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강원 원주]의민공 김제남(金悌男) 신도비 및 묘(선조의 국구)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3. 3. 21. 10:00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신도비 및 묘(선조의 국구)

     

    원주는 치악산이라는 큰 산이 있다. 이런 화성체의 큰 산에는 명당이 없다는게 일반적 이론이다.

    아직 탈살이 덜 되어 그렇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치악산 부근에는 묘들이 거의 없는데 유난히

    문막읍 쪽에는 이름있는 묘들이 보인다. 그 중에 문막읍 한가운데를 멋드러지게 지키며 서있는

    아름다운 탐랑봉이 있는데 이상하게 지도상에 그 산이름이 안나온다. 그래서 250여m 정도되는

    이 산을 보기좋은 그대로 탐랑봉으로 불러본다. (이글을 쓰고 아무래도 꺼림찍해서 인터넷 찾아보니

    건등산이라고 나온다.) 이 건등산을 조안산으로 해서 몇 기의 묘가 있는데 그 중 선조의 국구인

    김제남 묘가 있다. 그는 부원군으로 좋은 생을 살 수 있었는데 선조가 영창대군이라는 왕자를

    뒤늦게 보게 되어 이에 얽힌 왕권의 권력암투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죽어서도 부관참시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 것이다. 인조반정 이후에 관작이 모두 복구되었다.

    이곳은 와혈의 대표로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이다. 특히 사격이 우수하고 와혈의 특징인 포근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김제남(金悌男)
    1562(명종 17)∼1613(광해군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언(恭彦). 할아버지는 안도(安道)이고, 아버지는 증 영의정 오(?)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상(常)의 딸이다. 선조의 장인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4년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거쳐, 1596년 연천현감을 지냈다. 159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01년 정언·헌납·지평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었다.
    1602년 둘째딸이 선조의 계비(仁穆王后)로 뽑힘으로써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고, 책비(冊妃 : 왕비로 책봉됨)되자 영돈녕부사에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으로 봉해졌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 등에 의해 인목왕후 소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했다는 공격을 받아 사사되었으나, 1616년에 폐모론이 일어나면서 다시 부관참시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 관작이 복구되고 왕명으로 사당이 세워졌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의민(懿愍)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김제남 신도비
      
       연안김씨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신도비(선조의 국구)... 신도비는 사당 앞쪽 보호수와 같이 있다.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신도비... 보통 머리를 돌리는 귀부는 묘가 있는 곳으로 돌리는데 여기는 반대로 돌렸다.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신도비... 이수부분은 조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신도비 뒷모습...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신도비 안내판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신도비 옆에 서있는 500년된 느티나무... 이 나무는 김제남의 파란많은 역경과 복권 등을 모두 봤을 나이다.

    ▼ 느티나무도 나이를 먹어서 곳곳에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자태는 멋있다.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의 위패를 모신 의민공 사우 안내판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의 위패를 모신 의민공 사우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묘역 입구... 연못이 있고 후손들의 묘들이 몇 기 보인다.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묘 전경.. 새 둥우리처럼 옴팍 들어간 형태의 혈형을 와혈이라 한다.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묘 석물들... 와혈에 이렇게 석물을 많이 해도 되는건지....?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묘비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묘 구 석물... 와혈은 자칫하면 물구덩이가 되기 쉽다. 비교적 석물이 깨끗하다.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묘 ... 유난히 상석이 까맣게 되어 있다.

    ▼ 묘역 윗쪽에 말상과 양으로 보이는 상을 하는 까닭은? 왕릉에는 곡장 안쪽에 석호와 석양을 배치하는데

    그 뜻은 경호와 비서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곳에 왕릉에서 따왔음직한 석마와 석양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묘 입수도두와 주산...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묘 사격의 백미인 건등산...

    ▼ 의민공 김제남(金悌男) 묘 청룡쪽...




    ◐야초 풍수강의 소개합니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풍수지리강의 수강생 모집

    ◆ 웰빙실전풍수, 매년 2월,8월 모집, 매주 목요일 10시~13시

    ◆ 2017년2학기 접수 중    바로가기









    ■ 웰빙실용풍수 수강생 수시 모집(매주 목요일, 저녁 7시~8시30분)

    ☎성북문화원 : 02- 765-1611

    수강신청 바로가기


    ■ 웰빙생활풍수기초과정 수강생 수시 모집(매주 수요일, 10시~12시)

    ☎월곡1동 주민센타 :02- 2241-5564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