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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천안]한명회선생 묘 및 신도비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7. 6. 10:00

    한명회선생 묘 및 신도비

     

    충남 천안하면 한명회가 떠오를 정도로 유명한 묘다. 고속도로를 타고가다 길옆에 있는것을 우연히 

    보고 답사를 계획했지만 여러번 놓쳐서 맘먹고 찾아간 곳이다. 풍수적 내용보다는 훤하게 비쳐진 

    조안산과 명당, 혈판을 보면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의미하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왠만한 사람들은 다 다녀온 곳으로 보고 사진만 올린다.

    한명회(韓明澮)
    1415년(태종 15)∼1487년(성종 18).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
    예문관제학 한상질(韓尙質)의 손자로, 한기(韓起)의 아들이며, 모친은 예문관대제학 이적(李逖)의 딸이다. 두 딸은 장순왕후(章順王后: 睿宗妃)와 공혜왕후(恭惠王后: 成宗妃)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글을 읽어서 성취한 바 있었으나 과거에는 늘 실패하였다.
    1452년(문종 2) 문음으로 경덕궁직(敬德宮直)이 되었고, 이어 어린 단종이 즉위하여 김종서(金宗瑞) 등 대신이 집권하자, 친구인 교리(校理) 권람(權擥)의 주선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접근, 무사 홍달손(洪達孫) 등 30여명을 추천하여 그의 심복을 삼게 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에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심복 참모로서 대공을 세워 군기녹사(軍器錄事)가 되고 정난공신 1등으로 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에 올랐다.
    이듬해 동부승지가 되고,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좌부승지에 승진되고, 그해 가을 좌익공신(佐翼功臣) 1등으로 우승지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성삼문(成三問)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을 좌절시키는 데 중요한 구실을 수행하고, 그들의 주살(誅殺)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좌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승진하고 1457년 이조판서에 올라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으며, 이어 병조판서가 되었다.
    1459년 황해‧평안‧함길‧강원 4도의 체찰사(體察使)를 지내고 1461년 상당부원군에 진봉되었으며, 이듬해 우의정에 이어, 1463년 좌의정을 거쳐 1466년 영의정이 되었다. 권람‧신숙주(申叔舟) 등과 인척관계를 맺고 세조 치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1466년 이시애(李施愛)가 함경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신숙주와 함께 반역을 꾀하였다는 혐의로 피체, 신문을 당하였으나 혐의가 없어 곧 석방되었다.
    1468년 세조가 죽자 세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원상(院相)으로서 서정(庶政)을 결재하였다. 같은해 남이(南怡)의 옥사(獄事)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1등에 책록되고, 1469년(예종 1) 다시 영의정에 복직되었으며, 이해에 예종이 죽고 성종이 즉위하자 병조판서를 겸임하였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에 책록되고 그해 영춘추관사로서 최항(崔恒)‧신숙주 등과 함께 《세조실록》을 완성하였으며, 성종에게 학문을 진흥시킬 방안을 제시하였고, 서적이 부족한 성균관의 장서확충을 위하여 경사(經史)관계의 서적을 많이 인출하여 비치하게 하였다.
    1484년 70세로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세조 즉위 이래 성종조까지 고관요직을 역임, 군국대사에 많이 참여하였는데, 세조는 특히 그를 총애하여 “나의 장량(張良)”이라고까지 하였다.
    4차의 1등 공신으로 많은 토지와 노비를 상으로 받아 호부(豪富)를 누렸다. 세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1504년(연산군 10)의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윤비(尹妃) 폐사(廢死)에 관련하였다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가 뒤에 신원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충남 문화재자료 제332호
       한명회선생 묘 및 신도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 산11-1
      청주한씨


    한명회
    자가 자준이며, 호는 압구정으로 본관은 청주이다.  장순왕후, 공혜왕후의 아버지이다.
     1457년에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거쳐 1459년 황해, 평안, 함길, 강원도의 제찰사를 지낸 후, 상당부원군이 되었다.
     후에 영의정을 수차 지냈으며 1484년에 70세로 궤장을 하사받았다. 죽은 후에는 세조의 총신으로 세조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충성의 시호를 받았다.
     묘수에는 신도비를 비롯하여 문·무관석 장명등 등 석물을 갖추었다. 비석받침은 160x114cm로 측면에는 모두 10개의 안상을 새겼고 윗면에는 12개의 연화문을 복연으로 조식했다.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이 구름속에서 여의주를 조롱하는 모습을 조각하였다. 비문은 약 1천여자의 해서로 한명회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성종 19년(1488)에 건립..

    <공주시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

     

     

     

     

     

     

     


     

     



































    ▼ 상당부원군 한명회선생 사당..  

    ▼ 상당부원군 한명회선생 신도비 내용..

    ▼ 상당부원군 한명회선생 신도비각

    ▼ 상당부원군 한명회선생 신도비 안내문

    ▼ 한명회선생 신도비

    ▼ 상당부원군 한명회선생 묘역 전경

    ▼ 한명회선생 묘 장명등

    ▼ 한명회선생 묘 

     

     

    ▼ 한명회선생 묘표

    ▼ 한명회선생 묘 석물들...

    ▼ 한명회선생 묘 문무인석 

    ▼ 상당부원군 한명회선생 묘 후경

    ▼ 한명회선생 묘 앞쪽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간다.

    ▼ 한명회선생 묘 좌측,우측 후경...청룡,백호는 그리 높지 않으며 아담하게 배치되었다.

     

     

    ▼ 상당부원군 한명회선생 묘 뒷쪽에 위치한 배위 여흥민씨 묘

    ▼ 한명회선생 묘 입수도두..

    ▼ 한명회선생 묘 입수도두에서 바라본 사당

    ▼ 한명회선생 묘 입수도두에서 바라본 후경... 앞쪽 안산이 조금 훼손되었지만 전체적으로 평탄하고

    조안산이 멋지게 들어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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