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강원 철원)요동백(遼東伯) 충무공(忠武公) 김응하장군 묘

터잡이야초 2021. 12. 13. 15:41

요동백(遼東伯) 충무공(忠武公) 김응하(金應河) 장군 묘

 

철원을 1년이면 서너번은 다녀오는 듯하다. 이번에는 철원 한탄강에 물윗길과 잔도가 개통이 되었다고 해서 겸사겸사 찾았는데 그동안 가보지 못하고 계획만 세워두었던 김응하장군 묘를 찾아 나섰다. 이곳은 군사지역에 있어서 카카오맵이나 네이버 지도 위성사진으로는 볼 수가 없어서 애를 먹는 곳이다. 이럴 때 구글 지도가 유용하다. 

구글지도를 찾아봤더니 직접 들어가는 길은 군사지역을 통과해야 할 것 같아서 인근의 논, 밭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있는 듯 보여 그쪽으로 차를 몰고 논둑길을 따라 걸어갔더니 바로 찾을 수가 있었다. 이 또한 먼저 다녀오신 분들의 자료가 참고가 되었다. 좀 더 자세하고 지도를 올리고 싶지만 이 지역이 군사지역이라 더는 자세히 올리지 못하니 구글 지도를 참조하여 각자 개인적으로 길을 찾아가시기 바라고, 꼭 필요하신 분은 연락 주시면 지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철원 포충사는 김응하장군을 기리는 사우인데 예전에 방문할 때는 문이 잠겨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사진을 찍고 둘러보고 왔다. 그때부터 김응하장군에 대해 궁금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묘역을 찾았다. 묘역은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아침에 찾을 때는 해가 등 뒤에 있어서 몹시 음습하고 묘역에도 이끼가 잔뜩 낄 정도로 습기가 많아 보였다. 평양지에 산이 별로 없는 곳이어서 앞쪽에 작은 안산을 배경으로 묘역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김응하장군 안산은 동생 김응해장군 묘가 있는데 이곳도 앞쪽에 작은 동산을 안산으로 삼고 묘 좌향을 잡았다.

철원은 지금 한창 두루미가 날아와서 가을을 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두루미 축제를 했을텐데 너무 조용하다. 가을 철새들이 날아와서 논에서 먹이활동을 하는데 기러기가 무리 지어 날아가고 두루미도 소리도 요란스레 울면서 가을 하늘을 들뜨게 하고 있다.

 

 

충무공(忠武公) 김응하(金應河)장군
 
김응하(金應河)[1580~1619]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경의(景義),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고려의 명장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김지사(金地四)이다.
김응하는 1580년(선조 13) 지금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하갈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른스러웠고 효성과 우애가 두터웠다고 한다. 1594년 임진왜란 중에 부모가 전염병으로 사망한 뒤 한탄강 상류 칠만암 주변에서 병서를 읽고 무예를 수련하며 무과 시험을 준비하였다. 김응하는 1604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병조판서 박승종(朴承宗)에게 발탁되어 선전관에 임명되었으나 1605년 여러 사람의 질시로 인하여 파직되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박승종의 비장에 임명되어 관직에 복귀하였다. 1610년 다시 선전관이 제수되었으며, 이후 경원판관으로 부임한 뒤 삼수군수와 북우후를 역임하였다. 1618년 명나라가 후금(後金)을 정벌할 때 조선에 원병을 청해 오자 부원수 김경서(金景瑞) 휘하의 좌영장으로 있다가, 1619년 2월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후금 정벌에 나섰다. 김응하는 심하 전투에서 명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자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6만 명의 후금 군대에 맞서 고군분투하다가 힘에 부쳐 전사하였다. 
김응하의 묘소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하갈리의 빈장산에 있다.
1620년(광해군12) 명나라 신종(神宗)은 김응하의 장렬한 죽음에 대한 보답으로 조서를 내려 요동백(遼東伯)에 봉하고 가족에게는 백금을 하사하였으며, 조선 조정에서도 영의정을 추증하였다. 김응하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산1-90번지에 있는 포충사(褒忠祠)에 배향되었다.<디지털철원문화대전에서 인용>


김응해(金應海)
 
김응해(金應海)[1588~1666]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군서(君瑞)이다. 고려의 명장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고,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김지사(金地四)의 아들이다. 후금(後金)과의 심하 전투에서 전사한 요동백(遼東伯) 김응하(金應河)[1580~1619]가 형이다.
김응해는 1588년(선조 21) 현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하갈리에서 태어났다. 1616년(광해군 8)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희천군수(熙川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619년 명나라가 후금(後金) 정벌에 원군을 요청하여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파견할 때 출정을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형 김응하만 출정하였다. 1620년 강계부사를 거쳐 부령부사·인동부사·정주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630년 4월 안동대도호부사로 부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응해는 별장(別將)으로서 정방산성(正方山城)을 지켰으며, 적병이 한양으로 곧장 진격하자 300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이후 1647년(인조 25)에 어영대장(御營大將)이 되었으며, 1666년(현종 7) 사망하였다.
김응해의 묘소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하갈리에 있다. <디지털철원문화대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충무공(忠武公) 김응하(金應河)장군 묘, 김응해(金應海) 묘
소재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산31(삽슬봉), 동송읍 하갈리 산44
관리자(연락처) 안동김씨

 

▼ 요동백(遼東伯) 충무공(忠武公) 김응하(金應河)장군 묘... 아침에 찾았는데 묘역이 서향이라 역광으로 비춘다.

▼ 요동백(遼東伯) 충무공(忠武公) 김응하(金應河)장군 묘 가는 길

▼ 요동백(遼東伯) 충무공(忠武公) 김응하(金應河)장군 신도비

▼ 요동백(遼東伯) 충무공(忠武公) 김응하(金應河)장군 묘역... 맨 위가 김응하장군 묘, 그 아래가 부친 김지사 묘

▼ 요동백(遼東伯) 충무공(忠武公) 김응하(金應河)장군 묘 측경

▼ 요동백(遼東伯) 충무공(忠武公) 김응하(金應河)장군 신,구 묘비

▼ 김응하(金應河)장군 묘 석물

▼ 김응하(金應河)장군 묘 전경

▼ 김응하(金應河)장군 묘 입수도두... 묘역이 이끼로 가득하다.

▼ 김응하(金應河)장군 묘 후경... 안산에 동생 김응해 장군 묘가 있다.

 

 

▼ 김응하(金應河)장군 묘 아래에 부친 김지사 묘가 있다.

 

▼ 김지사 묘 아래에는 김응하(金應河)장군 아들 김익련 묘가 있다. 

▼ 김응하(金應河)장군 신도비를 내려오면서...

▼ 철원평야에서 날아가는 두루미와 먹이를 찾는 기러기...

 

▼ 김응하(金應河)장군 묘 앞 안산에 위치한 동생 김응해 장군 묘역

▼ 김응해(金應海) 장군 신도비와 세장비

▼ 김응해(金應海) 장군 묘

▼ 김응해(金應海) 장군 묘비

▼ 김응해(金應海) 장군 묘

▼ 김응해(金應海) 장군 묘 후경... 이곳도 앞쪽에 안산이 있다. 평야지대라서 작은 산조차 귀한 곳인데 그러다보니 산을 안대로 삼고 묘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