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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예산]남연군 묘(南延君 墓)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4. 11. 17. 09:30

     

    남연군 묘(南延君 墓)

     

    남연군 묘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이미 내 블로그에 올린 줄 알고 있었는데 이번 대풍련 간산 때 확인해 보니 올리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이미 여러차례 방문을 했는데 올리지 못한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이곳은 여러 의견들이 분분한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이곳을 2대천자지지로 표현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옛날부터 내려오던 이야기가 굳어진 때문이다. 정만인이라는 사람도 역사서 어디에도 없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튼 이곳은 커다란 국세에 앞이 터져있어서 갈무리를 못하는 것이 흠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좀더 넓게 본다면 그런 정도의 비보는 이미 완결된 것으로 봐야한다. 요즘 사람들이 풍수답사를 가는 곳은 무조건 나쁘다거나 흠이 많다거나 재혈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10중의 8, 9다. 좋다고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얘기다. 그래서 풍수간산을 가서도 의견이 분분하고 누구를 믿을 수 있는 경우가 드물게 된다. 이러니 자기가 이치를 터득하고 자기 혼자만의 1인 학회를 설립하여 활동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또한 제도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남의 이묵을 받지 못하고 나쁘다고 해야만 뭔가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심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 백인백색의 간산평이 난무하는 남연군 묘다.

     

    남연군 묘(南延君 墓)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흥선대원군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 이구(李球)의 유택.
    높은 언덕에 반구형 봉분이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앞에 석물과 비석이 서 있다.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것을 1846년 이곳으로 이장했다. 이하응은 풍수지리설을 믿고 아버지인 남연군의 무덤 자리를 찾기 위하여 지사(地師)인 정만인(鄭萬仁)에게 부탁하였다. 지사는 전국을 두루 살펴보고 이곳을 ‘두 대에 걸쳐 천자가 나는 자리[二代天子之地]’라고 지목하였다.
    이곳에는 본래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고 묘자리에는 탑이 서 있었으나, 대원군에 의해 폐사되고 남연군의 무덤이 옮겨졌다. 이장한 7년 후 차남 명복(命福)을 낳았다. 철종이 후사 없이 돌아가자 종손이었던 명복이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그 뒤 1866년(고종 3) 통상을 요구하다가 실패한 독일 상인 오페르트(Oppert,E.J.)가 미국인 젠킨스(Jenkins,F.)를 자본주로, 프랑스 선교사 훼론(Feron)을 통역관으로 삼아 백인 8명, 말레이지아인 20명 등 약 100여 명의 중국인 청년을 무장시켜 4월 18일 홍주에 정박하고 고덕으로 들어왔다.
    러시아 병사라고 칭하고 남연군의 무덤을 훼손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원군은 양이(洋夷 : 서양 오랑캐)에 대한 배척을 강화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더욱 엄히 하였다. 이 무덤을 파헤친 사건은 국내외로 커다란 비난을 받았다.
    무덤 주변에서는 조선시대 기와가 많이 나오고, 또 탑을 파괴할 때 백자 2개와 단차(團茶) 2덩이, 사리도 3개가 나왔다고 이건창(李建昌)은 적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

    문화재명칭

    남연군 묘(南延君 墓)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충청남도

     

    ▼ 남연군 묘가 있는 가야산 줄기... 흔히 주산으로 착각하기 쉬운 옥양봉... 

    ▼ 남연군 묘가 있는 가야산 등산로 안내도

    ▼ 가야산... 산마다 철심을 박아놓는 일은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 

    ▼ 남연군 묘 주변...

    ▼ 한창 때 둘레길 열풍이 불 때 아마도 만든 것 같은 백제의 미소길...

    ▼ 남연군 묘로 오르는 다리... 이곳이 합수지점이 된다.

    ▼ 남연군 신도비

    ▼ 이곳도 그동안 참 많이 변한 곳이다. 

    ▼ 남연군 신도비는 1865년에 세워졌다.

    ▼ 남연군 묘 표지판과 등산로 이정표...

    ▼ 남연군 묘 안내판

    ▼ 남연군 묘는 가야사를 무너뜨리고 들어섰다고 되었으므로 이곳이 가야사지가 된다.

    ▼ 남연군 묘 오르는 길... 전국에서 약350여명이 간산에 참가하였다.

    ▼ 남연군 묘

    ▼ 남연군 묘 전경

    ▼ 남연군 묘

    ▼ 남연군 묘역이 넓어 사진 한장에 담기 어렵다.

    ▼ 남연군 묘 망주석

    ▼ 남연군 묘 측경... 청룡쪽 사격

    ▼ 남연군 묘 장명등

    ▼ 남연군 묘비

    ▼ 남연군 묘비 뒷면

    ▼ 남연군 묘비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쓴 것이다.

    ▼ 남연군 묘 앞쪽의 바위... 이를 두고도 말이 많다. 귀석이라고 하는 사람, 탈살이 덜된 곳이라는 사람... 등

    ▼ 남연군 묘 백호쪽 망주석 부근에 박혀있는 괴석...

    ▼ 청룡쪽 망주석

    ▼ 남연군 묘 청룡

    ▼ 남연군 묘 후경

    ▼ 남연군 묘 후경... 멀리 골짜기가 보인다. 청룡,백호가 관쇄되어야 기운이 모아진다.

    ▼ 남연군 묘 앞은 한창 발굴조사가 벌어지고 있는 가야사지...

    ▼ 남연군 묘 백호

    ▼ 남연군 묘 후경... 사람들로 북적인다.

    ▼ 남연군 묘에서 대풍련 회장(남궁 승 박사)님의 간산평

    ▼ 대풍령 전임 회장이신 석초 채영석 고문님의 간산평

    ▼ 남연군 묘 입수

    ▼ 남연군 묘 아래에는 예전에 남은들상여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비어있다.

    ▼ 남연군 묘의 주산인 석문봉

    ▼ 남연군 묘에서 조금 윗쪽으로 올라가면 육관도사 손석우 묘가 있는데 오르는 길에 특이한 절이 있다.

    ▼ 육관도사 손석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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