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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이극돈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6. 13. 10:00
이극돈 묘
그래도 역사에서는 어느 사람은 훌륭하고 어느 사람은 나쁘다고 표기를 하고 있으니 답사기를 쓰는사람도 어느때는 답답하기 그지없다.그래도 남의 조상을함부로 이러쿵 저러쿵 내 의견만을 피력하기도 곤란하고... 역사에 나온 얘기만
해서 읽는 사람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해야할 것 같다.
이극돈은 무오사화의 인물이라하여 유림에서 배척되고 관작이 추탈되기도 하였다.
이극돈(李克墩)
1435년(세종 17)∼1503년(연산군 9).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고(士高).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의 아들이다.
1457년(세조 3) 친시문과(親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농시주부(典農寺注簿)에 임명되고, 이어 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사헌부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468년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예조참의로 승진하였으며, 이어 한성부우윤이 되었다.
1470년(성종 1) 대사헌‧형조참판을 거쳐,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으로 광원군(廣原君)에 봉해졌다.
1473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476년 예조참판으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또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1484년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1487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1494년 이조판서에 이어 병조판서‧호조판서를 지내고, 그동안 평안‧강원‧전라‧경상‧영안(永安) 5도의 관찰사를 차례로 역임하고 의정부의 좌우찬성을 지냈다.
전례(典禮)에 밝고 사장(詞章)에 능한 훈구파의 거물로서, 성종 이후 정계에 진출한 사림파와 항상 반목이 심하였고,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를 일으켜 사림파의 많은 학자를 제거하는 데 큰 구실을 한 원흉으로 일컬어진다.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실록청당상관으로서 사초를 정리하다가 김종직(金宗直)의 제자 김일손(金馹孫)의 사초에서 김종직의 〈조의제문(吊義帝文)〉과 훈구파의 비위사실이 기록된 것을 발견하고, 유자광(柳子光)과 함께 〈조의제문〉이 세조의 찬탈을 비난한 것이라고 연산군을 충동하여 무오사화를 일으키는 데 주도적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일찍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 성종의 초상을 당하였는데, 서울에 향(香)을 바치지도 않고 기생을 데리고 다닌 일이 있었다. 김일손이 그 사실과 또 뇌물먹은 일을 사초에 쓴 사실을 알고 가만히 고쳐주기를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으므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사초에 자기의 나쁜 일을 상세히 쓴 것과 또 세조 때의 일을 쓴 것을 보고 이것으로 자기의 원한을 보복하고자 하였다. 결국, 학자들을 싫어하는 연산군을 충동하여 무오사화를 일으켜 김일손 등 사림파의 많은 학자들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어세겸‧유순(柳洵)‧윤효손(尹孝孫)‧김전(金詮) 등과 함께 사관으로서 김일손의 사초를 보고도 즉시 보고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사화가 있은 뒤 잠시 파직을 당하였다가, 다시 광원군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익평(翼平)이라 하였으나, 뒤에 다시 관직과 함께 추탈되었다.<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성남시 향토유적 제7호 광주이씨 묘역(이극돈 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3-1 광주이씨 성남시 향토유적 제7호인 하대원동 일대 광주이씨 묘역은 둔촌(遁村) 이집(李集)선생의 자손들 묘역으로 인물들의 史蹟과 함께 조선전기 묘역으로써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성남시의 향토유적이다.
묘역 중 하대원동 산3-1번지에는 둔촌선생의 아들로 포은(圃隱, 정몽주) 문하에서 修學하고 탄천선생으로 불린 탄천(炭川) 이지직(李之直, 1354~1419)과 부인 경주이씨, 遁村선생의 증손으로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광원군(廣原君) 이극돈(李克墩, 1435~1503)과 그의 아들 감사공(監司公) 이세정(李世貞, 1461~1529)의 묘소가 있으며, 하대원동 산7-1번지 외 묘역에는 둔촌선생의 손자 사인공(舍人公) 이장손(李長孫, 1390~1429), 증손 참의공(參議公) 이극규(李克圭, ?~?), 둔촌선생의 6대손이며 임진왜란 때 관서부원수(關西副元帥)로서 왜군과 싸운 장렬공(壯烈公) 이윤덕(李潤德, 1529~1611), 둔촌선생의 8대손으로 강계부사(江界府使)를 지낸 후 정묘호란 때 안주성(安州城)에서 전사하여 안주(安州) 충민사(忠愍祠)에 배향(配享)된 충민공(忠愍公) 이상안(李尙安, 1575~1627)의 묘소가 있다.
또한 산18번지에는 탄천선생의 셋째아들인 관찰사공 이예손(李禮孫, ?~1459)의 묘소가 있고, 산33-2번지 일원에는 탄천선생의 손자이자 관찰사공 이예손(李禮孫)의 아들인 참판공(參判公) 이극기(李克基, 1426~1491)의 묘소가 있다.<성남시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
광주이씨 가계도 둔촌
이집탄천
이지직이장손 이극규 이인손 이극배
영의정이세광 이극감 이세우 이극증 이극돈 이세정 이극균 이예손 이극기 이극견 ▼ 이극돈 신도비.
▼ 이극돈 신도비 뒷쪽으로 이극돈 묘가 살짝 보인다.
▼ 이극돈 묘 입구에 세워진 행적비
▼ 이극돈 묘
▼ 이극돈 묘표
▼ 이극돈 묘 장명등..
▼ 이극돈 묘 석물...
▼ 이극돈 묘 구 묘표
▼ 이극돈 묘 망주석
▼ 이극돈 묘에서 바라본 이지직 묘
▼ 이극돈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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