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표석](종로19)김옥균집 터(金玉均家址)
표 석 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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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집 터(金玉均家址) | |
임시관리번호 |
종로19 |
설치연도 |
1992 |
표석문안 |
조선말 개화파의 지도자인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이 거처하며 갑신정변을 논의하던 집 터(종로구 화동 260번지) | ||
표석위치(주소) |
서울 종로구 화동 260번지 | ||
찾아가는 길 |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100m 풍문여고 정문 우회전-->430m 직진하면 정독도서관 입구-->정독도서관 화단에 위치 | ||
관계되는 내용 |
김옥균집 터(金玉均家址)
김옥균(金玉均, 1851년 2월 23일 ~ 1894년 3월 28일)은 조선의 정치인이다. 인조 때 우의정으로 지낸 문충공 김상용의 10대 손이다. 김병태의 장남으로 7세에 당숙 김병기의 양자로 입양되어 한성에서 성장하였다. 강화도 조약 이후 조사 시찰단이 되어 일본에 다녀와 개화 문물을 체험한 후 개화사상에 관심을 가져 박영효, 서광범 등과 함께 개화당을 조직해 개혁을 꾀했다. <위키백과사전에서 인용> |
▼ 김옥균집 터(金玉均家址)가 있는 정독도서관 입구
정독도서관을 답사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경기고등학교 시절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차일피일 이런저런 이유로 못가본 곳을 2000년도 들어서 답사팀들과 함께 북촌을 찾았을 때 처음 가보았다. 그때 김옥균 집터가 그곳 운동장이었던 곳에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개화파들의 본거지가 북촌 일대였다. 박규수 집을 중심으로 홍영식 집도 그 일대에 모여 있다. 3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그의 집터를 보노라면 백악산에서 타고 내려온 맥이 그의 집터에서 웅크리고 기운을 응집시켜 산진처를 이루는듯 보인다. 그러나 지세가 높아 바람을 피할 수는 없다. 그 아래 윤보선가를 보면 산진처가 어디가 되는지 알 수 있다.
▼ 김옥균집 터(金玉均家址) 표석
▼ 김옥균집 터(金玉均家址) 표석이 있는 정독도서관
▼ 정독도서관 잔디밭에 김옥균집 터(金玉均家址) 표석이 있다.
▼ 정독도서관은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이다. 고목도 있다.
▼ 김옥균집 터(金玉均家址) 표석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