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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토지문학공원...원주답사(2)
터잡이야초
2011. 1. 7. 11:52
박경리 소설 원류를 찾아서...토지문학공원
토지문학공원구룡사를 출발하여 원주의 또 하나의 명물인 토지문학공원을 찾았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생가를 중심으로 문학공원을 조성해서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토지문학공원은 소설'토지'의 배경이 되는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간도 용정까지를 느낄 수 있도록 테마식으로 꾸며 토지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 공원입니다. 입구의 살구나무...떨어진 것만 주었답니다..ㅋㅋㅋ
입구에 들어서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서너명이 작은 나무 하나를 열심히 흔들고 있었는데 나무에는 노오란 살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떨어뜨려 놓은 살구 몇알을 주어 냄새를 맡아보니 어릴적 우리집 뒤안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생각났습니다. 살구꽃이 활짝 필 때면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싯구처럼 꽃대궐을 이루었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노란 살구가 먹음직스럽게 열리죠. 어른이 되어 아이들이 살구나무를 흔들어 살구를 죄다 떨어뜨리면 야단쳐서 말려야 하는데 저는 어찌된 일인지 그냥 우두커니 서서 오히려 그 광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토지문학공원 앞의 버스
살구나무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버스 한 대가 입구를 막고 있어 대뜸 뭐라 한마디 할려고 봤더니 다름아닌 이동식 도서관이더군요... 요즘 아이들이 워낙 책을 안읽는다고 이렇게 찾아다니며 책을 빌려주고 있더군요. 참으로 좋은 발상인데 제 생각이 옹졸한 것 같아 괜시리 쑥스러워 졌습니다. 토지문학공원 전시관과 박경리 선생님의 시화
앞쪽에 근사한 원형건물이 눈에 띄는데 바로 관리동이었습니다. 그 건물 2층에 박경리의 토지 전시실을 꾸며 놓았더군요. 입구 계단에서부터 박경리 선생님의 시화와 토지의 내용을 판넬로 만들어 전시해 놓아 관람객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배려를 많이 했더군요... 가이드로 부터 박경리 선생의 생애와 토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비디오 영상물을 관람하면서 선생님에 대한 것을 새롭게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동 평사리 마당과 생가 앞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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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테라스에 나와서 밖을 보니 아기자기하게 공원을 꾸며 놓았더군요. 선생님의 생가를 중심으로 한쪽에는 평사리 마당을 꾸며 놓았는데 섬진강을 상징하는 물길과 선착장, 둑길, 정자 등이 잘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 위쪽에는 홍이동산, 건너편에는 용두레벌 등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누어 공원을 조성했더군요. 생가와 생가 앞 연못
생가 앞에는 선생님이 만드셨다는 작은 연못과 오죽, 각종 꽃나무들이 있었고 텃밭에는 오이와 상추 등이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기르시진 않았겠지만 예전에 선생님께서 손수 재배하시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려고 관리소측에서 배려를 해 준 것들 입니다. 아쉽게도 생가 안은 현재 보수공사 중이라 개방을 하지 않고 있는데 나중에 개방을 하게 되면 선생님께서 토지를 완간하실 때 쓰시던 책상이며 원고지며 선생님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전시한다고 하니 그때가 기다려 집니다. 홍이동산
홍이동산으로 오르는데 상큼한 냄새가 코를 진동합니다. 이맘 때는 어디를 움직여도 밤꽃 내음이 코를 자극하는데 이 냄새는 밤꽃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뽕나무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오디가 땅에 떨어져 뭉개져 있고 잘 생긴 뽕잎이 하늘을 받혀 이고 있었습니다. 일행중에 누구랄 것도 없이 오디를 따서 맛을 보시더니 모두들 즐거워 하십니다. 여행의 참 맛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런지요...? 홍이동산을 내려오는 길목에 간도 용정을 옮겨놓은 용두레벌이 있습니다.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과 용두레 우물이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만들어 놓은 토지문학공원을 보니 후세들에게 산교육의 장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토지는 26년에 걸친 집필기간 끝에 완성된 5부16권 분량의 대하소설이며 우리 국문학사의 큰 획을 긋는 대작으로서 아마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인조의 비 인열왕후 한씨의 탄생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일행들은 유명한 원주복추어탕집으로 가서 맛있는 추어탕으로 점심을 했습니다. 유명한 집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았습니다. 추어탕도 맛있고 나중에 나온 손두부도 가히 일미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특이한 기념비가 있어 확인해보니 조선 인조의 비였던 인렬왕후 한씨의 탄생비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조선조 왕비의 대부분은 한양이나 경기도 태생인데 인렬왕후는 원주태생이라 의아해했지만 내용을 보니 아버님 한준겸이 원주목사 시절에 낳은 딸이라 더군요...또한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등극을 한 왕이니 왕자나 세자의 신분으로 결혼한게 아니라서 원주태생의 왕비가 탄생한 것이더군요... 폐사지의 넓은 벌...
배부르고 등 뜨시면 잠 밖에 안온다 했는데... 잠이 올 사이도 없이 차안에서 어찌나 즐겁게 지내시는지 구경하느라 오수조차 달아나 버렸습니다. 차안에서는 다같이 노래부르기가 진행 되었는데 저절로 흥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뜨거운 햇살이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6월의 뜨거운 답사길... 어느새 폐사지의 허허로운 벌판에 도착해 천년을 한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지켜온 부도비와 석조물을 배알하러 우리는 기대에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계속>
출처 : 불혹전후글쓴이 : 소올산 원글보기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