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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월산대군사당 석광사 및 파림군 묘

터잡이야초 2012. 3. 8. 10:00

월산대군사당 석광사 및 파림군 묘


월산대군 묘를 답사하면서 그 인근에 사당이 있었지만 항상 시간에 쫓겨 맘먹고 한번 답사하기로 생각

하던 중 마침 고양시 답사기회가 생겨 석광사와 파림군 묘를 답사할 수 있었다.

월산대군 사당은 지금은 인근에 도로가 생기면서 도로 아래로 놓이게 되어 음습한 환경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멀어져있는데 예전에는 월산대군 묘를 가기위해서는 사당을 지나 묘역으로 들어섰을 것으로 

보인다. 사당 뒷편으로 월산대군 손자인 파림군 묘와 증손 이성 묘가 있어서 함께 답사를 했다.

월산대군 사당 석광사

 

조선 제9대 성종(成宗)의 친형인 월산대군 이정(李정)(1454∼1488)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이다. 사당은 묘소의 서쪽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네모난 담장 중앙에 남향하여 솟을삼문을 세우고 그 안에 사당을 모셨는데, 담장은 개인 사당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장대석(長臺石)으로 하단을 3단 가량 축조하고 제2단의 장대석을 정교하게 치석하여 화염형(火焰形)의 배수구까지 갖춘 격식 있는 구조이다. 사당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전면 1칸은 제례의 기능에 맞추어 개방하였다. 지붕은 전후면에만 경사를 이루고 양 측면에 풍판(風板)을 덧대어 놓은 맞배지붕이며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浮椽)을 덧달아 놓지 않은 홑처마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한 단을 올려놓은 외벌대이고 그 바닥은 박석(薄石)으로 깔아 놓았다. 정면의 어칸은 양측의 협칸에 비해 약 2배 가량 넓게 되어 있는데 이는 제례 기능에 부합되도록 꾸며 놓은 것으로 보인다. 각 칸에는 모두 하부에 궁판이 있는 띠살문(세살문)을 달아 놓았는데 어칸은 네 짝이고 양 협칸은 외짝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영종대왕어제제문(英宗大王御製祭文)'의 편액(扁額)이 있는데 영조가 친히 '석광사(錫光祠)'라는 편액을 내렸으며, 정조(正祖)·순조(純祖) 때는 조정에서 신하를 보내어 왕을 대신해서 제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내부 중앙의 후면에 신위가 모셔져 있고 그 옆에 신주를 운반할 때 사용하는 요여(腰與)가 보존되어 있다. 이 사당이 처음 창건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숙종(肅宗) 19년(1693) 이전에 이미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의 건물은 정조 10년(1786)에 중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당의 앞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고고한 자태로 사당을 지키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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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9호
   월산대군사당 석광사 및 파림군 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26-1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26-1
   전주이씨


 

 

 

파림군(坡林君) 이주(李 ) 묘(墓)


원당읍(元堂邑) 신원 1리(新院 1里) 월산대군(月山大君)  사우(祠宇) 윗쪽에 위치(位置)해 있다. 묘(墓)는 양천현부인(陽川縣夫人) 허씨(許氏)와 합폅(合 )되어 있다. 묘(墓) 엎에 이수( 首)에 기단부(基壇部)가 있는 폭65cm, 두께 19cm, 높이  120cm의 대리석(大理石) 신도비(神道碑)가 있고 앞쪽에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종실(宗室) 정의대부(正義大夫) 파림군주지묘양천현부인(坡林君 之墓陽川縣夫人) 허씨(許氏)」라고 기록(記錄)된 폭 42cm 두께 18cm 높이 110cm의 기단(基壇) 이수부( 首部)의 오석(烏石) 묘갈(墓碣)이  있는데 이는 초건(初建)이 중종(中宗) 38년(1543) 5 월 이고 재건(再建)은 서기1983년 11월에 월산대군파종회(月山大君派宗會)에서 입석(立石)한 것이다. 그 외의 석물(石物)로는 문인석(文人石) 2 기(基)와 망주석(望柱石) 2 기(基)가 있다.
파림군(坡林君)은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장손(長孫)으로  정의대부(正義大夫)에 올랐으며 파림군(坡林君)에 봉(封)해졌다.

 

양천도정(陽川都正) 이성(李誠) 묘(墓)


원당읍(元堂邑) 신원 1리(新院 1里)의 아버지 파림군묘하(坡林君墓下)에 위치(位置)하여 있다. 묘(墓)는 신부인(愼夫人) 광주김씨(光州金氏)가 부좌( 左)된 쌍분(雙墳)이다.  앞쪽에 폭 2.5척(尺), 두께 8촌(寸), 높이 4.5척(尺)의 대리석(大理石) 묘표(墓表)는 「조선국(朝鮮國) 종실(宗室) 명선대부양천도정(明善大夫陽川都正) 성지묘(誠之墓) 신부인(愼夫人) 광주김씨부좌(光州金氏 左)라 기록(記錄)되어 있으며 1732년 3 월에 입석(立石)한 것이다. 석물(石物)로는 상석(床石) 1 망주석(望柱石) 2 문인석(文人石) 2 기(基)가 있다.
양천도정(陽川都正)은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손(孫) 파림군(坡林君)의 장남(長男)이다.

<고양군지에서 인용>

 

 

 

 

 

 

 

 

 

 

 

 

 

 

 

 

 

 

 

 

 

 

 












▼ 월산대군 사당 석광사 전경..

▼ 월산대군 사당 석광사 앞에 있는 보호수 입간판..

▼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수령 250년) 

▼ 월산대군 사당 문화재 입간판

▼ 월산대군 사당

▼ 석광사..

 

▼ 월산대군 사당 석광사 뒷편 산에 있는 월산대군 손자 파림군 묘..

▼ 파림군 신도비

▼ 파림군 묘 석물...

 

 

 

▼ 파림군 묘 후경

 

▼ 월산대군 증손이며 파림군의 아들 양천도정 이성 묘

▼ 양천도정 이성 묘 전경

▼ 양천도정 이성 묘표

▼ 양천도정 이성 묘 석물...

 

▼ 양천도정 이성 묘 후경...

 

▼ 양원도정 이혜 묘

▼ 양원도정 이혜 묘표 

▼ 파림군 묘역에서 월산대군 사당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