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경기 용인)청록파 시인 박목월(朴木月) 묘
터잡이야초
2021. 6. 17. 23:04
청록파 시인 박목월(朴木月) 묘
청록파 시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시인은 학창시절부터 많이 알려진 분들이다. 예전부터 이분들의 묘를 찾아다니고 생가를 방문하고 시비를 보면 사진을 찍어 올리기를 여러번 했는데 한꺼번에 올리지 못한 것은 멀리 있지도 않고 찾기 어렵지도 않은 박목월 문학정원을 가보지 못해서다. 이곳은 아주 오래전에 지인분의 묘자리를 찾으러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업무차 정신이 없어서 관심을 두지 못하다가 나중에 박목월 묘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많은 분들이 다녀와서 묘역을 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고 특별히 찾아가야할 계기가 없어서 미루었다. 이제는 웬만한 묘역들은 답사를 마쳤고 아직 답사기를 작성하지 못한 수많은 묘역들이 있는데도 답사 못한 몇몇 곳이 나를 자꾸만 움직이게 한다.
지난 번 천주교용인공원묘지를 가면서 일부러 이곳을 넣어 다녀왔다.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박목월 묘 위쪽에 양주동박사, 동요작가 이원수 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또 한번 다녀오게 되었다. 그래서 아는 만큼 밖에 보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겠지...
용인공원묘지는 나중에는 질서있게 묘역이 조성되었지만 처음에는 자연구릉을 이용해서 매장묘지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서서 묘지번호나 대략적인 위치만으로는 특정 묘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다행히 박목월 묘는 용인공원묘지 안에 있지만 사유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별도로 관리가 되어 있어서 찾기가 아주 쉽다. 위쪽에 있는 양주동, 이원수 묘는 관리인 도움 없이는 찾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번에 박목월 묘를 올리면서 두분의 묘도 답사기를 올릴 예정이다.
용인공원묘지에는 이밖에[도 소설가 이범선, 시인 장만영, 시인 조정권 등이 잠들어 있는데 찾아갈 엄두가 안나 포기하고 말았다. 조만간 용인시에서 문학가들의 묘역을 어떤 식으로든 기념할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별다른 소식이 안들린다. 용인에 있는 문학가들의 묘역을 연결하는 둘레길이나 추념의 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박목월(朴木月) 본명은 박영종(朴泳鍾). 경상북도 월성(지금의 경주) 출신. 1935년 대구의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를 졸업하고, 도일(渡日)해서 영화인들과 어울리다가 귀국하였다. 1946년 무렵부터 교직에 종사하여 대구 계성중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연세대학교·홍익대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62년부터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임하였다. 1947년 한국문필가협회 발족과 더불어 상임위원으로 문학운동에 가담, 문총(文總) 상임위원·청년문학가협회 중앙위원·한국문인협회 사무국장·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 총무·공군종군문인단 창공구락부(蒼空俱樂部)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58년 한국시인협회 간사를 역임하였고 1960년부터 한국시인협회 회장직을 맡아 1973년 이후까지 계속하였다. 한때 출판사 산아방(山雅房)·창조사(創造社) 등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또한, 잡지 『아동』(1946)·『동화』(1947)·『여학생』(1949)·『시문학(詩文學)』(1950∼1951) 등을 편집, 간행하였으며, 1973년부터는 월간 시 전문지 『심상(心象)』을 발행하였다. 처음은 동시를 썼는데 1933년『어린이』지에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특선되었고, 같은 해 『신가정(新家庭)』지에 동요 「제비맞이」가 당선된 이후 많은 동시를 썼다. 본격 시인으로는 1939년 9월 『문장(文章)』지에서 정지용(鄭芝溶)에 의하여 「길처럼」·「그것은 연륜(年輪)이다」 등으로 추천을 받았고, 이어서 「산그늘」(1939.12.)·「가을 으스름」(1940.9.)·「연륜(年輪)」(1940. 9.) 등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1946년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 등과 3인시집 『청록집(靑鹿集)』을 발행하여 해방 시단에 큰 수확을 안겨주었다. 1930년대 말에 출발하는 그의 초기 시들은 향토적 서정에 민요적 율조가 가미된 짤막한 서정시들로 독특한 전통적 시풍을 이루고 있다. 그의 향토적 서정은 시인과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진 특유의 것이면서도 보편적인 향수의 미감을 아울러 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청록집』·『산도화』 등에서 잘 나타난다. 6·25사변을 겪으면서 이러한 시적 경향도 변하기 시작하여 1959년에 간행된 『난(蘭)·기타』와 1964년의 『청담』에 이르면 현실에 대한 관심들이 시 속에서 표출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이나 사물의 본성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이고 있으며, 주로 시의 소재를 가족이나 생활 주변에서 택하여, 담담하고 소박하게 생활사상(生活事象)을 읊고 있다. 1967년에 간행된 장시집 『어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찬미를 노래한 것으로 시인의 기독교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68년의 『경상도의 가랑잎』부터는 현실인식이 더욱 심화되어 소재가 생활 주변에서 역사적·사회적 현실로 확대되었으며,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사념적 관념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1973년의 『사력질(砂礫質)』에서는 사물의 본질이 해명되면서도 냉철한 통찰에 의하여 사물의 본질의 해명에 내재하여 있는 근원적인 한계성과 비극성이 천명되고 있다. 그것은 지상적인 삶이나 존재의 일반적인 한계성과 통하는 의미다. 수필 분야에서도 일가의 경지를 이루어, 『구름의 서정』(1956), 『토요일의 밤하늘』(1958), 『행복의 얼굴』(1964) 등이 있으며, 『보랏빛 소묘(素描)』(1959)는 자작시 해설로서 그의 시작 방법과 시세계를 알 수 있는 좋은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사적(詩史的)인 면에서 김소월(金素月)과 김영랑(金永郎)을 잇는 향토적 서정성을 심화시켰으면서도, 애국적인 사상을 기저에 깔고 있으며, 민요조를 개성 있게 수용하여 재창조한 대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1955년 첫 시집 『산도화(山桃花)』(1954)로 제3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68년 시집 『청담(晴曇)』으로 대한민국문예상 본상을, 1969년 『경상도(慶尙道)의 가랑잎』(1968)으로 서울시 문화상을,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미지정 |
문화재명칭 | 박목월 문학정원(박목월 묘) |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 산 64-4 |
관리자(연락처) | (재)용인공원 |
▼ 청록파 시인 박목월(朴木月) 묘 위치
▼ 용인공원묘지 안내도
▼ 박목월(朴木月) 묘 입구... 박목월 시의 정원
▼ 박목월(朴木月) 문학정원 전경
▼ 박목월(朴木月) 문학정원 표석... 이곳 문학정원은 특이하게 돌에 글을 새겨넣은 게 아니라 유리판에 글을 써서 돌에 붙여놓은 관계로 햇빛이 비추는 오후에 찾게 되면 글자가 그림자가 져서 판독하기 매우 어렵다. 오전에 가면 그래도 그림자가 없을 것으로 보는데 제가 찾은 때는 오후라 글자가 번져 보인다.
▼ 박목월(朴木月) 문학정원에는 그의 대표적인 시 여러편이 전시되어 있는데 글씨가 번져서 내용을 읽기가 어려워 많이 알려진 한 두 편만 이곳에 올린다. 시 나그네...
▼ 박목월(朴木月) 문학정원... 시 청노루...
▼ 박목월 문학정원을 돌아보고 조금 언덕진 곳을 바라보면 청록파 시인 박목월(朴木月) 묘가 있다.
▼ 박목월(朴木月) 묘 원경
▼ 박목월(朴木月) 묘 전경
▼ 박목월(朴木月) 묘 좌우에는 동자석 같은 작은 문인석이 있다.
▼ 박목월(朴木月) 묘
▼ 박목월(朴木月) 묘비... 전면 글씨는 김충현이 썼다.
▼ 박목월(朴木月) 묘비
▼ 박목월(朴木月) 묘 도두... 뒤로 길을 만들면서 축대를 쌓고하여 많이 변형되었다.
▼ 박목월(朴木月) 묘 후경
▼ 박목월(朴木月) 묘... 용인공원묘지의 중앙에 위치하면서 사방으로 빙둘러 사격이 감싸고 있다.
▼ 박목월(朴木月) 묘
▼ 박목월(朴木月) 묘 앞에는 잔디장으로 아들 묘가 있다. 아마도 다른 가족들이 돌아가시면 아래 단에 모실 요량으로 위치를 잡은 것 같다.
▼ 박목월(朴木月) 묘를 나오며.... 앞쪽 조산이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