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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안산]최정걸장군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8. 15. 10:00

    최정걸장군 묘

     

    안산시에서 또하나의 철조망 묘지는 최정걸장군 묘이다. 언덕이 높게 솟아있는 끝자락에 묘가 있는데

    묘 앞을 바짝 깎아 절벽을 이루고 그 위에 묘가 떨어질듯 매달려있는 형상이다. 이런 곳은 묘라고 볼 수도

    없는 곳이다. 좀더 편안한 곳으로 옮기는게 좋을듯 싶다.

    더구나 사진에서 보듯 철조망으로 칭칭 감겨있어 어느모로 보나 묘자리는 제대로 된 곳이 아닌듯 보인다.

    최정걸(崔挺傑)
    1585년(선조 18)∼1636년(인조 14).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양주(楊州). 진사(進士) 최정(崔淨)의 차남으로 태어나 무과에 등과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충절이 남달리 뛰어났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생하자마자 안산에서 단기로 근왕한 것에서 그의 충심을 잘 알 수 있다. 10대 때부터 궁술과 기마에 능하여 어려서부터 충효의 덕목을 갖춘 덕장의 자질을 보였다. 이후 고향에 은거하며 모친을 봉양하던 중 병자호란(丙子胡亂)이 발생하자 52세의 나이임에도 단신으로 왕을 지키기 위해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종군하였다.
    전국의 근왕병이 고립된 인조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으나 청군을 물리치고 산성에 입성한 경우는 최정걸이 유일하다고 한다.
    김이건(金履健)의 충신사적(忠臣事蹟)에 의하면 당시 최정걸이 청군 7명의 수급을 베어 인조에게 바쳤는데, 인조가 어주를 하사하며 그의 공을 치하했다고 한다. 같은 해 12월 29일, 청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적군을 사살하였으나 결국 사망하였고, 노비 극산(克山)이 시신을 수습하였다. 인조는 최정걸의 무공을 높이 평가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증직하고 충장공(忠壯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광주군 성곶면 사리에 안장하였으며 나라에서 정려(旌閭)와 사패지(賜牌地)를 내려 주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안산시 향토유적 제8호
       최정걸장군 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산92
       양주최씨

     

     

     

     

     

     

     

     

     

     

    최정걸(崔挺傑) 장군은 양주 최씨 시조 억(億)의 12세손으로서 조선인조 15년(1637)에 가선대부 병조참판을 추증(追贈)받았으며 충장(忠壯)의 시호를 받은 충절공신(忠節功臣)이다.
    최정걸 장군은 등무과 출신으로 절충장군 (折衝將軍) 까지 지낸 후 귀향(안산시 사동 감자골)하여 효양우애(孝養友愛)하고 있던 중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 (播遷) 하심을 알고, 장군은 50세의 나이로 남한산성행궁(南漢山城行宮)으로 달려가니 조정은 주화파(主和派)가 득세하여 바야흐로 국치를 당할 판국이었다.
    장군은 적진으로 단신 출격하여 적의 머리 칠급(七級)을 베어 인조어전에 바치니 인조는 크게 감동하고 그 충용을 포상하여 어주(御酒)를 내렸다. 그러나 조정은 강대한 호세(胡勢)에 눌려 치욕적인 강화(講和)로 기우니 장군은 이튿날 다시 적의 대군 중으로 돌진하여 분전 끝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인조 14년 (1636) 12월 29일) 이 소식을 들은 인조는 장군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가선대부병조참판(嘉善大夫兵曹參判)을 추증하고 향리에 예관(禮官)을 보내어 후히 장사지내게 하고 정문(旌門)을 내리며 사패(賜牌), 봉록(俸錄)하였다.
    장군의 묘소는 본오동 벌이 내려다 보이는 안산시 사동 산우물에 자리잡고 있다.

    <안산시청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

     

     

     

     

     

     

     

     

     

     

     

     

     

     

    ▼ 최정걸장군 묘 전경... 앞쪽 빌라4층에서 찍어야 가능하다..  

    ▼ 최정걸장군 기적비

    ▼ 최정걸장군 묘 측면..

    ▼ 최정걸장군 묘 .. 철망에 같혀있다.

    ▼ 최정걸장군 묘.. 앞쪽은 깎아지른 절벽.. 뒷쪽은 철조망으로 칭칭감겨있다.

    ▼ 최정걸장군 묘 전경.. 절벽에 축대로 겨우 받혀서 묘를 조성했다.

    ▼ 이런 묘는 바람이 아주 무서운데 다행이 앞쪽에 빌라건물들이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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