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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유성]김반·김익겸(金槃·金益兼)의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8. 3. 22. 10:00


    김반·김익겸(金槃·金益兼)의 묘 


    광산김씨 묘역 중 후손이 크게 발복받은 묘역을 들라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김반묘역을 말한다. 이곳 말고도 좋은 묘역이 여러곳 있겠지만 그래도 풍수학인들은 이곳을 광산김씨 발원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아마도 김반선생 후손에서 대제학 7명이 나오고 많은 인물이 나와서 이곳을 명당길지로 꼽는 것일 게다. 이곳 묘역을 오르면 양명한 잔디밭이 반겨주고 용호가 받혀주고 안산이 잘 막아준듯 보여 보는 사람마다 좋다고 말을 한다. 

    입수도두에서 내려보면 김반선생 묘 방향으로 한줄기가 힘있게 내려가고 있지만, 큰 아들 김익렬, 손자 김만준 묘가 있는 쪽은 끝을 김반 묘 쪽으로 휘어 이는 주인격이 못되고 보호사 역할을 하는 사격이다. 김반선생 묘 전순이 너무 가파른 것도 흠이다. 청룡이 다소 낮아 장풍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수구에 아파트가  즐비하여 오히려 수구막이가 된듯 하다. 큰 인물이 많이 나온 터이므로 다소 미흡한 면은 있을지라도 좋은 기운이 감도는 것은 틀림없다. 한참을 앉아서 쌀쌀한 기운에 빼앗긴 체온을 햇빛으로 보충하며 기운도 얻고 내려왔다. 

     

    김반·김익겸(金槃·金益兼)의 묘


    김반·김익겸의 묘(金槃·金益兼의 墓)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무덤이다.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사계 김장생의 아들이며, 신독재 김집의 아우인 사일 김반(1580∼1640) 선생의 묘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자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10년간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였다. 인조반정 후에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를 호위하여 공주(公州)까지 모셨다. 왕이 공주에 있을 때 정시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다시 왕을 호위하여 강화도로 모셨다. 그 뒤 대사헌·예조참판·병조참판·이조참판 등을 거쳤으며 세상을 떠나자 영의정으로 벼슬이 높여졌다.

    김반의 묘가 있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은 조선시대에 정민역(貞民驛)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이 일대에는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광산 김씨 가문의 묘역이 있다. 묘역에는 부인의 묘 2기와 큰아들 익렬(益烈), 셋째 아들 익겸(益兼), 손자 만준(萬埈)의 묘가 있으며, 두 개의 정려문(旌閭門: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그 동네에 세우던 문)이 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허주(虛州) 김반(金槃)


    1580(선조 13)∼1640(인조 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일(士逸), 호는 허주(虛州). 아버지는 장생(長生)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로 부사 대건(大乾)의 딸이며, 집(集)의 아우이다.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으로, 세거지는 충청도 연산(連山)이다.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의 거재유생(居齋儒生)이 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10여년 동안 초야에 은거하며 학문을 탐구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빙고별제(氷庫別提)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를 공주로 호종(扈從)하였다가 공주의 행재소(行在所)에서 실시한 정시문과에 급제, 호종의 공으로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그뒤 형조좌랑·예조좌랑·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부교리를 거쳐, 1625년 시강원문학(侍講院文學)·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626년 인헌왕후가 죽자 이귀(李貴)의 편견을 배척하였다. 곧 이조좌랑에 임명되고, 이어 정랑에 올랐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인조를 강화로 호종하고 돌아와 사인(舍人)·겸보덕(兼輔德)·응교(應敎)·전한(典翰)을 역임하였다. 1635년 병조참지(兵曹參知)·대사간·우부승지·형조참의·대사성·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듬해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 호종하여 왕에게 장병을 독려하도록 건의하였다. 화의가 이루어지자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그뒤 대사성·예조참판·병조참판·대사헌·한성부우윤·대사간·이조참판 등 요직을 역임하였으며,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김익겸(金益兼)


    1615(광해군 7)∼1637(인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남(汝南).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참판 김반(金槃)이며, 어머니는 연산서씨(連山徐氏)로 서주(徐澍)의 딸이다. 김익희(金益熙)의 아우이다. 

    1635년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는데, 각각 1등과 3등으로 합격하였다. 1636년 후금의 태종이 국호를 청으로 고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춘신사(春信使)로 파견된 나덕헌(羅德憲)·이확(李廓) 등이 청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와 함께 귀국하자,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청나라의 경축행사에 참가한 사신과 용골대의 주살(誅殺)을 주장하였다. 이 말을 들은 청나라의 사신이 급히 서둘러 돌아갔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가서 섬을 사수하며 항전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해지고 고전을 하는 중에 강화유도대장(江華留都大將)인 김상용(金尙容)이 남문에 화약궤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자분(自焚: 화약을 폭발시켜 스스로 목숨을 끊음)하려고 하였다.

    이에 영의정을 지냈던 윤방(尹昉)이 이 사실을 알고 달려와서 애써 만류하였으나, 김상용·권순장(權順長)과 함께 끝내 자분하고 말았다. 이때 강화에서 순절한 사람은 모두 30명이 넘었다. 뒤에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광원부원군(光源府院君)에 추봉되었다. 강화충렬사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

    문화재명칭

    김반·김익겸(金槃·金益兼)의 묘 

    소재지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 산18-17

    관리자(연락처)

    광산김씨 허주공파

     

    김반·김익겸(金槃·金益兼)의 묘 전경

    김반·김익겸(金槃·金益兼)의 묘역 

    김반·김익겸(金槃·金益兼)의 묘역 안내판...

    허주(虛州) 김반(金槃) 묘

    허주(虛州) 김반(金槃) 묘

    허주(虛州) 김반(金槃) 묘 전경

    허주(虛州) 김반(金槃) 묘 상석... 상석 아래 받침돌(일명 고석이라고 함)이 거북모양이다. 귀석(龜石)이라고 해야하나?ㅎ

    허주(虛州) 김반(金槃) 묘비

    허주(虛州) 김반(金槃) 묘 백호방 석물...

    허주(虛州) 김반(金槃) 묘 후경... 도시화 과정에서도 수구가 망가지지 않고 잘 버텨주었다. 뒤쪽 아파트들이 수구를 잘 막아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허주(虛州) 김반(金槃) 묘 청룡방... 앞쪽이 터져있어서 장풍에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파트들이 잘 막아주고 있다.

    허주(虛州) 김반(金槃) 묘 백호방... 장남 김익렬 묘역이 내백호를 형성하며 묘역을 향해 면궁하고 있다.


    김익겸(金益兼) 묘 전경

    김익겸(金益兼) 묘가 역장이 된 이유는 부친 김반 보다 먼저 병자호란 때 순직했기 때문... 아마 정혈처를 비워놓고 먼저 장사를 치렀을 것이다.

    김익겸(金益兼) 묘 백호방 석물...

    김익겸(金益兼) 묘 전경

    김익겸(金益兼) 묘 상석... 이곳도 부친 김반선생 묘와 마찬가지로 고석 대신에 귀석으로 상석을 받치고 있다.

    김익겸(金益兼) 묘비

    ▼새로 만들어 세운 김익겸(金益兼) 묘비...

    김익겸(金益兼) 묘 청룡방 석물...

    김익겸(金益兼) 묘 백호방 석물...

    김반·김익겸(金槃·金益兼)의 묘 입수도두...

    김반·김익겸(金槃·金益兼)의 묘 후경... 향법으로는 맞지 않는다.

    김반·김익겸(金槃·金益兼)의 묘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김반의 장남 김익렬(金益烈)의 묘

    김반의 장남 김익렬(金益烈)의 묘비

    김반의 장남 김익렬(金益烈)의 묘 후경

    김반의 손자 김만준(金萬埈)의 묘

    김반의 손자 김만준(金萬埈)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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