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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양주]양주 남양홍씨 후손묘(홍경손,홍춘경,홍춘년,홍처량)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6. 9. 10:00

    양주 남양홍씨 후손묘(홍경손,홍춘경,홍춘년,홍처량)


    홍지선생 묘가 있는 양주 남면은 남양홍씨 당홍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묘가 있다. 지난번 소개한 화성 

    서신면에 남양홍씨 토홍계 인물들이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

    이곳에는 홍지선생을 위시하여 홍춘경, 홍서봉 등의 인물들의 묘역이 있는 곳이다. 

    홍지선생과 홍서봉선생 묘역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별도로 답사기를 올리고 나머지 후손들은 한번에 

    소개를 하니 이해 바란다.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양주 남양홍씨 후손묘(홍경손,홍춘경,홍춘년,홍처량)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산55-1
      남양홍씨

     

     

     

     

     

     

     

     

     

     

    양주 남양홍씨(당홍계) 가계도
    홍상부
    전법좌랑
      홍지
    사재감직장
      홍경손
    첨지중추부사
      홍윤정   홍계정   홍춘경
    관찰사
      홍천민   홍서봉
    영의정
      홍춘년
    관찰사
      홍서룡   홍명현   홍처량
    이조판서

      

    ▼ 남양홍씨 묘역이 있는 양주 위성도와 물길...

    ▼ 홍서봉선생 묘 맥선도

    ▼ 양주 남양홍씨(당홍계)묘역

    홍경손(洪敬孫)
    1409년(태종 9)∼1481년(성종 1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길보(吉甫), 호는 우국재(友菊齋).
    아버지는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 홍지(洪智)이며, 어머니는 고려 왕족인 수연대군(壽延大君) 왕규(王珪)의 딸이다.
    1435년(세종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1439년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보임되고, 이후 승문원의 저작‧박사를 역임하였다.
    1443년 남부령(南部令)을 거쳐 교리‧감찰 등을 지냈다.
    1445년 금구현령으로 나갔다가 1450년(문종 즉위) 삼군진무 겸 승문원교리(三軍鎭撫兼承文院校理), 1452년(단종 즉위) 경상도도사를 거쳐 1453년 형조정랑이 되어 악공(樂工) 독두이(禿豆伊)의 강도사건을 가벼이 다루었다고 추국되었으나 용서받았다.
    1455년(세조 1) 성균관사예가 되고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수원부사로 나갔다가 1461년 장령‧판사 등을 역임하였다.
    1472년(성종 3) 첨지중추부사 겸 동지성균관사에 발탁되고, 1478년 “오랫동안 성균관에 거하였으나 성취한 바가 없다.”는 비난을 받고 사직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인물이 출중하고 문학이 뛰어나 중용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왕씨의 외손이므로 용납되지 못하고, 한직(閑職)과 무직(武職)으로 일관하였다.
    저서로는 《충음시고(蟲吟詩稿)》‧《우국재집》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시‧문이 실려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 홍지선생의 아드님이신 홍경손 묘

    ▼ 홍경손 묘비와 석물

    ▼ 홍경손 묘역은 넓어 한꺼번에 한 프레임에 담기 어렵다. 

    ▼ 홍경손 묘비

    ▼ 홍경손 구 묘비

    ▼ 홍경손 구 묘표

    ▼ 홍경손 묘비...

    ▼ 홍경손 묘 백호쪽 석물... 뒷쪽으로 보이는 것이 연지이다..

    ▼ 홍경손 묘 후경

    ▼ 홍경손 묘 후경

    홍춘경(洪春卿)
    1497년(연산군 3)∼1548년(명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명중(明仲), 호는 석벽(石壁). 대교 홍계정(洪係貞)의 아들이다.
    1522년(중종 17) 사마를 거쳐, 152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저작‧정자를 지내고, 1536년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사성‧보덕‧집의를 거쳐 예조참의에 올랐다.
    1541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좌승지‧한성부우윤‧이조참의를 지내고, 1545년(인종 1) 중종의 지문(誌文)을 짓기도 하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권세에 굽히지 않았고, 또한 권세가의 집을 찾은 일이 없었다 한다. 글씨에 뛰어나 김생체(金生體)에 능하였다
    .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 홍춘경은 홍지선생의 고손이 되며 영의정 홍서봉의 조부가 된다. 묘는 홍지선생 묘역에 있다. 

    ▼ 홍춘경 묘 전경 

    ▼ 홍춘경 묘비 

    ▼ 홍춘경 묘 석물 

    ▼ 홍춘경 묘 석물... 

    ▼ 홍춘경 배위 강릉김씨 묘.. 홍지선생 묘 윗쪽에 있다. 

    ▼ 홍춘경 배위 강릉김씨 묘 전경

    ▼ 강릉김씨 묘표 뒷면 

    홍춘년(洪春年)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화중(和仲)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홍경손(洪敬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헌납 홍윤덕(洪潤德)이고, 아버지는 예문관대교 홍계정(洪係貞)이며, 어머니는 김기수(金期壽)의 딸이다. 형이 이조참의 홍춘경(洪春卿)이다. 1534년(중종 29)의 생원시와 진사시에 연이어 합격하였고, 1535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의 정자‧전경‧저작‧박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가 되었지만 사람됨이 경박하여 동궁(東宮)의 요속(僚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체직되었다. 그 뒤 1543년 종부시첨정으로서 춘추관의 관직을 겸임하였지만 다시 춘추관의 관원으로는 부적격이라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춘추관의 관직을 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중종실록》을 편찬할 때 장악원첨정으로서 편수관이 되어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군적낭청을 거쳐 1553년(명종 8) 성균관의 추천으로 사유(師儒)가 되었다. 실록에서 사관은 이에 대하여 성균관에서 그가 글을 잘 짓는다는 점을 들어 사유로 추천하였지만 사유는 단지 글재주만으로 뽑을 수는 없는 것이며 그가 김안로(金安老)에게 붙어 출세하려 하니 그 인품을 알 수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후 봉상시정을 거쳐 1567년 첨지중추부사로서 황후 책봉을 축하하기 위해 북경에 다녀왔으며, 나주목사와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 홍춘년 묘 전경.. 홍춘경의 아우이다. 

    ▼ 홍춘년 묘 전경

    ▼ 홍춘년 묘 청룡쪽

    ▼ 홍춘년 묘비

    ▼ 홍춘년 묘 석물

     

    홍처량(洪處亮)
    1607년(선조 40)∼1683년(숙종 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회(子晦), 호는 북정(北汀).
    아버지는 사재감첨정 홍명현(洪命顯)이며, 어머니는 참판 정용(鄭鎔)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교‧정언을 지내고, 1642년 진하사(進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43년 예조정랑, 이듬해 해운판관이 되었다.
    164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고, 1647년부터 수찬‧헌납‧이조좌랑‧교서관교리를 지내고, 1649년 정랑으로 승진하였다.  

    1650년(효종 1) 도청(都廳)이 되어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그해 해서 지방의 암행어사가 되었다. 1654년부터 보덕‧사간‧동부승지‧광주목사(光州牧使) 등을 거쳐, 그뒤 승지‧대사성‧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668년 예조참판‧개성유수, 1670년에 대사헌이 되었다. 현종이 죽자 빈전도감제조(殯殿都監提調)가 되고, 숙종 때 제학‧좌참찬‧판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로는 《북정집》이 있고, 시호는 정정(貞靖)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 홍처량은 홍춘경의 고손이다. 묘역이 묘하게도 홍지선생의 묘 아래에 고손 홍춘경 묘가 있고

    홍춘경 묘 아래에 고손 홍처량 묘가 있어서 고손으로 이어지는 묘역이 되었다..

    홍지선생 묘역으로 오르는 첫번째 묘가 홍처량의 묘다. 묘가 너무 아래로 내려와 진혈은 못된다.  

    ▼ 홍처량 묘 전경

    ▼ 홍처량 묘비 

    ▼ 홍처량 묘비  

    ▼ 홍처량 묘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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