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강항 선생 묘와 내산서원...

터잡이야초 2009. 10. 26. 23:53

강항 (姜沆 1567∼1618)

 

조선 중기 학자.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사숙재(私淑齋). 영광 출생.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93년 전주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서관정자·가주서·교서관박사를 거쳐 1596년 공조좌랑에 이어 형조좌랑이 되었다. 1597년 휴가로 고향에 머물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 군량미 수송임무를 수행했고 남원이 함락당하자 고향으로 내려와 김상준(金尙寯)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고향인 영광마저 함락당하여 가족과 함께 해로를 통해 탈출하려다가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 오쓰성[大津城(대진성)]에 유폐되었다.

이곳에서 일본의 승려 요시히도[好仁(호인)]와 교류하며 그로부터 일본의 역사·지리·관제 등을 알아내어 《적중견문록(賊中見聞錄)》에 수록, 몰래 본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1598년 교토[京都(경도)]의 후시미성[伏見城(복견성)]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후지와라 세이카[藤原醒窩(등원성와)]·아카마쓰 히로미치[赤松廣通(적송광통)] 등 학자와 교류하며 성리학을 가르쳤고, 특히 후지와라는 그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일본 주자학의 개조가 되었다.

두 일본학자의 도움으로 1600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고 1602년 대구교수(大邱敎授), 1608년 순천교수(順天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향리에서 독서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다.

일본 억류 중 사서오경의 화훈본(和訓本) 간행에 참여, 그 발문을 썼고, <곡례전경(曲禮全經)> <소학(小學)> <근사록(近思錄)> 등 16종의 글을 수록한 《강항휘초(姜沆彙抄)》를 남겨 일본의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소장되어 있으며, 《역대명의전략(歷代名醫傳略)》의 서문을 썼다.

영광의 용계사(龍溪祠)·내산서원(內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운제록(雲堤錄)》 《강감회요(綱鑑會要)》

《좌씨정화(左氏精華)》 《간양록(看羊錄)》 《문선찬주(文選纂註)》 《수은집(睡隱集)》등이 있다.

 

내산서원 안내도...

 

내산서원 설명...

 

수은 강항 선생 상

 

내산서원 홍살문...

 

내산서원 주산... 앞쪽에서 봐도 역시 멋있는 귀봉이다..

 

내산서원은 중출맥에서 약간 어긋나 위치해 있다.. 터가 좁아서 그런것 같다..

 

내산서원 전경...

 

내산서원 충의문...

 

내산서원 수은정...

 

 

내산서원에서 바라본 조안산... 역시나 멋있다...

 

날씨가 흐려 조산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강항 선생 묘...

 

강항 선생 묘비...

 

원래 묘비... 숙부인 진주김씨 부상.. 이라 적혀있다...

 

강항 선생묘는 품(品)자형의 묘소로... 조금은 특이한 묘 배치가 되어있다.

맨위가 본부인 강씨, 백호쪽이 이씨, 청룡쪽이 강항선생이다. 원래 이런 형태는 앞쪽 백호쪽이

주인공이 들어가고 앞쪽 청룡쪽이 본부인, 윗쪽이 두번째 부인이 들어가는게 상례다.

 

강항 선생 묘 안산... 둥그스런 부봉으로 재물이 넘친다...

 

강항선생 묘 조안산... 멀리 조산의 귀봉이 아주 멋져 보인다...

사격에 힘쓰다보니 정작 용혈은 급락지에 자리해서 많은 분들이 자리가 아니라고 하신다...

 

조용필의 간양록을 올려본다.

 

 

간양록 . . .조용필

이국~땅 삼경이~면~밤마다~ 찬서리고
어버이 한숨 짖는~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으리

어야어야 어야어야 어~야~ 어~어
어야어야 어야야~어야어~어~

피눈~물로 한줄 한줄~간양록을 적으니
님그린 뜻 바다되어 하늘에 닿을세라
어야어야 어야어야 어~야~ 어~어
어야어야 어야야~어야~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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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 끌려온 이내몸
밤마다 시린 바람 온몸으로 맞으며
새벽에 눈을떠 달을보니 두고온 어버이 한숨이 들릴듯 하다
마음은 벌써 고향으로 달려가는데 몸이 닿지 못하니
내어버이는 그누가 돌본단 말인가
피같은 눈물로 한줄한줄 피끓는 사연 써내려가니
내님 그리는 마음이 바다같고 하늘같구나

 

看  羊  錄

조선선비 왜국 포로가 되다

 


▲  강항 선생의 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