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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정옥형, 정응두 신도비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9. 27. 10:00
정옥형, 정응두 신도비
나주정씨 세장지에는 중시조인 정수강 묘역이 문화재가 아니라 그 아들인 정옥형과 옥형의 아들 정응두의
신도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족보를 어느 정도 알고 찾아가야 대략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신도비가 있어서 자세히 보고 올라가면 문제가 안되지만 우리네 답사객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안내판 내용을 거의 읽지 않고 올라간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다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이제부터라도 최소한 문화재 안내판이라도 읽을 정도의 여유는 가져보자구요...
정옥형(丁玉亨)
1486년(성종 17)∼1549년(명종 4).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中), 호는 월봉(月峰).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崗)의 아들이다.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검열이 되고, 승정원주서를 거쳐 1511년 조광조(趙光祖)와 더불어 경연검토관으로서 활약하였다.
그뒤 이조좌랑을 지내고, 1518년 사헌부의 지평‧장령을 역임한 뒤 1521년 의정부사인이 되었다.
이듬해에 홍문관교리‧응교를 지내고, 사간원사간‧사헌부집의를 지냈으며, 1525년 홍문관전한‧직제학을 거쳐 부제학에 올랐다.
그뒤 좌부승지‧병조참지‧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533년 도승지가 되었다.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친 뒤 대사간‧대사헌에 이르러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는 데에 힘썼다.
당시 김안로(金安老)가 권세를 오로지하자, 그에 의부(依附)하기를 꺼려하여 외직으로 나가 충청도관찰사가 되고, 임기가 끝나자 다시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1536년 병조참판으로서 태자진하사(太子進賀使)가 되어 명나라의 북경에 다녀왔고, 이듬해에 예조참판‧이조참판을 역임하고 다시 외직으로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에 다시 병조참판을 지내고 1539년 공조판서에 올라 형조판서를 거쳐 대사헌을 다시 역임하였다. 이어서 우참찬‧예조판서‧좌참찬을 거쳐 지돈령부사가 되었다가 1544년 병조판서가 되어 국방문제를 총괄하였다.
이듬해 명종 즉위와 더불어 형조판서가 되어 소윤에 가담, 대윤을 제거하는 데 협력하여 보익공신(保翼功臣) 3등에 책록되고 금천군(錦川君)에 봉해졌다.
형조판서로서 전장(典章)에 밝아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뒤 좌찬성에 올랐다가 죽었다. 기국 도량(器局度量)이 있고, 직무에 과단성을 보였으며, 언행에 책임을 졌고, 권세가들의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직무에 충실하였다. 시호는 공안(恭安)이다.
정응두(丁應斗)1508년(중종 3)∼1572년(선조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추경(樞卿). 병조판서 정옥형(丁玉亨)의 아들이다.
1521년(중종 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4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선공감직장(繕工監直長)에 제수되었다.
그뒤 전적을 거쳐 세자시강원설서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과거급제한지 10개월 만에 참직(參職)에 올랐으니 관작이 너무 외람되다는 사헌부의 공박을 받기도 하였다.
그해 정자를 거쳐 저작‧부수찬‧이조좌랑‧이조정랑‧지평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1543년 교리가 되었다. 그해 부응교‧장령을 거쳐 세자시강원우보덕과 응교를 역임하고, 1545년(인종 1) 예관(禮官)으로 명나라 사신을 영접한 뒤 사간이 되었다.
사간으로서 활발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546년(명종 1) 예조참의에 이르렀다. 같은해 문위사(問慰使)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였으며, 그 이듬해 대사간이 되고, 그뒤 우부승지‧좌부승지를 역임하고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으나 사직을 청하였다.
1551년 한성부우윤을 거쳐 1553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그해 병조참판이 되어 다시 중앙으로 돌아왔다.
1557년 다시 평안감사로 나간 뒤 예조참판‧한성부판윤‧함경감사를 역임하고, 1561년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해 판의금부사로 종묘 헌관(獻官)이 되었으며, 그뒤 좌찬성‧평안도관찰사 등을 거쳐 1566년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1호 정옥형, 정응두 신도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 산37-5 나주정씨
▼ 공안공 정옥형 신도비
▼ 충정공 정응두 신도비
▼ 나주정씨 묘역을 오르는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
▼ 묘역 안내판.. 특이하다. 공안공 정옥형묘는 위에서 3단 중앙에, 충정공 정응두 묘는 4단 우측에...
▼ 공안공 정옥형 묘 전경...
▼ 묘역을 한꺼번에 조성하다보니 석물이 비슷비슷해서 헷갈린다.
▼ 공안공 정옥형 묘비
▼ 공안공 정옥형 묘 석물... 석물 또한 비슷비슷해서 헷갈린다.
▼ 공안공 정옥형 묘 후경
▼ 충정공 정응두 묘
▼ 충정공 정응두 묘비... 묘비에 정상응두(丁相應斗)라고 쓴 이유를 모르겠다. 보통은 丁公應斗라고
써야하는데.. 일본식 이름같기도 하고....
▼ 충정공 정응두 묘 석물
▼ 충정공 정응두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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