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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계산을 한 바퀴 돌아보며....

터잡이야초 2011. 1. 7. 10:44
지리산에서 조계산에 이르는 길가에는 무슨 꽃 마을이란 이름이 없어도
모두가 꽃 마을이다...
구례 쪽은 어디를 가도 산수유가 널려 있고 광양, 순천 쪽 길가에는
매화 마을에서 본 것과 같이 매화 꽃이 집단으로 핀 마을이 여기저기에
산재되어 있다.
아직은 푸르름이 부족한 산야에 하얀 매화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고 운전대를 잡은 사람 조차
덩달아 환호성에 이끌려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도는 어디를 가나 이와 같으니 굳이 관광지를 따로 정하고 갈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조계산 기슭에 이르니 길이 좁아지며 다소 복잡해 보인다.
그래도 선암사까지는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쉽게 찾았다.
3월말 주말의 선암사......
호젓한 절 입구를 들어서니 공기부터가 청량하게 다가온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적당히 뒤섞여 있어 황량함이 덜 하고 옆으로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완만한 길은 나들이 삼아 걷기에 안성맞춤인 그런 황토길이다.


선암사 부도밭과 공사 중인 선암사 승선교

새소리와 더불어 중천에 떠있는 봄 햇살을 달갑게 맞으며 걷다 보니 부도밭이
나타난다. 특이하게 생긴 부도가 눈에 띄는데 화엄사의 사사자삼층석탑을
닮은 그런 부도다. 이 부도는 화산대사부도로 20세기에 세워진(1928년 무렵)
부도라 한다.
바로 길을 돌아서면 그 유명한 승선교(보물 400호)가 나타난다.
어찌 보면 선암사는 승선교 하나를 보기 위해 들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이날은 승선교 보수공사로 인해 다리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승선교 아래에서 다리 사이로 바라보이는 강선루의 모습이 천하의 명경이라는
소문을 많이 들었던 차에 이처럼 공사를 한다고 천막으로 둘러쳐 놓았으니
왠지 헛걸음을 한 듯 마음이 허전해져 온다.

선암사는 다른 절집에서 느끼던 고풍스런 맛이나 문화재에 대한 호기심 보다는
절집의 아름다움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내가 찾은 날에도 스님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영산홍 가지가지 마다 벌레를
잡는다고 일일이 훑어 내리는 걸 보고 이곳의 아름다움이 그저 얻어진 게
아니라는 걸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나무 한그루 돌맹이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배치하고 다듬고 하여 이룬 것이리라...


선암사 일주문 입구 작은 폭포와 선암사 뒷간

삼인당(알처럼 생긴 연못)을 지나 언덕 끝에 이르면 성보박물관이 나타나는데
그 아래로 떨어지는 계곡물이 작은 폭포수를 이루어 가쁜 숨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선암사 일주문은 다른 절과 다르게 가파른 언덕을 올라 오른쪽으로 돌아야지만
만날 수 있다.
이곳도 공사가 진행 중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옆길로 해서 들어가니 스님 한 분이
반갑게 맞이한다. 어색하게 합장한 체 두리번 거리는 데 기와불사를 하라고
하신다......
못이긴 체 그 자리를 벗어나 성보박물관에 들어가보니 선암사의 각종 유물이
진열돼 있다. 대각국사 의천의 진영(보물 1004호)이 있는데 약 200 여 년 된 것이다.

선암사의 여러 당우 중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해우소다.(여기서는
뒷간이라고 쓰여있다) 이곳은 해우소의 대표격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만
내가 본 바로는 해우소를 이용하는 사람은 없고 오직 구경군만 들락날락
하고 있었으니 본말이 전도된 듯 보였다.
해우소가 해우소의 역할을 못하면 이것이 어찌 아름다운 건물이 될 것이며
사랑을 받겠는가? 절집에서는 해우소에 칸막이라도 해서 대중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 해우소는 丁(정)자 모양으로 지어진 동양 최대라는 뒷간인데 그 깊이가
어찌 깊던지 용변을 보고 나서 승선교 쯤 내려와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니
허허......도솔천이 그리 깊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는 되는가 보다...


선암사 매화터널-이렇듯 사람 없이 찍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이즈음 선암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은 대웅전 뒤편 뒷산 쪽 담장가에 핀
매화 꽃 터널이다. 매화의 종류도 여러 가지로 담장을 따라 오르다 보면 코끝으로
스며드는 매화 향기를 감당키 어렵다.
이곳은 우리네 속세의 교통 병목 현상처럼 참배객들로 인해 체증이 항상 이는
곳이다. 그만큼 아름다움에 취하고 향에 취해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곳이다....
선암사를 찾을 때는 여유로움은 필수일 것이다.
시간의 여유로움과 함께 마음의 여유로움이 같이 어울려야 진정한 선암사를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며 돌아 볼 수 있게 된다.
저 아름다운 승선교는 언제나 보수가 끝나 다시금 바라볼 수 있을꼬........


낙안읍성 입구와 낙안읍성 동헌

조계산을 중심으로 동쪽엔 선암사가 서쪽엔 송광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가자면 낙안읍성을 거치게 되어 있는데 낙안읍성은
우리나라 읍성 중 사람이 현재까지 살고 있는 단 하나의 읍성이다.
내 고향의 고창읍성이나 해미읍성 등은 모두 10여 차례 다녀왔지만
낙안읍성은 지금껏 한번 가보지 못했기에 해가 벌써 서산 쪽으로 몸을 기운
시간이었지만 성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전통을 지키면서 옛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낙안읍성 주민들이 노력하고 있는
흔적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그곳에 계신 분들의 노고를 우리가 어찌 쉽게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작은 것에서부터 지붕, 골목에 이르기까지 민속마을로써의 품격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전봇대를 세우지 않고 땅 속으로 전선을 모두 넣었으며 가로등이나
현대적인 시설들은 짚으로 싸서 겉보기에는 짚 더미처럼 보이게 한 것 등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흔적이다.
현대인들이 어디 옛 생활양식으로 옛 집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되는가...? 아마도
생활의 불편이 따를 것이다.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낙안읍성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옛 모습 그 자체를 열심히 관람하고 이야기를 쉼 없이 나누는데
나는 어찌 여기 분들의 생활 불편 쪽으로만 눈길이 갈까...?
일행 중에서 한마디 한다. 그것도 병 이여~~~ㅎㅎㅎ
아이들과 함께 꼭 한번은 다녀와야 할 곳으로 생각이 든다.
부모님들은 감회 어린 눈으로 이곳을 돌아보시더니 발길을 뗄 줄 모르신다.
해는 벌써 조계산을 넘어가고 우리 일행은 송광사를 들렀다 가야 하는데도 말이다....
부모님께 죄송스러움을 안고 낙안읍성을 뒤로 한 체 부지런히 송광사를 향해
내 달린다....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송광사......
산사의 어둠은 다른 곳 보다 빨리 찾아 온다. 부지런을 떨었지만 송광사에 도착할 때는
사위가 어둑어둑해질 때 쯤이었다. 송광사 입구의 벚꽃 나무는 겨우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이곳은 아직도 싸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겨울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일주문에 이르는 길은 여느 사찰처럼 운치가 넘치고 편안한 길이다.


송광사 일주문과 일주문 현판

그런데 일주문에 이르자 포크레인 소리하며 망치 소리하며 기계 톱날 소리 등
여기저기 기계음이 들리는 것으로 봐 한창 공사 중임을 알 수 있다. 모두 석탄일에
맞춰 공사를 하는 듯 싶다.
내가 그렇게 많은 절집을 다니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절집의 느낌 정도는
말할 수 있는데 이곳은 그야말로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우선은 절집이 아늑한 맛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각종 공사가 어지럽게 진행되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정도이다. 박물관도 석탄일까지는 폐쇄한다고 하여 유물도
볼 수가 없었고 삼보사찰로서 이름이 있는 곳을 찾아 왔건만 어디 한군데 다닐 수
조차 없었다. 국사전(국보)에도 출입이 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절집이 스님들이 수양하는 곳이지만 어느 사찰을 가도 국보급 문화재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데 이곳은 모두가 절집 편의로 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특이한 형태의 송광사 대웅전과 선암사 승선교를 모방한 송광사 다리

시간도 늦었지만 실망도 커 대충 둘러보고 내려오고 말았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부문이 있는지 좀 더 확인해본 연후에 꼭 다시금 이곳을
찾아와 봐야겠다. 그 때도 그러는지......

지친 몸을 이끌고 여행을 마치고자 하니 갈 길은 멀고 피로감이 엄습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있어 내색도 할 수 없어 두 눈 부릅뜨고 앞만 보고 달리니
남도의 들판이 어스름에 모두 잠을 청하는 듯 그 화려했던 낮 시간의 모습들은
보이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향마저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눈 요기가 없는 콧요기-향기-는 왠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오감이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감상이 되는가 보다.
오감의 한 축을 이어가고자 일행은 지금 먹거리를 찾아 나선다.
여행의 참 맛은 볼거리 뿐만 아니라 오히려 먹거리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오늘은 화엄사 입구로 가서 대통밥에 산채나물로 식도락을 탐해야겠다.....
출처 : 불혹전후
글쓴이 : 소올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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