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사진으로 엮은 제주 여행(3)
좁은 공간에서의 일상은 너와 나가 없이 우리라는 공동체의 생활이 주류를
이루기 마련이다. 펜션에서의 아침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간에 맞춰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는데 게으름이 천성인 나로서는 여러가지로 곤혹을
면치 못했다. 일어나라는 핀잔을 들으며 간신히 거구를 추스르고 겨우 눈꼽을
띠고서 차에 오르니 어느새 푸른 제주 앞바다의 풍광 속에 푹 빠져버린듯
기가막힌 해안 절벽에 다다른다. 이름하여 주상절리...
아침 식사를 하며 바라본 여미지 식물원... 멀리 산 봉우리가 파져있어서
보기 흉하다.. 여미지식물원의 역사를 말해주는듯 하다...
해안을 조각칼로 다듬은 것도 아닐진데 다각형의 기둥들이 죽 늘어선 모습이
인간의 기교를 비웃기라도 하는듯 하다. 주상절리는 주로 현무암질 용암류에
형성되는 기둥모양의 평행한 절리로서 고온의 용암이 급격히 냉각되는 과정에서
수축작용에 의해 생겨난 틈이라고 한다.
주상절리....깎아지른 절벽이 조각한 것처럼 아름답다
산방산에 있는 산방굴을 찾을 즈음에는 갑자기 눈발이 거세게 불어닥친다.
날씨 변덕이 심한 제주라고는 알지만 갑자기 눈발이 날리니 오후의 마라도
여행이 걱정이 된다. 아무튼 산방굴 답사팀과 용머리 답사팀으로 나눠 각자의
길을 나서기로 하고 나는 산방굴을 포기하고 용머리해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멜전시관에서 바라본 산방산
용머리라는 말에 나오는 용이라는 글자는 항상 범상치 않은 지형을 이르는
말이고 통상 그 형상이 강이나 바다에 머리를 박은 형상이 주류를 이룬다.
이곳의 유래에서도 나오듯 한마리 용이 바다를 향해 바라보고 선 모습을 닮아
용머리라 불리어졌는데 진시왕이 용의 꼬리와 잔등부분을 칼로 끊어버려
산방산이 며칠째 울음을 울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이곳은 부안 채석강과
비슷하지만 용암층으로 이뤄진 특이한 현무암 수평층을 이루고 있어 그 모습이
아주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곳에 들어서면 바다와 기암절벽이 함께
모여있어 여행객의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특히나 이곳의
애머랄드빛 바닷색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의 일편을 만들어 준다.
용머리 해안의 현무암 수평층...
네델란드인이 우리 땅에 들어와 이름을 알리기는 하멜이 처음이다. 하멜은
지금으로부터 350여년 전인 1653년에 대만에서 일본으로 항해 중 풍랑을 만나
이곳에 표착하여 약 13년간 조선에 머물며 기록한 하멜표류기가 유럽의 여러
나라에 알려지며 베스트셀러가 되어 조선을 유럽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3년에 하멜상선전시관을 세워 내부에 관련자료를 전시해
놓았는데 별로 특이한 것은 없다. 용머리해안을 관람하면 무료로 하멜상선전시관을
관람할 수 있다. 오히려 특이한 것은 350년 후에 나타나 2002월드컵의 히어로
네델란드인 히딩크의 등장이 의아스럽지만 우리에게는 친숙한 면을 보여준다.
하멜전시관으로 사용 중인 '스페르웨르호' 재현품
마라도를 가기위해 송악산을 향하면서 시간이 약간 남아 문화답사팀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답사를 실현했다. 일본군의 비행기 격납고와 알뜨르비행장 답사가
그것이다. 비행기격납고는 생각보다 엄청 작았지만 안에 들어가보니 비행기
한 대는 충분히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너른 들판에 널려있는 비행기 격납고
그 너머에 드넓은 평야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제주섬이라고 생각했던 내 눈에
끝없이 펼쳐진 평야는 한편으로 감탄을 자아냈지만 이곳이 일본군의 비행장
활주로였다는 설명을 듣고나니 저절로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남제주군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이곳을 송악산과 모슬포를 연계한 전적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적혀있다.
알뜨르비행장...알뜨르는 마을 아래에 있는 들이라는 뜻이다...
일본의 만행이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혔는지 남제주의 드넓은
평야에 울뚝불뚝 솟아있는 인공물이 모두 일제시대의 잔해물인 것만 보아도
충분히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하루 빨리 전적지 조성이 이뤄져 자라나는 세대들
에게 실상이 알려지길 기대해 본다.
들판에 널려있는 일제시대의 시설물들...
송악산 모슬포항으로 돌아와 마라도행 배를 기다리며 바라보니 이곳에 일제시대
가미가제특공대의 보트를 숨겼던 동굴진지가 눈에 들어온다. 모래사장을 지나
그곳을 가보니 예전의 동굴이 약간은 무너졌으나 아직 그 모습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깊이가 깊은 곳도 있고 얕은 곳도 있었는데 특이하게 두개의 동굴이
안에서는 하나로 합해져 있었다. 이것은 적을 기만하고 유사시 긴급하게 활용하기
위한 방책이었으리라... 이 동굴을 파기위해 제주 민초들을 동원하여 갖은 학살을
감행했다하니 또다시 일제의 만행을 뼈저리게 느껴본다.
송악산 동굴진지...
대한민국최남단 마라도..! 언제부터인지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우리의 국토!
마라도는 원래 전날 답사하기로 했으나 전날 풍랑이 심해 오늘로 연기한 터이다.
그런데 오후까지 여전히 바람이 드세어 걱정이 앞선다. 마라도를 향해 출발한
배는 롤로코스터를 탄듯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을 치면서 어떤이는 아주 스릴
넘친다고 즐겼다지만 나는 구명보트 위치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ㅎㅎ
대한민국최남단비....
마라도 남쪽에 장군바위와 함께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다
마라도에 도착하니 말로만 듣던 바람이 어찌나 심하던지 숨을 쉬기가 힘드는데
여기저기서 섬 일주용 자동차를 렌트하라고 야단들이다. 우리야 원래 다리품
팔아 섬을 한 바퀴 돌기로 작정을 하였으나 일행 중 한 분이 한라산을 오르며
다친 다리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그 분들... 끝까지 다른 분들께 부담을
주기 싫다고 힘든 답사를 정신력으로 버티어 내었다. 이 글을 빌어 두 분께
감사와 칭송을 함께 드립니다... 부디 행복한 나날을 영위하시옵기를...
마라도에 있는 마라분교... 일요일이라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라도에 가면 당연히 짜장면을 먹어봐야 한다. TV 선전에 워낙 강하게 인식이
되었기에 우리도 원조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해물짜장면을 시켜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특히나 배고플 때 먹는 짜장면은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마라도에 세곳이나 있다는 자장면집... 이곳이 원조라한다...맛이 좋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섬을 일주하는데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사물이 다 정겹다.
우리 조국의 최남단의 시설들이니 어찌 아니 정겨울손가...? 마라도에서도 많은
신경을 썼는지 건물 하나하나에도 운치와 의미가 있어 보였다. 특이한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가운데가 비어있어 이건 잘못 지은거라고 일장 연설을 한 후에
봤더니 화장실 건물이다. 참고로 가운데가 텅 빈 건물은 복이 달아나는 건물로
살림집으로 지어서는 안된다.
언덕 위의 집...우측 건물처럼 가운데가 뚫린 집에서 살면 안된다...
최남단표석을 돌아 언덕을 오르는데 마라도성당과 등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광이다. 이곳 언덕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마라도 모습은
두고두고 마음 속에 오래 남을 추억의 장이 되었다. 언덕 아래에는 바람도
잦아들어 살기 좋은 곳으로 인식되었는데 언덕을 넘자마자 다시금 바람이
강하게 불어댄다. 역시나 마라도의 성격을 새삼 깨우치게 만든다. 마라도에는
새로 침엽수림을 조성하느라 많은 나무를 심었는데 지금 한창 자라 수림을
형성하고 있었다. 앞으로 몇년만 더 지나면 마라도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침엽수림이 떠오를 것이다...
마라성당과 마라도 등대... 이 일대가 가장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배가 떠날 시각이 다가오자 아쉬움속에 서둘러 부두로 가는데 바람이 어찌나
거세든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다. 바다를 보니 우리가 타고 나갈 배조차
들어오다가 잠시 멈춘 듯 머뭇거린다. 그래도 수레바퀴는 돌고 지구는 돌듯
우리는 무사히 마라도를 빠져나와 새로운 여행지를 탐하고 있다...ㅎㅎ
추사 김정희 선생의 9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추사적거지를 향했다. 이곳에는
추사관을 세워 추사선생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 유명한 세한도(국보
180호)를 이곳에서 그렸다고 한다. 추사관 뒤편에 추사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가옥이 나오는데 마루가 너무 낮고 집이 낮은게 조금은 이상해 보였다.
이곳에 물허벅이 전시되어 있고 일명 똥돼지우리가 있는 측간도 재현되어 있는데
조금은 새삼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너무나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괜시리 담너머 밭을 향해 헛기침만 해댔다...ㅎㅎ
추사선생 유배지 유허비....
추사관 앞에는 제주도 초기의 돌하루방이 전시되어 있는데 1754년(영조30)경
작품으로 추정되어지며 이는 육지의 장승과 같은 역할을 한것으로 추측된다.
특이한 것은 추사관 앞 돌하루방은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추사관 앞 오래된 돌하루방...오른쪽 돌하루방은 목도리를 둘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에 찾아간 곳은 일제 만행이 극에 달했던
지하방카가 있는 곳이다. 일명 평화박물관이다. 지하방카에서 나온 유물을
전시해 놓고 안내자분께서 친절하게 설명을 하는데 초등학생들에게는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데 아주 유익할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일행 중에도 초등
학생이 있어 일제의 만행을 이해하고 우리 조상들의 힘든 삶을 반추하는데 아주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 된다.
평화박물관...
설명이 끝난 뒤 지하방카를 돌아보는데 당시의 상황을 마네킹으로 전시해 놓아
이해를 돕고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지하요세를 거쳐 나오다보면 저절로
민족혼이 살아나고 다시는 나라 잃은 슬픔을 겪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게 된다. 일정에 없던 이곳을 우리 팀장님이 굳이 거액의 입장료를 지불하면서
까지 간 동기를 알만도 하다. 새삼 그 깊은 뜻에 감사드리고 싶다...
지하방카 출구... 한바퀴 돌아나오면 저절로 민족혼이 살아난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갈길은 멀다 했는데 우리가 그 처지다. 아직 갈 곳은
몇군데 더있는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꼭 봐야할 곳은 보는게 우리의
답사팀이다.
너무 늦어 이미 문을 닫은 항몽유적지를 찾아 들었다. 눈으로 먼 발치에서라도
맛만 보고 싶다는 일행들의 뜻이 모아져 찾아갔는데 의외로 그곳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친절해서 사진도 찍고 대략이나마 돌아볼 수 있었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사적제396호)...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고려시대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삼별초군이 이에 맞서
끝가지 싸웠던 호국격전지이다.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는 수도를 강화로 옮겨
여러 해 동안 대항하였으나 끝내 몽골에 굴복하고 개성으로 환도하자 배중손을
중심으로한 삼별초군은 자주호국의 기치를 내걸고 항몽투쟁을 결의한 후 진도로
옮겨 대몽항전을 계속했다. 그러나 1271년 려몽연합군에게 패하고 배중손 장군이
사망하자 김통정 장군은 잔여세력을 이끌고 항파두리에 진지를 구축해 투쟁을
계속했다. 그러나 1273년 끝내 성이 함락되고 김통정 장군이 자결함으로써
항몽투쟁은 끝이 났다. 비록 실패로 끝난 항몽투쟁이었지만 자주호국의 기치를
내걸고 끝까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깊게 본받을
조상의 유산이다.
날이 어두워 사진 찍기도 버거웠지만 우리 답사팀의 열정에 시간마져 비켜가고
마지막 항몽유적지의 토성을 올라 그때의 함성을 마음 속으로 새기며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항몽유적지의 외성인 토성....
육신의 피곤함은 마음에 새겨진 뿌듯함을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격정어린
목소리로 다같이 서로를 격려하며 이번 답사를 스스로 대견해 하고 있었다.
다음 기회에 또한번 다함께 하자고...
다른 분들은 다 떠나는 공항에서 나는 작별인사를 건네며 내일을 위해 다시금
제주의 하룻밤을 지세워야 했다....
S.E.N.S - Like Wind (True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