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표석](종로9)권율 도원수집 터(權慄都元帥家址)
표 석 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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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도원수집 터(權慄都元帥家址) | |
임시관리번호 |
종로9 |
설치연도 |
1988 |
표석문안 |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幸州大捷)을 거둔 도원수 권율(1537~1599) 장군집 터 | ||
표석위치(주소) |
서울 종로구 행촌동 1-18 | ||
찾아가는 길 |
3호선 독립문역 3번출구-->100m 마을버스(종로5)-->한국사회과학자료원 하차-->오던길 되돌아 세븐일레븐앞 사거리에서 남서방으로 보면 큰 은행나무 보임(그 아래 위치),행촌동딜쿠샤 옆 은행나무 아래 :지름길이 있으나 개인마당을 통과해야 함 | ||
관계되는 내용 |
권율 도원수(權慄都元帥)
1537(중종 32)∼1599(선조 32). 조선 중기의 문신·명장.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도첨의(都僉議) 보(溥)의 9세 손으로, 할아버지는 강화부사 적(勣), 아버지는 영의정 철(轍), 어머니는 적순부위(迪順副尉) 조승현(曺承晛)의 딸이다. 이항복(李恒福)의 장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
▼ 은행나무 아래에 있는 권율 도원수집 터(權慄都元帥家址) 표석
권율장군 집터는 행촌동 딜쿠샤(알버트 테일러 집) 옆에 있는데 큰 은행나무 아래에 표석이 있다. 이 은행나무는 권율장군이 직접 심었다고 하니 약 400년이 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집은 권율장군의 사위가 된 백사 이항복에게 물려주어 이항복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행촌동이라고 하는데 이 은행나무로 인하여 이 지역의 동명이 은행나무 마을이 되었다. 이곳은 뻔히 보이는데도 찾아가기가 어렵다. 그냥 돌아서 찾아간다는 생각으로 가면 짜증이 덜 나는 곳이다.ㅎ
▼ 권율 도원수집 터(權慄都元帥家址) 표석
▼ 권율 도원수집 터(權慄都元帥家址) 표석.. 은행나무 뒤로 작은 대문이 보이는데 지름길이다.
▼ 은행나무에 금줄을 둘렀다.
▼ 권율 도원수집 터(權慄都元帥家址)는 멀리서도 은행나무가 보이기 때문에 랜드마크로 이용하면 좋다.
▼ 권율 도원수집 터(權慄都元帥家址) 표석(다음지도 로드뷰에서 인용)
▼ 권율 도원수집 터(權慄都元帥家址) 표석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