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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용인]묵계 류복립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9. 18. 10:00

    묵계 류복립 묘

     

    유복립 묘를 찾는데 빙빙돌아 겨우 찾았다. 그런데 묘역입구에서부터 잡풀에 가로막혀 더이상 진전이

    어려울 정도다. 추석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라 그런지 풀이 너무나도 많이 우거져있다.

    간신히 묘역으로 오르는데 난데없이 갑자기 시꺼먼 동물이 뛰쳐나가 깜작 놀래키고.... 요즘 야산에는

    노루 등 큰 동물들이 유난히 많다. 묘역 근처가 잡풀이 우거지다보니 은신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풀이 사람 키를 넘길 정도여서 답사를 중단하려다가 간신히 사진 몇 장 찍고 내려왔다.

    후손들이 관리를 잘 하는 묘역은 벌초를 두세번 하는 것 같다. 그래야 보기 좋은 상태로 1년내내 유지된다.

    이래저래 공을 들여야 보기도 좋고 복도 받고 주위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듣게 되는가 보다...

    유복립(柳復立)
    1558년(명종 13)∼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 부제학 유윤덕(柳潤德)의 손자이다. 음직으로 종부시주부를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외삼촌인 경상우도관찰사 김성일(金誠一)휘하에서 진주성(晉州城)을 공격해온 왜적을 격퇴, 이듬해 김성일이 병사하면서 성을 사수하라는 유언에 따라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복수장(復讐將) 고종후(高從厚), 병마절도사 황진(黃進) 등과 힘을 합쳐 왜적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당하자 김천일 등과 함께 자결하였다.
    뒤에 충신정문이 세워지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798년(정조 22) 경상도 유림 김완찬(金宛燦) 등이 창렬사(彰烈祠)에 추향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사원에 추향하는 것은 국초 이래로 금한 일이라 하여 성사되지 않았다가, 1802년(순조 2)에 창렬사에 배향되었다.
    유태환(柳台煥)이 편찬한 《묵계실기》가 장서각도서에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용인시 황토유적 제41호
       묵계 류복립 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산16
       전주류씨


     

     

     

     

     

     

     

     

     

    ▼ 묵계 류복립 묘 안내판..

    ▼ 묵계 류복립 묘역 아래에 있는 사당... 충모재..

    ▼ 묵계 류복립 묘 전경... 잡풀이 너무 우거져있다.

    ▼ 묵계 류복립 묘비

    ▼ 묵계 류복립 묘 석물

    ▼ 묵계 류복립 묘  석물들...

     

     ▼ 묵계 류복립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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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계 류복립 묘 청룡쪽 후경

    ▼ 묵계 류복립 묘 후경

     

    ▼ 묵계 류복립 묘 입구 표지판... 표지판이 바람에 돌아갔는지 엉뚱한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 표지판이 반대로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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