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경기 파주]좌의정 박은, 좌의정 박숭질 묘, 이장을 해도 이정도는 되어야.

터잡이야초 2011. 3. 13. 21:35

평도공 박은(平度公 朴訔, 1370~1422)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반남(潘南), 자(子)는

앙지(仰止), 호는 조은(釣隱)으로 고려말 학자인 상충(尙衷)의 아들이며 이곡(李穀)의 외손이다.

19세때 과거에 급제하여 후덕부승(厚德府丞)을 거쳐 개성부소윤(開城府少尹)이 되었으며 조선이

건국된 후 지금주사(知錦州事)가 되어 정치 성적이 가장 높아 좌보궐(左補闕)에 전임되었다.

1397년(태조 6) 사헌시사(司憲侍史)를 거쳐 1401년(태종 1)형조ㆍ호조ㆍ병조ㆍ이조의 4조

전서(典書)를 두루 역임한 후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오르고 반남군(潘南君)에 봉해졌다.

그 후 강원도관찰사, 한성부윤, 승추부제학을 역임하고 전라도관찰사, 사헌부 대사헌, 형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1416년(태종 16) 5월 우의정, 같은 해 11월 좌의정 겸 판이조사에 오르고

부원군(府院君)에 진봉되었고 시호는 평도(平度)이다.

  박은 묘역내에는 가장 상단의 박은과 부인 장흥주씨(長興周氏)와의 합장 묘를 중심으로

그 아래로 아들 참판공 박규(參判公 朴葵)묘, 박규의 부인인 원주변씨(原州邊氏)묘, 학생공

박홍기(學生公 朴弘基)묘 등 4기의 묘역이 상하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박은 묘역의 안내판

박은 신도비...

박은 묘 앞에 있는 아들 박규의 묘비

박은 묘역 전경...

박은 묘역이 넓어 한장의 사진으로 잡기 어렵다... 좌측

박은 묘역 우측...

박은 묘비.. 구 묘비를 새롭게 써서 세운것이다.. 진한국대부인 장흥주씨 라는 표현은 처음본다.

박은 구 묘비...

 박은 묘 앞에 서있는 묘비명.. 부인과 쌍분으로 표기되었으나 합장묘다..

 

   박은 묘는 1422년 최초 양주의 중량포에 예장되었던 것을 1496년(연산군 2) 광주 고덕동으로

부인 장흥주씨와 함께 쌍분으로 조성해 이장되었고 1982년 광주가 개발되면서 문산읍 당동리

현재의 장소로 재차 이장되었다.

원형의 합장봉분 정면으로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봉분아래 좌우로 문인석이

두 쌍씩 모두 4기가 배치되어 있다. 또한 묘역 중앙에 사각의 장명등을 세웠는데 옥개석 부분은

도난을 당해 새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봉분 우측으로는 원래의 묘표와 새로 세운 묘표 2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으며 그 옆으로 면봉기사비(緬奉紀事碑)가 세워져 있다.

 

 박은 묘의 장명등.. 옥개석은 도난당해 새로 세운것이다.

 박은 묘의 백호쪽 석물..

 박은 묘역의 청룡쪽 석물...

 박은 묘역 후경... 답사객이 많다..

 박은 묘에서 의문이 갔던 내용들이 면봉기사비 뒷면에 새겨져있다.

 

박숭질(?∼1507(중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가(仲嘉)·중소(仲素). 우의정 은(訔)의 손자이며,

부윤(府尹) 훤(萱)의 아들이다.
1457년(세조 3)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고, 내외직을 거쳐 1490년(성종 21)대사헌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동지중추부사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3년에는 형조판서로 정조사(正朝使)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빙자하여 사퇴하였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02년(연산군 8) 삼도입거도순찰사(三道入居都巡察使)가 되었고 1504년 우의정, 2년 뒤에

좌의정이 되었다. 당시는 연산군의 폭정이 절정에 달하여 벼슬을 버리고자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석달 동안 등청하지 않다가 추국(推鞠)을 받은 뒤 면직되었다.
중종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1507년(중종 2)에는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공순(恭順)이다. 
 

 

 박숭질의 묘비... 이렇게 큰 비석이 묘 앞에 버티고 있으면 별로 좋지못하다..

부인 정씨의 이름이 연산군 때 자주 등장하는데... 오죽하면 일부러 말에서 떨어졌을까...?

 박숭질 묘 청룡쪽 문인석... 재질이 안좋은지 손상이 심하다..

 박숭질 백호쪽 문인석..

 박숭질 묘의 청룡자락 끝.지금은 도로로 인해 잘렸지만 약 10여m 더 나가 있었을것으로 추측.

 박숭질 묘의 백호자락... 우측도로로 절단되긴 했어도 힘이 넘쳐나서 후손들이 돈은 벌었을

것이다. 우측 산에 박숭질의 할아버지 좌의정 박은 묘가 있다.

 박숭질 묘의 후경.. 안산이 아주 좋은데 점점 건물들이 들어서니 이것도 볼 수 없을것 같다.

 

반남박씨는 조선조에서 좌의정 4명(박은,박숭질,박세채,박회수) 우의정2명(박종악,박규수)을

배출하였는데 적은 수의 씨족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한데는 조상 묘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풍수고찰-현장토론>

ㅇ 박은 묘 : 명당이 넓고 안산이 좋아 후손의 돈이 많을 것으로 보임

ㅇ 박숭질 묘: 산진처에 썼지만 너무 내려쓴 형태, 백호가 크게 감고돌아 부자가 나옴

 

박은 묘에서 동영상

 

박숭질 묘에서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