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표석](종로62)서북학회 터(西北學會址)
표 석 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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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학회 터(西北學會址) | |
임시관리번호 |
종로62 |
설치연도 |
2003 |
표석문안 |
서북학회는 대한제국 시대인 1908년에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하여 평안도·함경도·황해도민이 조직한 애국 계몽 단체였다. 1909년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자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운동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1910년에 강제 해산되었다. 그 후 이곳에는 한때 오성학교, 보성전문학교, 건국대학교 전신인 정치대학이 자리하였다. | ||
표석위치(주소) |
서울 종로구 경운동 47-1 전 건국대학교 건물 | ||
찾아가는 길 |
3호선 안국역 5번 출구-->300m 기린갤러리 앞 인도변 | ||
관계되는 내용 |
서북학회(西北學會)
1908년 서북·관서·해서지방 출신자들이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계몽단체.
애국계몽운동은 1907년 중엽에 이르러 관서와 관북지방에서 뿌리를 내려 일정한 성과를 거두게 되자 전 민족적 전 국가적 차원으로의 확산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일제의 강압책으로 국권회복운동이 더욱 어렵게 되자, 이러한 제약을 보다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를 통합하여 1908년 1월 조직하였다. 구성원은 주로 평안도·함경도·황해도민이다. 주요 임원은 이동휘(李東輝)·안창호(安昌浩)·박은식(朴殷植)·이갑(李甲)·유동열(柳東說)·최재학(崔在學) 등이었다.
1908년 2월부터 『서북학회월보』라는 학보를 발간, 1910년 1월까지 계속하였다. 학보를 통해 사회진화론(社會進化論)과 민권론(民權論)에 기반을 둔 실력양성론·단체론·애국론·교육구국론·실업진흥론·사회관습개혁론 등을 전달하여 민중의식을 계발하고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서북학회는 1909년 초 신민회와 같이 독립전쟁전략을 최고전략으로 채택하여 독립군기지건설에 주력하여 국외독립운동의 초석이 되었으며, 국내활동 특히 교육운동은 일제하 민족운동의 원동력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 서북학회 터(西北學會址) 표석
▼ 서북학회 터(西北學會址) 표석
▼ 서북학회 터(西北學會址) 표석... 건너편에 교동초등학교 정문이 있다.
▼ 서북학회 터(西北學會址) 표석 위치<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서북학회 터(西北學會址) 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