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서울 삼전도비(三田渡碑)...박물관 수장고로 보내라
삼전도비(三田渡碑) 삼전도비는 예전에 석촌동 주택가에 있을 때 인근의 백제시대 무덤과 함께 답사를 진행했었는데 자료를 올리지 않았는지 찾아보니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석촌호수 북쪽입구 길가로 옮겨서 몇 번 사진촬영을 해놓았는데 여지껏 올리지 않아 마침 엊그제 촬영을 해놓은 게 있어서 글을 올린다. 나는 그 당시에도 삼전도비를 없애든지 안 보이는 곳(박물관 수장고)으로 옮기기를 바란다고 쓴 것 같은데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보여준다고 해서 치욕의 역사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다. 무슨 착한 사람 바이러스에 걸린 듯이 조상들의 좋지 못한 것까지 다 드러내 놓고 민족의 위대성을 강조한들 먹히겠는가? 다른 나라 특히 일본놈들은 역사를 일찍이 깨우쳐서 광개토대왕비석의 글씨까지 지들 맘대로 고치고 왜곡하고 있는데 우리는 처음에는 무지해서 역사를 몰라 당하고, 한동안은 지식인들의 식민사관으로 왜곡되고, 지금은 식자들의 이상한 논리로 삼전도비를 무슨 벼슬 받은 양 잠실 호수변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세워 놓으니 나는 전혀 맘에 들지 않는다. 2007년 병자 370년이 되는 해 어떤 분이 철거하라고 주장했는데 그 분의 논리에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 중 하나다. 전쟁을 하더라도 나라 밖에서 싸워야지 우리나라 영토 내에서 싸우고 그나마 항복하고... 선조나 인조나 하나같이 무능한 자들이 나라를 맡았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지금 중국이나 일본이나 우리를 알기를 우습게 보고 경제전쟁을 일으키는데... 우리는 마땅히 대응할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괜시리 울화가 치민다. 이런 때 삼전도비를 올리려니 화도 나고 답답한 심정에서 주절거려본다. |
삼전도비(三田渡碑)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47번지(당시 경기도 삼전도)에 있는 청 제국의 전승비이며 송덕비(頌德碑)이다. 병자호란 때 승리한 숭덕제가 자신의 공덕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요구하여 1639년(인조 17년)에 세워졌다. 이후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머리와 받침돌 조각이 정교해 조선 후기의 뛰어난 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치욕비(삼전도의 욕비(辱碑))라고도 불리며, 비를 만들 당시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였다. 내용은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出兵)한 이유, 조선이 항복한 사실, 항복한 뒤 청 태종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곧 회군(回軍)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청나라 조정의 명으로 조선에서 건립하였다. 비의 전체 높이는 5.7m, 비신의 높이는 3.95m, 폭은 1.4m이고 무게는 32t이다. 비문은 1637년 11월 25일 인조 15년 이경석이 지었고, 글씨는 오준(吳竣)이 썼으며,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제목은 여이징(呂爾徵)이 썼다.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몽골글자, 오른쪽에는 만주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쓰여져 있다. <내용> ·어리석은 조선 왕은, 위대한 청국 황제에게 반항했다. ·청국 황제는 어리석은 조선 왕을 타이르고, 자신의 대죄를 납득시켰다. ·양심에 눈을 뜬 조선 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맹성하고, 위대한 청국 황제의 신하가 되는 것을 맹세했다. ·우리조선은 이 청국 황제의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고,또 청국에 반항한 어리석은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 이 석비를 세우기로 한다. <삼전도비 비문> ·대청황제공덕비(大清皇帝功德碑) (한문) ·대청국의 성스러운 한의 공덕비(만주문자) ·대청국의 성스러운 카간의 공덕비(몽골문자) 원래는 한강변 삼밭나루터의 항복을 했던 곳에 세워졌다가,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여 조공 관계가 단절되자 강물에 수장시켰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인 1913년에 일제가 다시 세워놓았고, 1945년 광복 직후에 주민들이 땅 속에 묻어버렸다. 1963년에 홍수로 다시 모습이 드러났고, 여러 차례 이전을 거듭하다가 1983년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송파구 석촌동 289-3번지에 옮겼다. 이후 고증을 거쳐 2010년 4월 25일에 비석이 서 있던 원래 위치인 석촌호수 수중에서 30여m 떨어진 송파구 잠실동 47번지의 석촌호수 서호 언덕으로 옮겼다. 2007년 2월에는 30대 남성이 삼전도비에 붉은 페인트를 사용해 '철거 370'이라고 적어 훼손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정치인들이 나라를 잘못 이끌면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점을 경고하기 위해서" 삼전도비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또한 '370'은 인조가 청 태종에게 무릎꿇은 지 370년이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사적 제101호 |
문화재명칭 | 삼전도비(三田渡碑) |
소재지 | 서울 송파구 잠실로 148 |
관리자(연락처) | 문화재청 |
▼ 석촌호수 북쪽 입구에 세워진 서울 삼전도비
▼ 서울 삼전도비 안내문
▼ 서울 삼전도비 측면...
▼ 서울 삼전도비 이전 안내문
▼ 서울 삼전도비 정면...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몽골글자, 오른쪽에는 만주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쓰여져 있다.
▼ 서울 삼전도비 측면...
▼ 서울 삼전도비 측면
▼ 서울 삼전도비 후면...
▼ 서울 삼전도비 ...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 서울 삼전도비 귀부 측후면...
▼ 서울 삼전도비 전면...
▼ 서울 삼전도비 귀부 옆면...
▼ 서울 삼전도비 귀부 후면...
▼ 서울 삼전도비 옆에는 비신이 없이 귀부만 있는 비석이 있는데 아마도 삼전도비를 두 번 만든 것으로 보인다.
▼ 비신 없는 귀부 정면...
▼ 비신 없는 귀부 측면...
▼ 비신 없는 귀부 후면
삼전도의 비각을 나무가 아닌 철과 유리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비각을 세운다고 목재로 엄청나게 크게 세우다 보니 화재에 취약해서 불이 나게 되면 비각이 무너져 내리면서 비석이 훼손될 우려가 높다. 이미 세운 비각을 헐어내는 경우도 종종 있고 이렇게 철제로 된 비각을 세우면 화재로 인한 비석 훼손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