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경기 과천]좌의정 김약로 묘

터잡이야초 2012. 10. 10. 10:00

좌의정 김약로 묘

 

청풍김씨 판서공파 묘역을 이제 거의 다 돌아봤다. 김유선생의 아들 3형제 중 첫째가 이조판서

김취로, 둘째가 좌의정 김약로, 셋째가 영의정 김상로선생인데 첫째와 셋째 묘는 경기도 화성에

있고 둘째 김약로선생의 묘는 과천에 있다.

<김취로 묘 바로가기>

<김상로 묘 바로가기>

갈현교차로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면 가자우물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면 우측 산끝지점에 묘역이 보인다.

인근이 개발이 되지않아 다행이 묘역이 보전되고 있지만 자꾸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걸 보니 머지않아

개발이 묘역까지 이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서 보니 지하철4호선이 묘 바로 아래로

지나가고 있었다. 누가 일부러 그런것 처럼... 불행중 다행일까? 지하철 덕분에 개발은 되지 않을테니

묘지는 보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맥을 받고 안받고는 나중 일이고....

김약로(金若魯)
1694년(숙종 20)∼1753년(영조 2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민(而敏, 而民), 호는 만휴당(晩休堂).
부친은 대제학 김유(金楺)이다.
1727년(영조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고, 그뒤 《숙종실록》 보충의 잘못을 논하다가 유배당하였으나 이듬해에 석방되었다.
1731년 정언이 된 뒤 지평‧교리‧수찬을 거쳐 1736년 승지, 1740년 개성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병조참판‧예조참판을 거쳐 1742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744년 공조‧호조‧병조의 판서가 되었고, 1746년 우참찬, 이듬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거쳐 1749년 우의정, 그뒤 좌의정이 되었다.
1752년 약방도제조(藥房都提調)가 되었는데, 왕세손이 죽자 파직당하였으나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다시 기용되었다. 한때 아우 김취로(金取魯)‧김상로(金相魯)와 함께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세도를 부리기도 하였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좌의정 김약로 묘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산19-1
   청풍김씨


 

 

 

 

 

 

 

 

 

★청풍김씨 가계도
13세
김인백
  14세
김극형
(공조정랑)
  15세
김징
(관찰사)
  16세
김구
(우의정)
  17세
김희로
  18세
김치만
  19세
김종수
(좌의정)
   
    17세
김재로
(영의정)
  18세
김치인
(영의정)
 
                         
  16세
김유
(대제학)
  17세
김취로
  김약로
(좌의정)
   
  김상로
(영의정)

 

▼ 김약로선생 묘비 

▼갈현교차로를 지나 우측으로 들어서면 가자우물이 나오는데 거기서 조금만 더 오르면 묘역이 나온다.

▼ 묘역 오르는 길 

▼ 김약로선생 묘 전경 

▼ 김약로선생 묘

▼ 김약로선생 묘 근경

▼ 김약로선생 묘 상석

▼ 김약로선생 묘비

▼ 김약로선생 묘비 뒷면, 좌우측면

▼ 김약로선생 묘 장명등

▼ 김약로선생 묘 석물... 이 석물로 볼 때 김취로선생 묘역에 있는 석양은 앞쪽에 문인석이 사라져

버린 것으로 추측된다.

▼ 김약로선생 묘비와 석물

▼ 김약로선생 묘 측경

 

▼ 김약로선생 묘 곡장과 후경...

▼ 김약로선생 묘 후경... 청룡,백호가 잘 감아주고 안산이 적당히 막아주어 명당이 포근하다.

▼ 김약로선생 묘 청룡쪽 후경...

▼ 김약로선생 묘 백호쪽 후경... 백호가 잘 발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