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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양주]영의정 이탁 묘, 아들 이해수 묘(전의이씨)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10. 1. 10:00

    이해수 묘(향토유적 제5호)

     

    이해수선생 묘를 찾으러 일전에 양주를 다녀왔는데 입구의 신도비만 보고 그 안쪽에 묘역이 보이지 않아

    바쁜 일정으로 그만 답사하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오면서 보니 길가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묘가

    있었다. 그래서 양주에 가면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부근을 지날 일이 생겨 찾게 되었다.

    추석을 며칠 앞둔 시점이라 묘역이 깔끔하게 벌초를 하였고 날씨마져 좋아 사진이 잘 나왔다.

    돌아오면서 전의이씨 재실을 지키는 관리인(영의정 이탁선생 16대 후손)께서 음료수도 주시고 선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고 좋은 자료까지 전해 주셔서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후손님 감사합니다.


    이탁(李鐸) 

    1509년(중종 4)∼1576년(선조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선명(善鳴), 호는 약봉(藥峰). 현감 이맹희(李孟禧)의 손자이며, 군수 이창형(李昌亨)의 아들이다.

    1531년(중종 2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544년 정언을 거쳐 지평을 역임하였다.

    1546년(명종 1) 이조정랑을 거쳐 사인(舍人)‧집의가 되어 1548년 권신 이기(李芑)를 탄핵하였으며,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교리‧전한을 역임하였다.

    1550년 춘추관기주관이 되어 《중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2년 동부승지‧좌부승지가 되었으며 이듬해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어 진헌사(進獻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55년 도승지‧이조와 공조의 참의‧부제학을 역임하고, 1558년 용양위호군(龍驤衛護軍)‧한성부우윤을 거쳐 1559년에는 임꺽정(林巨正)의 무리들이 들끓자 황해도관찰사로 나가 치안유지에 노력하였다.

    1564년 대사헌이 되었으며 공조‧호조‧예조판서를 역임하고, 1567년 대사헌이 되었으며 지경연사(知經筵事)가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68년(선조 1) 우찬성을 거쳐 1571년 우의정, 1572년 영의정에 올라 병으로 사직하고 행판중추부사로 죽었다. 덕이 많고 지극히 청렴한 학자‧문장가로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이해수(李海壽)

    1536년(중종 31)∼1599년(선조 3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대중(大仲), 호는 약포(藥圃)‧경재(敬齋). 영의정 이탁(李鐸)의 아들이다.

    1563년(명종 18)에 생원으로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곧 검열에 등용되고, 이어 설서‧봉교 등을 역임하였다. 1567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그뒤 응교‧동부승지‧호조참의‧대사간‧병조참의‧공조참의를 역임하고 1582년(선조 15)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는 서인으로 1583년에 도승지가 되었으나 그때 점점 세력이 커진 동인에 밀려 여주목사로 좌천되었다.

    1587년에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대사간이 되고, 다시 여주목사로 밀려났다. 그해 서인 정철(鄭澈)이 건저(建儲: 세자책봉)문제로 유배되자 그도 연루되어 종성으로 유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배지에서 풀려나와 왕을 의주로 호종하였다. 이어 대사간이 되었다가 1594년에 대사성을 거쳐 부제학에 이르렀다.

    성격이 강직‧단아하고 특히 시와 예서에 뛰어났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약포집》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양주시 향토유적 제5호

    문화재명칭

    이해수 묘(영의정 이탁 아들)

    소재지

    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 302-1(신도비)

    관리자(연락처)

    전의이씨

     

    ▼ 약포 이해수 묘 입구... 뒷쪽에 보이는 묘는 이해수선생 조부, 증조부 묘다.

    ▼ 약포 이해수 묘 입구

    ▼ 약포 이해수 묘 문화재 안내판... 땅에 떨어져 딩군다..

    ▼ 약포 이해수 묘 측경

    ▼ 약포 이해수 묘 전경

    ▼ 약포 이해수 신묘비

    ▼ 약포 이해수 구묘비

    ▼ 약포 이해수 묘 석물.. 문인석은 없이 망주석만 있다..

    ▼ 약포 이해수 묘 백호쪽 망주석... 아마도 부러진 것을 이어 붙이면서 접합면에 날짜를 새긴듯...

    ▼ 약포 이해수 묘 입수도두..

    ▼ 약포 이해수 묘 후경

     

    ▼ 영의정 이탁선생 묘... 아들인 이해수 묘가 문화재로 지정되고 부친인 영의정 묘는 미지정되어 아들 먼저 소개했다.

    ▼ 영의정 이탁선생 묘표

    ▼ 영의정 이탁선생 묘 장명등

    ▼ 영의정 이탁선생 묘 석물

    ▼ 영의정 이탁선생 묘 전경

    ▼ 영의정 이탁선생 묘 측경

    ▼ 영의정 이탁선생 묘 입수도두

    ▼ 영의정 이탁선생 묘 후경.. 손이 번창했을 법도 한데... 이탁선생 손자대까지는 그런대로 관직에 나갔지만

    그 이후로는 거의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 영의정 이탁선생 부모 묘... 부모 묘 윗쪽에 조부모 묘가 있다. 

    ▼ 영의정 이탁선생 부 신창군수 이창형 묘

    ▼ 신창군수 이창형 묘비 

    ▼ 신창군수 이창형 묘... 뒷쪽은 이창형선생의 부모 현감 이맹희 묘 

    ▼ 신창군수 이창형 묘 석물 

     

    ▼ 약포 이해수선생 묘역(영의정 이탁선생 묘) 주산... 묘는 가운데 봉우리 옆에 있다.

    ▼ 영의정 이탁선생 신도비 안내판

    ▼ 영의정 이탁선생과 아들 이해수 신도비..

    ▼ 영의정 이탁선생 신신도비

    ▼ 영의정 이탁선생 구신도비

    ▼ 영의정 이탁선생 아들 약포 이해수선생 묘갈

    ▼ 가을에 답사를 가면 눈이 즐겁다... 

    ▼ 영의정 이탁선생 16대손 관리인 아저씨.. 친절하게 안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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