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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의병장 김여온의 묘(金汝溫 墓)

터잡이야초 2018. 4. 11. 10:00


김여온의 묘(金汝溫 墓) 


대전 문화재를 살피던 중 송준길 묘 가는 길에 몇 기의 묘가 있었는데 다른 곳은 시간이 맞지 않아서 다음으로 미루고, 잘 알지 못하지만 김여온의 묘를 찾았다. 들어가는 입구를 그물로 막아놓아서 접근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차를 주차할 공간도 마땅치않아서 길거리에 세워놓고 뛰어서 다녀왔다. 길이라고 판단하고 갔더니 그곳은 사유지로 그물로 막아놓아 다시 반대방향으로 산을 비집고 겨우 들어갔다.

묘는 시신이 없는 초혼장으로 치러진 곳이다. 묘역도 군데군데 허물어져있고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인지 날짐승들이 이곳에서 포식을 즐긴 흔적들이 간간히 보인다. 음기가 다른 곳보다는 많아서 뒷덜미가 자꾸 당겨진다. 사진기도 망가져서 핸드폰 사진으로 겨우 찍고 쏜살같이 내려왔다. 아무래도 음산한 기운이 많아서인지 엄청 피곤한 답사였다.

 

김여온의 묘(金汝溫 墓)


김여온(1550-1592)의 자는 경보(敬甫), 호는 석은(石隱)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금녕군(金寧君) 목경(牧卿)의 후예이며 임진왜란때 의병의 선봉장을 지낸 순국지사이다. 1550년에 공주 계룡면 노포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도량이 커서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았고, 재주가 많았는데 충효를 행동의 기본으로 삼았다.

의영고 주부(義盈庫 主簿)를 거쳐 한림원 한림으로 있다가 임진왜란을 맞았다. 이에 중봉 조헌(重峰 趙憲), 양응춘(楊應春), 정자방(鄭自防)등과 함께 의병의 선봉장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다. 청주에서 왜병을 물리친 김여온은 금산으로 진격하여 연곤평에서 전투하다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으니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선조25)8월 18일의 일이다.

이로부터 300년이 지난 임진년(1892)에 공의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해 고종이 호조참의 (戶曹參議)를 증직하였다. 이 해에 자손들과 인근의 선비들이 모여 시신없이 공의 혼을 불러 초혼장(招魂葬)으로 이곳에 장사를 지냈다.

<대전 서구 홈페이지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자료 제16호

문화재명칭

김여온의 묘(金汝溫 墓) 

소재지

대전시 서구 괴곡동 산12-1

관리자(연락처)

대전시

 

김여온의 묘(金汝溫 墓) 원경

김여온의 묘(金汝溫 墓) 입구

김여온의 묘(金汝溫 墓) 안내판

김여온의 묘(金汝溫 墓) 

김여온의 묘(金汝溫 墓) 전경

김여온(金汝溫) 묘비

김여온(金汝溫) 묘 도두

김여온(金汝溫) 묘 후경

김여온(金汝溫) 묘 후경...

김여온(金汝溫) 묘 아래에 있는 김양선 묘... 후손일것 같은데 누구인지는 찾아보지 못했다. 다만 묘의 둘레석이 무너져 내려있어 보수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