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경기 성남]이경헌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7. 16. 10:00

    이경헌 묘

     

    묘지 답사를 하려면 어떤 테마를 정해놓고 하면 훨씬 재미도 있고 기억도 잘 나겠지만 근자의 묘지답사는 거의 지역별 저인망 작전처럼 어떤 한 지역을 정해놓고 그 지역에 있는 선현묘를 이잡듯이 뒤져 위치를 알아낸 다음에 무조건 그 묘를 답사한다. 답사라고 해서 별것 아니고 일단은 그 묘를 찾아 가보는 정도다. 어떤 자료를 미리 공부하는 것도 없고 오로지 위치만 파악한체 다녀온다. 다녀온 다음에 공부를 하는 편이다.
    성남에 있는 덕수이씨 묘역도 미리 알았더라면 선조부터 차례차례 답사를 했더라면 훨씬 의미있는 답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경헌 묘는 혼자 떨어져 있어서 전혀 다른 사람인줄 알았는데 고등동의 이통선생 아드님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이통선생 묘역 답사후에 이곳을 방문했을텐데 몰라서 아침 일찍 이곳부터 들른 후에 나중에 고등동 덕수이씨묘를 찾았었다. 이곳은 저수지 상류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득수는 길게 바라보게 된다. 이럴땐 돈이 넉넉해진다고 되어 있다. 얼머전에 상적동에 땅을 봐달라는 분이 있어 갔었는데 이곳 땅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땅값이 너무 오르면 후손들이 묘를 이장할지 모르는데 괜히 걱정되어 진다. 이대로 놔두어도 후손들에게는 부가 넉넉해질만한 곳인데... 다만 내 기억으로 답사시에 뒷쪽으로 진입을 했었는데 뒷쪽 용맥이 길을 내느라 잘려진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을 보니 뒷쪽으로는 용인-서울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아무튼 뒤가 이렇게 잘리거나 도로가 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도로가 꼭 필요하다면 터널식으로라도 용맥이 이어져야 한다.

     

    이경헌(李景憲) 


    1585년(선조 18)∼1651년(효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사(汝思), 호는 지전(芝田).
    부친은 군수 이통(李通)이며, 모친은 영의정 유전(柳㙉)의 딸이다.
    1609년(광해군 1)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618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었고, 봉상시주부를 거쳐, 강원도도사를 역임하였다. 광해군 말년에는 대북파의 득세로 관계에 진출하지 않고 있다가 인조반정 후 대각(臺閣)에 들어가 장령‧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예조‧형조의 정랑, 전적‧직강‧사예원첨정‧사복시첨정‧장악원정‧필선‧시강 등을 지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는 왕을 호종하였으며 그뒤 병조참의‧승정원동부승지를 지내고, 정사원종공신(靖社原從功臣)이 되어 공주목사로 나갔다가 전 목사 송흥주(宋興周)의 무고를 받아 정직당하였다.
    1630년에 접반사(接伴使)로 가도(椵島)에 나아가 일을 잘 처리하였고, 돌아와 형조참의‧승지‧호조참의를 지냈다.
    1633년 삼사의 판관들이 인조 아버지의 추숭(追崇)을 반대하였다가 찬배를 당할 때에 승정원에 봉직하면서 이들을 옹호하다가 왕의 진노를 사서 3년 동안 유배되었다.
    1636년 한재로 인하여 대사헌 조익(趙翼)이 사면을 청하여 승정원 신하들과 함께 풀려 형조참의가 되었고,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 왕을 호종하였다. 환도 후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화의 때의 공로로 병조참판이 되었다가 개성부유수가 되었다.
    1639년에 서추 겸 동지의금부사(西樞兼同知義禁府事)가 되고, 사은사의 부사로 심양(瀋陽)에 가서 볼모로 있는 세자를 원손과 대치하려고 노력한 것이 왕의 뜻을 어겼다 하여 남양(南陽)에 유배되었으나 세자가 귀국하자 그 죄가 풀려 공조참판으로 부총관을 겸하였다.
    1642년에 경기감사로 나아가 진휼을 잘하였으며, 이어 도승지‧서반 겸 사옹원제조(西班兼司饔院提調)를 지냈고, 1644년 원접사(遠接使)로 다녀온 뒤 강화부유수를 역임하였다.
    1647년 동지의금부사로 호조참판을 겸하였고, 이듬해는 공조‧예조의 참판, 지돈령부사를 역임하고, 1651년에는 인열왕후(仁烈王后)옥책을 진서(進書)하여 상을 받았다. 이어서 병조와 의금부 등에 봉직하다가 그해에 죽었다. 착실하고 능력있는 관료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서, 궁중의 옥책문(玉册文)을 많이 썼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비지정

    문화재명칭

        이경헌 묘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상적동 산24-1

    관리자(연락처)

    덕수이씨

     

    이경헌(李景憲) 묘 


    이경헌 묘는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대왕저수지를 바라보는 나지막한 구릉에 남서향하여 있다.
    봉분의 형태는 배위(配位) 정부인(貞夫人) 파평윤씨와의 원형 합장분이다. 석물은 봉분 중앙에 묘표, 혼유석, 상석, 향로석과 상석 좌우로 소형 문인석과 망주석, 문인석 한 쌍 등 다수의 화려한 석물을 조밀하게 갖추고 있다. 이 중 망주석은 8각으로 간주석에 석수조각이 양각되어 있으며, 연봉조각이 수려하다. 문인석은 금관조복형으로 양질의 백색 화강암에 눈 꼬리를 위로 치켜뜨고 귓볼의 표현이 뚜렷하다. 홀(笏)을 마주잡은 두 손은 굵은 손가락의 표현을 하였고, 화려한 관복이 특징이다.
    묘표는 비좌와 일석(一石)의 비신 및 태양문 관석 형태이다. 비신은 백색 대리석제로 파도문이 수려하며, 비문은 4면에 있는데 앞면에 세로 3줄로 ‘有明朝鮮兵曺參判 贈吏曺判書德水李公景憲之墓 貞夫人坡平尹氏祔左(유명조선병조참판 증이조판서덕수이공경헌지묘 정부인파평윤씨부좌)’라 새겨져 있다. 건립연월은 1682년(숙종 8) 3월이며, 비문은 아들 석(䄷)이 기록하였다. 관석은 앞뒤 양면에 운문과 직경 20㎝의 큰 원문이 조식되어 있다. 특히 원문 주위의 운문은 화염을 상징하듯 강렬하게 조각하였다. 비의 총 높이는 189㎝로, 비좌 높이 28㎝, 너비 89㎝, 두께 58㎝, 비신 높이 113㎝, 너비 54㎝, 두께 18.5㎝, 관석 높이 48㎝, 너비 68㎝, 두께 29㎝이다.
    <디지털성남문화대전에서 인용>


    ▼ 상적동에 있는  이경헌 묘 원경... 

    ▼ 이경헌 묘

    ▼ 이경헌 묘표.. 덕수이씨 묘역의 특징은 묘표 전면, 후면에 일월형상을 새겨넣은 것이다.

    ▼ 이경헌 묘 석물

    ▼ 이경헌 묘 동자석 자리에 작은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 이경헌 묘 입수도두

    ▼ 이경헌 묘 후경.. 멀리 내곡-분당간 고속화도로가 보인다.

    ▼ 이경헌 묘 후경

    ▼ 이경헌 묘로 들어오는 용맥.. 희미하게 길이 보이는데 맥선을 자르고 길을 낸것으로 기억한다.


    '답사는 즐거워 > 묘지답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 안산]신점선생 묘  (0) 2012.07.20
    [경기 남양주]관가정 최청 묘  (0) 2012.07.18
    [경기 성남]이경민 묘  (0) 2012.07.14
    [경기 성남]이통 묘  (0) 2012.07.13
    [경기 성남]이혜 묘  (0) 2012.07.12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