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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남간 묘(남재 손자)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6. 20. 10:00
남간 묘(남재 손자)
김포 하성면을 가면서 남경문 아드님인 남간 묘가 있어 찾아보기로 하고 무작정 찾아갔는데 네비에는 마을 입구까지만
나와서 묘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럴때 스마트폰의 진가가 나오는데 나혼자 구식 핸드폰을 들고 찾았으니 숲이 우거져 묘가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마침 할머니 한분이 지나가시길래 의령남씨 산소를 여쭤보니 저기 언덕에 있다고 가르쳐 주신다.
그곳에 의령남씨 재실인 수정제가 있고 그 옆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묘역은 그 윗쪽으로 올라가며 있는데 몇 기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이곳은 비무장지대가 가까워 일반 항공지도도 표기가 안된다. 그러다보니 무작정 찾아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첫번째 나오는 묘가 남간 묘다.
이곳에서 청룡쪽 한강 건너를 보니 많이 본 곳이다. 바로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바로 보인다. 풀이 많이 우거져있어서 사진도
제대로 찍히지 않고 모양새도 별로다. 그래도 답사를 하고 나면 마음만은 뿌듯해진다.
남간(南簡)
생졸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부친은 개국공신 남재(南在)이며, 부친은 남경문(南景文)이다.
1419년(세종 1)에 진사가 되고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형조좌랑에 올랐다.
1427년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좌정언이 되었는데, 이때 부사정(副司正) 성규(成揆)가 거짓으로 사정임을 자처하는 데 동성친(同姓親)인 우정언 성자량(成自諒)의 말만 믿고 전직(前職)을 조사하지 않아, 직무유기의 죄로 좌사간 김섭(金涉), 우사간 우승범(禹承範) 등과 함께 파직당하였다.
1430년 호조좌랑으로 다시 기용되어 공법(貢法)제정에 관여, 전품(田品)을 9등으로 구분하여 징세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해 지평이 되고 1432년 병으로 강화도에 휴양중 정포만호(井浦萬戶) 도대평(都大平)으로부터 생선을 선물로 받은 것이 문제가 되었으나, 좌대언 김종서(金宗瑞)의 변호로 불문에 붙여졌다.
이듬해 우헌납, 1436년 장령을 역임하고 예문직제학을 거쳐, 1439년 지사간원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직무수행의 불능함을 들어 사직을 청하였다. 이에 세종은 그의 아부할 줄 모르는 절조와 청렴하고 성실한 성품을 가상하게 여겨 오히려 대사헌에 임명하였다.<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남간 묘(남재 손자)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후평리 산4 의령남씨 ▼ 의령남씨 재실인 수정제..
▼ 의령남씨
▼ 남간 사적비명
▼ 남간 사적비명 뒷면
▼ 남간 묘 전경
▼ 남간 묘
▼ 남간 묘표
▼ 남간 묘비... 특이하게 남간지묘도비(南簡之墓道碑)라고 쓰여있다. 처음보는 묘비명이다.
▼ 남간 묘 석물
▼ 남간 묘 후경.. 청룡쪽.. 용맥이 흘러가는 곳인데 바짝 깎아서 토지를 정리해 놓았다.
▼ 남간 묘 백호쪽... 사우인 수정제로 들어가는 맥이다.
▼ 남간 묘 후경
▼ 남간 사적비 뒷면과 멀리 보이는 산이 오두산 통일전망대이다.
▼ 남간 묘에서 바라본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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