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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공원묘지 묘지터]여성운동가 박원희(부군 사회운동가 김사국) 묘터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12. 1. 10:00
여성운동가 박원희(부군 사회운동가 김사국) 묘터
여성운동가 박원희 묘를 찾으려고 두번 고생을 했는데 번호로만 찾으려고 하면 무척 힘이든다.
길 옆 바로 아래에 있는데 먼저 다녀오신 분들이 정확히 해놓지 않아서 고생깨나 한 곳이다.
도로를 기준으로 정확히 해놓았으니 후에 다녀오는 사람들은 참고가되길 바란다.
박원희, 김사국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온 내용과 블로그 기분좋은
나무공간에 나온 내용을 참고하여 글을 올린다. 이곳은 위치만 알려드리는 것으로 마치려한다.
이 답사기에 올리는 것은 묘터는 가능한 생략하고 현재 존재하는 곳만 올리려고 하는데 피치못해
묘터를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독자들께 양해를 구한다.
김사국(金思國)
1892(고종 29)∼1926. 사회주의운동가.
충청남도 논산 출신으로, 별명은 해광(解光)이다.
1907년 아버지를 여의고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서 한학을 공부한 뒤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10년 일제에 나라가 강제로 합병되자 만주와 시베리아를 유랑하였으며, 1919년 국민대회사건으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1년 1월에 창립된 서울청년회 결성을 주도하고, 4월부터 조선청년회연합회위원, 조선노동대회의 간부로 활동하다 11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건너간 직후 『오일신보(五一新報)』를 발기하고 흑도회(黑濤會) 결성을 주도하였다. 12월에는 재일유학생 중심의 조선고학생동우회(朝鮮苦學生同友會)를 조직하였다.
1922년 봄 일본에서 귀국하자 서울청년회를 중심으로 노동자·농민의 사상단체를 조직하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그 해 3월에 열린 조선청년연합회 제3회정기총회에서 ‘사기공산당사건' 관련자인 장덕수(張德秀)·김명식(金明植)·박이규(朴珥圭) 등의 제명을 제안하고, 이영(李英) 등과 18개 단체로 이루어진 연합회에서의 서울청년회 탈퇴를 주도하였다. 이 사건은 좌우세력의 불분명한 관계가 명확해지는 하나의 계기였다.
또한, 4월에 열린 조선노동공제회 제3회 정기대회 때 차금봉(車今奉)과 손잡고 조직의 주도권을 장악, 10월 25일 자유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자유노동조합 발기총회 개최 등을 지도하였다. 11월에 일어난 신생활사(新生活社) 필화사건이 계기가 되어 다음해 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였다.
1924년 용정(龍井)에 동양학원(東洋學院), 영고탑(寧古塔)에 대동학원(大同學院)을 설립하고 사회주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중국 관헌의 탄압으로 재차 러시아로 망명하였지만 폐병이 악화, 그 해 6월 귀국하여 조선청년동맹에서 일하면서 10월 고려공산동맹 결성을 주도하고 스스로 조직부 및 책임비서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20년대 우리 나라 사회주의운동의 양대산맥이 형성되었다. 이후 1924년 12월 6일에 결성된 사회주의자동맹 집행위원, 1925년 4월 7일에 결성된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반대단체 전국연합위원회 연구부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선두에서 조선공산당과 대립하는 파벌투쟁을 전개하였다.박원희(朴元熙)
1899년∼1927년. 사회운동가.
대전출생. 경성여자사범학교(京城女子師範學校)를 졸업하고 철원에서 보통학교 교원을 지내다가, 학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일본 동경으로 가서 유학하였다.
귀국 후 여성운동에 참가하였으며, 만주 간도(間島)에 가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위한 후진교육에 힘쓰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개월간 투옥된 바 있다. 그뒤 다시 귀국하여 여성동우회(女性同友會)의 창립 발기인이 되고 이어 경성여자청년회(京城女子靑年會)를 조직하는 등 구국(救國)을 위한 여성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金思國 年譜1892년 11월 9일 충남 연산에서 부친 延安 김씨 金慶秀와 모친 순흥 안씨 安國堂의 장남으로 태어남.
1921년(30세) 7월 朴元熙와 결혼.
1925년(34세) 4월 29일 딸 史建 태어남.
1926년(35세) 5월 8일 폐결핵으로 사망. 사회단체 연합장으로 영결식.
1928년 1월 5일 김사국의 동지이며 부인인 朴元熙 사망.(30세)
1938년 7월 25일 김사국의 모친 安國堂 사망.(71세)
1926년 김사국이 사망하여 망우리에 안장되고,1928년에 박원희가 사망하여 합장을 하였다.
1938년 모친 안국당이 사망하여 김사국의 묘 바로 아래 안장 되었다.
2002년 10월28일 김사국,박원희는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 하였다.
이장하면서 비석은 국립묘지로 가져갈수 없으니 박원희 비석은 시어머니 묘 앞에다 새운것이다.
이장한 묘터를 찾으러 근처를 살펴보니 우거진 수풀 사이로 No:109677 이 보인다.
김사국의 비석도 근처 어딘가에 있을것인데 나무가 우거져 찾을 수가 없다...<네이버블로그 기분좋은나무공간에서 발췌>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여성운동가 박원희(부군 사회운동가 김사국) 묘터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공원묘지(묘지번호 No.109677) 망우리묘지관리소
▼ 여성운동가 박원희(부군 사회운동가 김사국) 묘터 위치
김사국의 어머니 안국당 묘 앞에 세워져 있다.
▼ 여성운동가 박원희(부군 사회운동가 김사국) 묘터.. 현재 묘비가 있는 묘는 김사국의 어머니
안국당 묘이고 그 윗쪽 잡풀이 우거진 파묘자리가 박원희,김사국의 묘터이다.
▼ 김사국의 어머니 안국당 묘지번호
▼ 여성운동가 박원희 시어머니인 안국당 묘 측경
▼ 여성운동가 박원희 시어머니인 안국당 묘 후경
▼ 여성운동가 박원희(부군 사회운동가 김사국) 묘터에 남아있는 묘지번호
▼ 여성운동가 박원희(부군 사회운동가 김사국) 묘터
▼ 여성운동가 박원희(부군 사회운동가 김사국) 묘터 후경
▼ 도로에서 바라본 여성운동가 박원희(부군 사회운동가 김사국) 묘터
▼ 여성운동가 박원희(부군 사회운동가 김사국) 묘터 옆 도로에서 바라본 문일평,오세창 연보비... 거리 가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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