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주]신부(申溥)-신숙주의 6남
신부(申溥)-신숙주의 6남 윤자운선생 묘역 답사를 하는데 와혈처에 석물이 갖춰진 묘 하나가 눈에 띈다. 확인해 보니 신부(申溥)묘이다. 인테넷을 뒤져도 자세한 내용이 안나오는데 우연히 블로그에 어떤 분이 본인 조상님의 약력을 올려서 그걸 참고로 하여 답사기를 작성한다. 신숙주의 부인이 윤자운선생의 여동생이어서 신부(申溥)묘가 이곳에 있게 된 경유였다. 즉 신부(申溥)는 신숙주의 아들이면서 윤경연(尹景淵)의 외손자, 영의정 윤자운(尹子雲)의 외조카가 되는 셈이다. 신숙주의 부인 무송윤씨는 8남1녀의 자식을 두었으니... 그것도 막내를 낳다가 사망했다고 하니 신숙주의 자손복은 참으로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신숙주는 죽는 날까지 재혼을 하지 않고 혼자 지냈다고 한다. |
신부(申溥)-신숙주의 6남 강원백공의 자는 언심(彦深)이요 휘가 부(溥)이시다. 1446년 아버지 보한재 신숙주(申叔舟)공과 어머니 무송윤씨(茂松尹氏) 사이에 8남 1녀 중 여섯째 아드님으로 출생하시어 1501년에 돌아가시니 향년 56세이시다. 1469년 예종1년 24세 부사과(副司果)로 계실 때에 증광 진사 3등으로 급제하시어 여러 벼슬을 거쳐 강원감사를 지내시었다. 일찍이 암헌공 신장께서 어효첨(魚孝瞻)공에게 써준 암헌서첩(巖軒書帖)이 보한재공에게 돌아오자 부(溥)에게 주었는데 ‘그것을 꼭 부(溥)에게 준 것은 부의 필격(筆格)이 여지가 있어 보여 혹시 선업(先業)을 계승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서 였다’고 보한재집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474년 5월 15일 29세 때에 당상관(堂上官)에 오르시고 절충장군(折衝將軍) 행 사과(行 司果)에 제수 되시며 1479년 3월 4일 통정대부(通政大夫) 병조참지(兵曹參知)를 제수 받으신다. 1480년 1월 19일 통정대부 공조참의(工曹參議), 동년 2월 15일 통정 대부(通政大夫) 이조 참의(吏曹參議), 1481년 2월 14일 대호군(大護軍)으로 좌천 되었다가 1485년 1월 27일 통정대부(通政大夫) 성주 목사(星州牧使), 1489년 1월 2일 파적위(破敵衛) 김방(金方)의 무고에 의한 ‘한산(韓山) 사람 이서(李湑)·이항(李沆)·이엄(李渰)·이순(李淳)과 군수(郡守) 한철동(韓鐵同), 조산 만호(造山萬戶) 양취(梁鷲) 등이 재상(宰相) 이봉(李封)·신준(申浚)·노공필(盧公弼)·신부(申溥)와 조사(朝士) 이균(李均)·이탄(李坦) 등과 더불어 불궤(不軌)를 공모하였다’는 역모죄에 연루 2개월 여간 위에 형 신준(申浚)공과 함께 곤욕을 치르게 되며, 1490년 2월 5일 통정대부(通政大夫)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제수 되시고 동년 윤 9월 16일에는 성종 임금으로부터 자적면주(紫的綿紬)로 된 겹철릭[裌帖裏] 1령을 하사 받으신다. 1494년 12월 9일 통정대부(通政大夫) 홍주 목사(洪州牧使), 1499년 11월 23일 병조 참의로 복무하시는 내용이 나오고, 1500년 1월 5일 강원도 관찰사에 제수되신다. 1501년 9월 56세에 돌아가시자 경기도 양주군 백석읍 홍죽리 외삼촌 윤자운공 묘역내에 장례 하였다.. <다음블로그 kisoo49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미지정 |
문화재명칭 | 신부(申溥) 묘(신숙주의 6남) |
소재지 | 경기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 산 27(윤자운 묘와 윤경연 묘 사이) |
관리자(연락처) | 고령신씨 |
▼ 신부(申溥)-신숙주의 6남 묘 위치
▼ 신부(申溥) 묘... 윤자운선생 묘에서 바라본 모습
▼ 윤경연선생 묘에서 바라본 신부(申溥) 묘...
▼ 신부(申溥) 묘 전경
▼ 신부(申溥) 묘는 묘역 전체가 큰 양혈(窩鉗) 형태를 이루고 있다. 앞쪽에 바람을 막을 적절한 사격이 없지만 그래도 윤자운선생 묘 보다는 나아 보인다.
▼ 신부(申溥) 묘 청룡 견부 방향...
▼ 신부(申溥) 묘 장명등...
▼ 신부(申溥) 묘비... 글자를 한 글자 더 쓰면 좋아보이나? 고령신공부지묘(高靈申公溥之墓)... 까지만 써야 좋은데.. 굳이 묘비(墓碑)까지 써서... 신도비는 신도비(神道碑)라고 쓴다. 신도(神道)까지만 쓰면 더 이상하다.
▼ 신부(申溥) 묘 구 묘표...
▼ 신부(申溥) 묘 측경...
▼ 신부(申溥) 묘 문인석과 망주석...
▼ 신부(申溥) 묘 용호(龍虎)는 잘 갖춰져 있다. 조금 높고 안산이 없는 것이 흠이지만 외삼촌 윤자운 묘보다는 낫다.
▼ 신부(申溥) 묘에서 바라본 백호자락... 윤자운 묘가 있는 능선이다...
▼ 신부(申溥) 묘 후경... 용호에 비해 조안(朝案)은 휑하지만... 평지에서 부는 순풍으로 감내할 만 하다. 다만 너무 높아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아래쪽에 연못을 조성하였다. 무송윤씨 묘역에 외손이 들어와서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두 집안의 느낌이 어떠할지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