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표석](종로96)육의전 터(六矣廛址)(이전 장소 수정함)
표 석 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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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의전 터(六矣廛址) | |
임시관리번호 |
종로96 |
설치연도 |
2014 |
표석문안 |
육의전은 조선시대에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받고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한 서울의 여섯 시전(市廛)을 말한다. 이곳은 육의전 중 으뜸인 선전(縇廛)이 있던 자리로 비단을 주로 취급하였다. | ||
표석위치(주소) |
종로구 종로 51(종로2가 6)(구 서울 종로구 종로2가31에서 이전) | ||
찾아가는 길 |
1호선 종각역 3, 3-1번 출구에서 40m-->종로타워앞 쉼터내(종로2가 6-1 도) | ||
관계되는 내용 |
육의전(六矣廛)
육주비전(六注比廛)은 조선시대 서울 종로에 자리 잡고 있던 여섯 가지 종류의 어용상점(御用商店)으로, 명주,종이,어물,모시,비단,무명을 팔며 흔히 육의전(六矣廛)이라 불렸다. 또한 육부전(六部廛)·육분전(六分廛)·육장전(六長廛)·육조비전(六調備廛)·육주부전(六主夫廛) 등의 별칭으로도 불렸다. 이들은 국역(國役)을 부담하는 대신에 정부로부터 강력한 특권을 부여받아 주로 왕실과 국가 의식(儀式)의 수요를 도맡아 보는 등 상품의 독점과 전매권(專賣權)을 행사, 상업 경제를 지배하면서 조선 말기까지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여 왔다. 원래 조선의 시전은 태종 때 설치되었는데 초기에는 상업의 규모가 비슷하여 경영과 자본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점차 도시의 번영과 상업의 발달이 이룩되자 경영방식이 달라지고 관청에 대한 대응관계 및 규모에 따라 과세(課稅)의 비율이 정해져, 그 중 가장 많은 국역을 담당하는 전을 추려 육의전이라 하였다. 따라서 육의전의 발생 연대는 전의 국역 부담이 시작됨과 함께 생긴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특권이 강화될수록 의무도 가중(加重)하여 육의전의 상품 독점은 한편으로는 정부 관리의 부정·부패의 기회를 마련하고 신흥 기업가를 봉쇄하여 상공업의 발전을 근본적으로 위축시키는 폐단을 가져왔다. <위키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 과거 탑골공원 앞에 있던 것을 종로타워 앞으로 옮기면서 표석 내용도 전면 수정하였다. 최근 다녀와 수정된 사진을 올린다.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은 삼성종로타워 앞 화단에 세워져 있다.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은 주위에 다른 휴식용 의자와 같이 있어서 권위가 없어 보인다.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 이걸 생활속으로 들어와서 친근하다고 봐야 하나...?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 종로타워 앞에 잘 보이지도 않게 세워져 있다.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 위치... 탑골공원 앞에 위치해 있었다. 과거 역사를 위해 사진을 유지한다.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ㅍ
▼ 육의전 터(六矣廛址) 표석<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