는 용신봉사상(容信奉仕賞)을 제정하여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심훈(沈薰)의 소설〈상록수〉의 무대가 된 곳이 샘골이며, 여주인공 채영신(蔡永信)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최용신은 국권상실기의 암울한 시대에 여성의 몸으로 농촌계몽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하여 순교자적인 활동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안산시 향토유적 제18호

    문화재명칭

    최용신 선생 묘

    소재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879-4

    관리자(연락처)

    안산시청


    최용신(崔容信)


    심훈이 「상록수」에서 '청석골'이라 부른 마을이 바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의 샘골 마을이다. 또한 농촌의 문맹퇴치를 위해 야학에 온힘을 기울이는〈채영신〉이란 여자주인공은 일생을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한 최용신(崔容信)의 실제인물이다. 최용신은 서기 1909년 8월 함경남도 원산읍 두남리에서 최창희(崔昌熙)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시절은 대단히 곤궁한 생활속에서 살았지만 신앙심이 깊어 열심히 교회를 다녔으며, 그로인해 루씨(樓氏) 여자보통학교와 루씨여자고등학교를 나왔다. 서울에 있는 감리교 협성신학교 졸업을 1년 앞둔 1931년 10월 최용신은 학업을 중단하고 샘골마을로 농촌계몽운동을 하기 위해 내려왔다.

    가난하고 무지몽매한 농촌 사람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과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조그만 예배당 샘골교회를 빌어 농촌계몽운둥을 시작한 것은 10월 2일이었다.지원생은 많고 장소는 협소하여 오전, 오후, 저녁 3부제로 밤늦도록 가르쳤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무관심속에 냉대도 많이 받았으나 차츰 동네사람들의 환심을 얻어 최용신은 이 지방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 이 마을에서 농촌계몽운동을 실천에 옮긴 선구자였다. 그 후 유학중에 얻은 병과 과로가 겹쳐 1935년 1월 23일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샘골마을 주민들의 지극한 병간호를 외면하고 꽃다운 나이 26세에 그녀가 그리던 고통과 근심이 없는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최용신의 나이 26세 꽃다운 청춘이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지난 1974년 11월 30일 루씨동문과 천곡교회에서 상록수 최용신 선생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으며,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안산시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


    ▼ 최용신 선생 묘 안내판

    ▼ 최용신 기념관 입구... 이곳으로 올라가면 묘소가 나온다.

    ▼ 최용신 기념관 올라가는 계단 옆에 상록수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조각이 있다.

     

    ▼ 최용신 선생 묘 전경

    ▼ 최용신 선생 묘 옆에 있는 김학준 교수 묘... 묘비 옆에 상록수약혼자로 적혀있다.

    ▼ 최용신 선생 묘 아랫쪽에 최용신선생 어록이 적혀있다.

    ▼ 최용신 선생 묘역 전경.. 전형적인 묘역 배치와는 반대지만 주인공이 최용신 선생이니 어쩌면

    맞는 배치일것 같다.

    ▼ 최용신 선생 묘.. 앞에서 봤을 때 왼편이 최용신선생, 오른편이 김학준교수 묘..

    ▼ 최용신 선생 묘 옆모습

    ▼ 최용신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세운 추모비...

     

    ▼ 최용신 선생 묘역 후경

     

     

     

    ▼ 최용신 기념관에 세워진 어록...

    ▼ 상록수 작가 심훈선생 문학기념비

    ▼ 최용신 기념관 모습

     

    ▼ 최용신 선생을 기리는 기념비... 1974년도에 세웠다.

     

    ▼ 최용신 선생이 다녔던 샘골교회 100주년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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