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경기 성남]송산 조견선생묘

터잡이야초 2012. 3. 25. 10:00

송산 조견선생묘

 

성남지역 묘지답사를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실시했다. 갑자기 눈발이 세게 날리어 답사를 포기하고 돌아오려고

했더니 오는 도중에 햇볕이 나서 다시 답사를 진행했다. 눈발이 심하게 날릴 때 조견선생묘를 답사했는데 사진이 

엉망이 되어 다시가서 촬영을 해야할듯 하다. 

그런데 3월의 진눈개비를 기념하는 뜻으로 조견선생 묘 사진을 올려본다. 추후에 다시 촬영을 하게 되면 사진을 교체할 

예정입니다.

조견(趙狷)
1351년(충정왕 3)∼1425년(세종 7).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 초명은 윤(胤). 호는 송산(松山).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덕유(趙德裕)이며, 어머니는 오의(吳懿)의 딸이다. 영의정부사 조준(趙浚)의 동생이다.
유년에 출가하여 여러 절의 주지를 역임하다가 30세가 넘어 환속하고, 승직(僧職)경력으로 인하여 좌윤(左尹)에 서용되었으며, 고려말에는 안렴사(按廉使)를 지냈다.
1392년(태조 1) 상장군으로 이성계(李成桂)추대에 참여하고 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1394년 경상도도절제사, 1397년 지중추원사, 1400년(정종 2) 삼사우복야(三司右僕射)를 거쳐 1402년(태종 2) 도총제(都摠制) 재직중에 사은사의 명을 받았으나, 사행이 위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병을 칭하여 이를 사퇴하였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직첩을 몰수당한 뒤 축산도(丑山島)에 유배되었다가 곧 사면되었다.
1403년 좌군도총제가 되고 평성군(平城君)에 봉하여졌으며, 이해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7년 충청도도절제사 겸 수군도절제사를 거쳐, 이듬해 고의로 딸의 입명(入明)를 저지한 일로 개령에 부처되었다. 곧 사면되어 청성군에 봉하여지고, 1410년 봉안사(奉安使)가 되어 태조 진영(眞影)을 완산부(完山府)에 봉안하였다.
1419년(세종 1) 판우군도총제부사(判右軍都摠制府事)에 보임되고, 1421년 3월 71세로 퇴관하여야 하였지만 궤장(几杖)을 받고 계속 벼슬길에 있다가 같은해 12월 평성부원군에 진봉하였다.
그런데 그의 생애에 있어서 “조선이 개국되고 형 조준으로 인하여 개국공신에 책록, 조준의 간곡한 출사권유가 있었지만 고려에 절의를 지켜 은거하였으며, 자손에게도 고려에의 절의를 당부하였다.”고 한 이설이 있기도 하나 신빙하기 어렵다.
양주의 정절사(旌節祠)와 송산사(松山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평간(平簡)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네비게이션주소 
 관리자(연락처) 

   성남시 향토유적 제3호
   송산 조견선생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30
   동일
   평양조씨송산공종회


 

 

 

 

 

 

 

 

 

 

송산조견선생(1351~1425)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양이고 초휘는 윤이고 자는 거경이며 호는 송산, 시호는 평간공이다.
조선왕조가 개국하자 선생은 통곡하며 두류산(현 지리산)으로 들어가 이름을 견으로 자를 종견이라 바꾸었고, 조선조 태조가 선생의 절개를 찬양하고 재주를 아껴서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청계산으로 은거하여 망경대에 올라 고려 송도를 바라보고 통곡하며 생을 마감한 인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벼슬은 고려조에는 지신사와 안렴사에 이르렀고 조선조에는 벼슬이 상장군 개국공신, 지중추원사, 평성부원군들을 제수 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다만 조선초기에 관직을 제수한 기록과 조선중기에는 고려조의 충신으로 인정받은 기록이 있어 행적에 대한 이견이 있으나, 본 묘역은 여말선초의 사대부 묘제를 가지고 있고 석물(묘표, 문인석, 석등 등)이 600년 된 묘역으로 고려말 조선초기의 묘제를 알수있는 유적이다.
특히 묘역주변에는 선생의 자손묘가 소재하는데 묘 형태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묘 형태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선생은 양주 수락산 기슭의 한 마을( 현 의정부 송산마을)에서 75세에 생을 마감하였고, 후세에 선생의 호를 따서 송산이라 부르고 살던 터에 유허비를 세우고 지역사람들이 송산사(경기도문화재 제42호)를 중건하고, 양주에도 정절사(사천서원)을 세워 남을진, 조견 두분을 모시고 사림들이 매년 제사를 올리고 있고 , 공주에도 선생의 신주를 모신 송산사우(공주시 향토유적 제8호)가 있다.
.

<성남시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

 

 

 

 

 

 

 

 

 

  

 

 

 

 

 

 

 

▼ 송산 조견선생 묘역... 눈발이 사납게 날린다.

▼ 송산 조견선생 신도비

▼ 송산 조견선생 묘역 원경

▼ 조견선생 묘 안내판

▼ 조견선생 묘갈

▼ 조견선생 묘표

▼ 조견선생 묘 장명등.. 눈발이 날려 자세히 찍지 못했다.

▼ 조견선생 묘 석물

 

▼ 조견선생 묘역에 부러진 구 묘표...

▼ 조견선생 묘 전경

▼ 조견선생 묘 후경

 

▼ 조견선생 묘 청룡쪽 후경

▼ 조견선생 묘 백호쪽 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