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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과 그 주변 답사
    답사는 즐거워/문화재답사 2006. 6. 1. 00:45

    얼마전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간송 탄생 100주년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
    이번 6월4일까지 한다고 합니다.
    저는 며칠전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성북동 일원에는 역사적 문화재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사적과 건물들이 많습니다.
    얼마전 문화카페 지인들과 함께 간송미술관 관람을 겸해
    성북동 일원의 문화재를 둘러봤습니다.



    삼선교 삼선중학교 앞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광복 후 2년여간 기거했던 돈암장이 있습니다.
    평소에 그곳은 개방을 안해서 안쪽 안채를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곳인데
    이번 답사에서는 정말 운좋게도 그곳 관리하시는 분의
    특별허가를 얻어 안채의 정원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원의 멋을 살려 아기자기하게 배치한 모습이
    지혜롭기까지 한 돈암장은 현재는 모 회사 회장님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문화재답게 전통의 멋을 한껏 뽑내고
    각종 석물과 추사의 편액 등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줄장미가 담장너머로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이즈음의 서울 답사길은 눈맛이 그만입니다.
    다음 행선지까지 조금은 먼길이지만 걸어서 가는 맛이 남다른지라
    발품을 팔기로 하고 터벅터벅 걸어 다음 행선지로 향했습니다.



    간송미술관 가는 길에 최순우 옛집이 있습니다.
    혜곡 최순우 선생님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신 분이죠..
    네셔널트러스트에서 문화유산1호로 구입하여 보존하고 있는
    뜻깊은 곳인데 그날은 마침 지킴이로 계시는 옛집지킴이 선생님께서
    직접안내를 해주셔서 혜곡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와
    이 집에 얽힌 내력을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가옥은 풍수와 음양오행의 사상을 져버릴 수 없는데
    그 작은 공간에 아기자기하면서도 의미를 부여하는 많은 물건들이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답사객들에게 새로움과 신선함을
    깊게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옛집지킴이 선생님의 배려로
    안방에 앉아 혜곡선생님이 따님에게 해외여행지에서 보낸 엽서와
    문인화 작품과 한국문화에 대한 사상을 들으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심취해 있었는데 어느순간 또다른 일정으로 인해 떠나야하는 마음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최순우옛집을 나와 간송미술관 가는 길로 잠시 오르다보면
    양잠의 창시자로 알려진 중국의 서릉씨를 모셔 제사 지내던 제단인
    선잠단지가 있는데 아쉽게도 문을 열지않아 그 안쪽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뽕나무가 주위에 심어져 있고 제단이 있어
    그 의미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도심에서 그래도 비교적 한산한 성북동인데도 이곳의 뽕나무가
    매연 등으로 많이 고사된 것을 보니 서울이 사람 살 동네로써
    썩 좋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하는듯이 보였습니다.



    간송미술관으로 가는 길목에 보리화분과 해당화가 놓여있어 반가운
    마음에 사진기에 담아봤습니다. 너무나도 친밀감이 느껴지더군요.
    갑자기 고향에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 위쪽에 하얀 찔레꽃이 있길래 내 고향에 붉은 찔레꽃이 있다는
    얘기를 해드렸더니 일행들이 놀라더군요. 찔레꽃은 흰색인데
    붉은꽃으로 된 찔레꽃이 있냐고...? 그래서 자세히 알려드렸더니
    인터넷에서 붉은꽃 찔레꽃을 어느새 퍼왔더라구요..ㅎㅎㅎ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와 함께 잠깐이지만 고향여행을 해보았습니다.



    간송미술관은 1년에 두번씩 봄,가을로 특별전을 열어 개방을 하는데
    이번 봄 전시회는 간송탄생10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해서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보급 유물 100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홍보를 해서인지 인파가 참 많았는데
    우리가 가는 날은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습니다.
    1층은 회화와 글씨, 2층에는 불상,도자기,서적 등...간송미술관이 보유한
    우리나라 국보들을 총망라해서 전시했습니다.



    10여년전에 간송미술관에서 우리나라 국보전을 개최했을 때 보고는
    오랜만에 보는 문화재들이었습니다. 그때보다는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일행중에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청해서 안내인을 맡아주신 전문가가 있어 설명을 곁들여
    모르던 부분을 많이 알 수 있는 기회도 가졌고 역시나
    '아는 만큼 밖에 볼 수 없다'는 명제를 새삼 깨우치는 계기였습니다.



    식사후에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닥터깽'을 촬영하고 있는
    상허 이태준 고택(尙虛 李泰俊 古宅)을 찾았는데 월북 작가 이태준이
    1933년에 지어 '수연산방(壽硯山房)'이란 당호를 짓고 1946년 까지
    거주하면서 단편<달밤>, <돌다리>, 중편<코스모스피는 정원>,
    장편<황진이>,<왕자 호동> 등 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차맛이 절로 날것 같은 그런
    운치가 있었습니다. 건물 외관만 보고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아마도 남향집에 담장이 낮고 그 위쪽에 건물이 약간 솟아있는 분위기가
    편안한 느낌을 받게 한것은 아닐지.....좀더 편안한 시간에 한번 찾아
    차한잔의 운치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고 심우장으로 향했습니다.



    심우장은 3.1운동 때 33인 중 불교계의 대표인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이 1933년에 짓고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심우장은 북향한 산비탈에
    집을 지었는데 그 이유는 한용운 선생이 남향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보기 싫다 하여 등을 돌려 북향한 집을 지었다고 하며,
    '심우장(尋牛莊)'의 '심우'란 소를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뜻을 가졌다고 합니다. 한용운 선생은 광복 1년 전인
    1944년에 중풍으로 운명할 때까지 이 곳에서 살았습니다.



    심우장은 성북동의 화려하고 부유하고 여유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어찌보면 서울의 달동네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인데
    이곳이 아마도 그린벨트에 묶여있어 개발이 제한되어 그런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심우장은 관리인이 늘 대문을 개방하여 방문객들을 맞아주시고 오히려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밖에 나오질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도 전혀 인기척이 없었는데 여러 곳을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문화재 관리하시는 분들이 모두 이 분들과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겁니다. 여러 사람들이 칭찬하는 이런 분....
    그져 고마울 뿐 입니다.



    만해스님이 심었다는 향나무는 한쪽에서 목이 잘린체 힘겹게
    세월을 연명하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병들어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스님이 기거했던 방에 들어가 향을 올리고 예를 갖춘 후에 일행 중의
    한 분께서 손수 해주신 '님의 침묵' 시 낭송을 듣노라니 새로운 기운이
    우리를 휩싸고 도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는데 시인의 생가나 시문학비가 있는 곳이나
    문학유적지를 방문할 때는 꼭 시낭송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누군가가 심우장 오르는 골목이 우리나라 전형적인 골목을 연상시킨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이곳은 전형적인 달동네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
    이또한 서울답사에서 맛보는 새로움이 아닐까요...?



    5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거리를 걷노라니
    몇 사람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동행을 해준
    일행에게 감사했습니다. 심우장을 내려오면서 이재준가를 들렀습니다.
    성북동 이재준가(李在濬家)는 조선 말기에 마포강에서 젓갈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상이 1900년경에 지은 별장이라고 전하는데 일설에는
    왕족이 지은 별장을 매입했다고도 합니다. 1960년 대림산업 회장을 지낸
    이재준이 취득하였고, 1985년 덕수교회에서 인수하여 현재는 영성수련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종 행사도 하는 것으로 봐서 교회측에서
    편의대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는 교회측에서 비공개로 해서
    내부는 구경 못하고 외부에서 문틈새로 안을 구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약간은 현대적인 맛이 있는 것 같은데 바깥 풍경으로 봐서는 여느 고가와
    큰 차이는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이곳에 있는 고목들과 담쟁이 넝쿨이
    유난히 인상 깊게 각인되어 어느 가을, 날씨 좋은 날 한번 찾아오고
    싶은 곳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성락원은 고종의 아들 의왕이 살던 별궁 정원이었고 이곳은 원래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는데 의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하다가 그의 아들 이건이 살았다고 전합니다. 지금은 개인이 관리하는
    곳으로 평상시에 문을 닫아 안을 구경할 수 없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재준가를 출발하면서 이곳을 가야될지 결정을 못하다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밖에서라도 구경하자고 찾았는데 뜻밖에도
    문이 개방되어 있어 안에 계시는 관리인께 양해를 구하고 그 어렵다는
    성락원 내부 쌍류동천(雙流洞天)을 답사했습니다.



    성락원은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도심 한복판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숨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정원을 감싸 안은체 서있는
    수목들은 고목은 아니지만 모두 장성한 나무들로 듬직하게 보였고
    수천년을 흘렀을 내원(內苑) 계곡에는 적당한 곳에 연못과 폭포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내원에는 추사의 글씨가 
    뚜렷이 남아있고 창덕궁 옥류천을 옮겨 놓은듯 천하제일 명산의
    심산유곡의 폭포를 옮겨 놓은듯 아담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인공폭포가 결코 눈에 거슬리지 않은체 골골이 흘러내려 한폭의
    동양화를 창조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내원은 방문객의 심신의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주는 그런 청량제 역할을 하기에 더없이 좋아 보였습니다.
    이런 곳에서 잠시 앉아 정담을 나누면 세상이 내것처럼 될 것 같았는데
    옛적 권력가들이 왜 이런 곳에 별장을 두고 지냈는지 알만할 것
    같았습니다.



    위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후원에 해당하는 연지와 수각정이 있었습니다.
    지금 한창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멋진 건물이 보였는데 송석정(松石亭)
    이라는 현판이 아래에 있고 옆 바위에도 음각되어 있는 것으로봐
    수각정(水閣亭)의 이름이 송석정이라는 정자일진데 정자보다는 훨씬 커서
    아마도 누각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안에는 잉어떼들이 한가롭게 돌아다녀 전형적인 우리나라 정원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이 누각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광은 경회루처럼
    앞이 트이고 연못가에 있어 시흥이 절로 나오겠더군요...



    어렵게 얻은 기회를 좀 더 누리고자 곳곳을 돌아다녔더니 관리인께서
    어서 나오라고 재촉하더군요. 싱그러운 잎사귀들과 따사로운 햇살,
    살랑이는 미풍, 그 안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거기에 같이했던 일행들의
    순수한 열정들까지...모두 섞이어서 성락원이 한폭의 그림으로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일행들과 성락원을 나서며 표정을 살펴보니 모두 지친 표정이 역력한데
    아무도 힘들다는 내색을 않더군요.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길상사를 찾아 떠나는 것을 보고 저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답사는 같은 관심을 같고 있는 일행들과 같이 해서인지 아주
    재미있었고 또한 행운도 많이 따라 평소 볼 수 없었던 문화재들을
    두루 볼 수 있어서 너무도 좋았습니다.
    같이했던 일행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세상사는 이렇듯 뜻하지 않은 기쁨도 가끔은 주는 모양입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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