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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권협,권대임(정선옹주) 묘 및 신도비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8. 1. 10:00
권협,권대임(정선옹주) 묘 및 신도비
구로구에는 묘가 몇 기 있는데 그중 풍수에서 한국의 100대 명당에 속하는 묘가 있다.
바로 안동권씨묘역이다. 저수지였던 곳이 구로구에서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여 묘역 일원이
깨끗하게 정화되고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공원이 되었다.
저수지위에 데크시설을 하여 자연생태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팔각정도 지어 주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져 있다.
안동권씨 묘역을 혹자는 금계포란형이라고도 하고 어떤이는 고추명당이라고도 한다.
풍수에서 혹세무민하는 도구로 많이 쓰이는 것이 물형론이다.
물형론으로 설명을 하면 쉽게 먹혀들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때는 물형론이 정확할 때도 있겠지만 그런 것보다 맥이 제대로 들어왔는지?
혈은 제대로 되었는지? 보국이 잘 갖춰져있는지? 물과 사격은? 이런 기본적인 것을 보고 논한 다음에
물형론을 꺼내면 좋을듯한데 어떤 책이든 인터넷 자료든 대뜸 물형론을 먼저 꺼낸다.
그것도 대부분이 봉황,금계에 해당하는 물형으로...
이런 물형에 너무 현혹되지 말고 참고만 하시길...
흔히 명당이라고 하는 곳은 누가봐도 명당이 되는 곳이다.
약간씩의 차이와 해석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도알고 너도 알고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명당에 가면 온화하고 느낌이 좋고 잘 감싸주고 왠지 편안해진다.
굳이 물형, 수법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아는 것이 바로 명당이다.
그러니 누가 명당 운운한다해서 내가 직접 가서보니 아닌 것 같다하면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갖을 필요가 있다.
물론 전문가들이 있으니까 조금은 참고하시고 너무 신봉하거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세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풍수공부 아무리 많이해도 정답을 찾기란 힘들다.
아주 쉽게 접근하고 실 생활에 필요한 풍수가 진정한 이시대의 풍수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 이곳은 미지정 문화재로 구로구에서는 정선옹주 묘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 궁동 안동권씨 묘역
▼ 위성에서 내려다본 안동권씨 묘역... 정선옹주묘역으로 나와있다. 한눈에 봐도 용이 감싸 안고
있는 산세이다. 누구든 알 수 있다는 말은 이런 것을 보는 눈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권대임(權大任)
1595년(선조 28)∼1645년(인조 23). 조선 중기의 서예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홍보(弘輔).
할아버지는 길창군(吉昌君) 예조판서 권협(權悏)이고, 아버지는 길흥군(吉興君) 권신중(權信中)이다. 어머니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이씨는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7세손이자 사평(司評) 이정필(李廷弼)의 딸이다.
서예(書藝)에 뛰어나서 선조가 칭찬하며 여러 번 상을 내렸고, 승진하여 통헌대부(通憲大夫)에 이르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반란이 일어나자 공주(公州)로 피난 가는 어가(御駕)를 호종(扈從)하였고, 그 공으로 봉헌대부(奉憲大夫)가 되었다. 1635년(인조 13) 아버지 3년 상이 끝나자 선무공신(宣武功臣)의 적손(嫡孫)으로 길성군(吉城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피난 가는 어가를 호종하여 숭덕대부(崇德大夫)로 승진되고 도총관(都摠管)이 되었다. 1639년(인조 17) 심양(瀋陽)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행장에 든 재화를 다 털어서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오지 못한 노약자들을 속환(贖還)하여 돌아왔다.
정선옹주(貞善翁主)와 결혼하여 길성위(吉城尉)에 봉해졌고, 돈령부봉사(敦寧府奉事) 권진(權瑱)을 낳았다. 사후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유록대부(綏祿大夫)를 더하여 정일품이 되었다.▼ 권대임 신도비
▼ 권대임과 정선옹주 묘 전경
▼ 권대임과 정선옹주 묘
▼ 권대임과 정선옹주 묘비
▼ 권대임과 정선옹주 묘
▼ 권대임과 정선옹주 묘 장명등
▼ 권대임과 정선옹주 묘 석물...
▼ 권대임과 정선옹주 묘 후경..
권협(權悏)
1553년(명종 8)∼1618년(광해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성(思省), 호는 석당(石塘).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상(常)이며, 어머니는 나운걸(羅云傑)의 딸이다.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사예·승문원·춘추관 등의 벼슬을 거쳐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89년 각 도에 괴질이 발생하자 함경도에 파견되어 백성들을 돌보고 제사를 올렸다. 임진왜란 때에는 장령으로서 서울을 굳게 지킬 것을 주장하였다.
1596년에 교리·시강관을 거쳐 이듬해 응교로 있을 때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급사(告急使)로 명나라에 가서 사태의 시급함을 알리고 원병을 청하였다.
이때, 명나라 병부시랑 이정(李楨)이 우리나라의 지세를 알고자 하므로, 산천의 형세와 원근을 도면에 그려가며 설명하는 데 막힘이 없었으며, 이로 인해 보병과 수군을 얻고 군량을 조달하게 했다. 돌아와서 예조참판·호조참판이 되었으며, 황해도관찰사로 나아갔다.
1604년 대사헌이 되었고, 특명을 받아 선무원종공신으로 봉해지고, 이듬해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졌으며 전라도감사가 되었다.
1607년 예조판서를 거쳐 1609년 종묘영건을 감수한 공으로 정헌대부가 되었으나, 광해군 때에 홍문관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였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안동권씨 권협선생 신도비... 권대임의 조부.. 안동권씨 묘역의 제일 윗어른이다.
▼ 안동권씨 권협선생 묘 전경
▼ 안동권씨 권협선생 묘
▼ 권협선생 묘비
▼ 권협선생 묘 석물
▼ 권협선생 묘.. 해질녘이라 햇빛이 비추어 이상하게 보인다.
▼ 권협선생 묘 후경...
▼ 권대임 묘 아래에는 부친 권신중 묘가 있다. 일명 역장인데 왕의 부마라 그리했다는 설이있다.
▼ 권신중 묘비
▼ 권신중의 묘 아래에는 권대임의 아들 권진의 묘가 있다.
▼ 안동권씨 묘역 아래 조성된 궁동생태공원
▼ 안동권씨 묘역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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