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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안산]윤강선생 묘 및 신도비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8. 16. 10:00

    윤강선생 묘 및 신도비

     

    윤강선생 묘를 답사할 때는 배꽃이 막 필 때였다. 묘의 사초지가 상당히 높게 올라있어 거의 왕릉

    수준이다. 봄 기운이 완연한 묘역을 둘러보는데 묘 둘레로 배꽃이 드문드문 피어난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다른 답사기에서 주소가 잘못 되었다고 알려주어 덕분에 쉽게 잘 찾았다. 이렇게 앞선 사람이

    제대로 정보를 올려주면 뒤에 가는 사람들이 아주 편해지는데 앞선 사람도 정보를 공유하도록 해야하고

    그 정보를 활용하신 분들도 항상 감사의 표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 사람들은 그저 공짜로 얻는 정보라고 고마워할줄 모른다. 그러다보니 정보를

    올리는 사람들이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틀린 정보를 거리낌 없이 올리고, 일부에서는 일부러 틀린 정보를

    올리는 사례도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남의 자료를 쓸 때는 감사하다는 글 한 줄 정도는 남기는 센스를 가져보고 또한 함부러 남의 글, 사진을

    도용하는 일은 안해야 한다. 요즘 걸렸다하면 몇 백만원은 기본이라고 하니 조심들 하시기 바란다.

    윤강(尹絳)
    1597년(선조 30)∼1667년(현종 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준(子駿), 호는 무곡(無谷). 공조참의 윤민헌(尹民獻)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예문관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1626년 검열이 되었다. 같은해 봉교‧정언‧교리를 거쳐, 1642년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승정원승지가 되고 이조참의를 지냈다.
    효종 때 대사간으로 있다가 한때는 충원현감(忠原縣監)으로 나갔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이조참판‧대사헌‧도승지를 지내고,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657년(효종 8)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1659년 효종의 상을 당하였을 때 예조판서로서 빈‧장양도감(殯葬兩都監)의 제조(提調)를 겸하여 힘껏 주선한 공으로 숭정대부‧판의금부사에 오르고 이조판서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인조‧효종‧현종 3조에 역사하여 80여 벼슬을 지내면서 신명을 바쳐 일하였으며, 1664년(현종 5) 민유중(閔維重)의 탄핵으로 사퇴하여 안산(安山) 옛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러 번 조정에서 불렀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안산시 향토유적 제15호
       윤강선생 묘 및 신도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산17-2
       파평윤씨

     

     

     

     

     


    ▼ 윤강선생 묘.. 사초지가 높게 되어있어 왕릉수준이다.   

     

    ▼ 윤강선생 신도비

    ▼ 윤강선생 신 신도비

    ▼ 윤강선생 묘 안내판

    ▼ 윤강선생 묘표

    ▼ 윤강선생 묘 장명등

    ▼ 윤강선생 묘 석물

    ▼ 윤강선생 묘 전경

    ▼ 윤강선생 묘 후경

    ▼ 윤강선생 묘 청룡, 백호쪽 후경

    ▼ 윤강선생 묘 후경

    ▼ 윤강선생 묘 앞쪽에 있는 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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