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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순국선열 묘역 #21]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터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3. 1. 12. 10:00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터
포털사이트 <다음> 지도에 나와있는 선열들의 묘역 위치가 실제위치와 많이 다르다. 그래서 내가
수정요청한 것만 해도 아마 20여개는 될듯 싶다. 이번 북한산 순국선열묘를 올리면서도 너무나 많이
틀려서 다음지도 측에 수정요청을 했더니 오늘에사 수정된 내용으로 표기되었다. 이제사 제대로 된
위치가 표시되었다.
지청천장군 묘는 북한산에 있던 것을 1994.4월 국립현충원에 천장하였고 현재 북한산에는 묘비만
남아있다. 지금은 무성한 수풀속에 묘비만 있고 묘터는 나무를 식재하여 그 흔적만 조금 보인다.
아직까지는 묘역의 사성과 흔적들이 조금씩 남아있지만 이것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사라질 것이다.
답사객들이 간간이 있었는지 사람 발길 흔적이 보인다. 아마도 나같은 사람들이 몇몇은 있으리라...
지청천(池靑天)
1888(고종 25)∼1957. 독립운동가·정치인.
호는 백산(白山). 본명은 대형(大亨), 일명 이청천(李靑天). 서울 출신.
한말 무관학교(武官學校)에 입교, 2학년 때 1, 2년생 40여 명과 함께 정부유학생으로 동경육군중앙유년학교(東京陸軍中央幼年學校)에 들어갔다.
이 때는 본명인 지대형을 사용하였다. 유년학교는 뒤에 일본사관학교 예과가 된 3년제이며, 다시 본과 2년이 있는데, 유학 도중 한일합병이 되어 본과에는 일반 학생으로 편입하는 곤경을 겪었다.
제26기생으로 1913년 졸업, 중위가 되면서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일무력항쟁을 지도하기 위해 일본의 병서와 군용지도를 가지고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찾았다.
독립군 간부양성에 진력하고 1920년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만주군정부(滿洲軍政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간부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 일본이 혼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하고 청산리싸움에서 대패하자, 일본군은 무차별 살육을 감행하였다.
이에 서로군정서를 이끌고 간도성(間島省)안도현(安圖縣) 밀림으로 이동, 서일(徐一)·김좌진(金佐鎭) 등과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고 군단의 여단장이 되었는데, 이때 이청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921년 6월 소련혁명군과의 마찰로 흑하사변(黑河事變)이 났을 때 포로가 되었으나, 북만주로 탈출하여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을 조직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북만주에는 신민부(新民府)·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대한의용군사회(大韓義勇軍事會)가 생기게 되고, 남만주에는 서로군정서가 모태가 되어 대한통군부(大韓統軍部)가 조직되었다.
그 뒤 양기탁(梁起鐸)·오동진(吳東振) 등과 함께 대한통군부를 개편하여 정의부를 조직, 군사위원장 겸 사령장이 되었고, 1925년에는 남·북만주의 두 단체를 통합하여 국민부를 만들었다.
김좌진이 저격당한 뒤, 1930년 7월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창당에 참여, 군사위원장이 되었으며, 별도로 한국독립군을 만들어 총사령관이 되었다.
1932년에는 동아혈성동맹(東亞血成同盟)의 간부로서 각지의 항일단체를 규합하는 데 힘썼다. 1933년 치치하얼(齊齊哈爾)에 잠입하여 항일지하운동을 지휘하면서 한중연합군의 총참모장이 되었으나, 중국 공산당의 압력으로 무장해제 당한 뒤, 같은 해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 한국인 특별반을 만들어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1940년 9월 17일 임시정부가 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하자 사령관이 되어 1945년 환국할 때까지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환국 후 26개 청년단체를 통합한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을 창설하여 단장이 되었다.
제헌국회의원과 초대 무임소 장관을 역임하고 제2대 국회의원, 민주국민당의 최고위원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터 서울시 강북구 수유4동 산127-1 강북구청
▼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터 위치 (지도#21번)
21 지청천 묘터
서울
1888~1957한국광복군의 총사령관으로 무장독립운동을 전두지휘, 1949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1947 제2대 국회의원 김병로 우측 계단 ▼ 북한산 순국선열 묘역 전체보기
▼ 북한산 순국선열 묘역(2)-아카데미하우스, 4.19묘역 일대
▼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터 입구▼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터로 오르는 계단... 무너져 흔적만 남아있다.
▼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기적비... 묘는 국립현충원으로 옮겨갔지만 묘비(기적비)는 그대로 남아있다.
▼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터에 남아있는 장군의 기적비 전,후,측면
▼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터로 오르는 계단
▼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터 자리.. 묘는 없어지고 잡초만 무성하다
▼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터... 가운데 부분이 묘 자리
▼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 입수도두 자리에서 바라본 후경... 가운데 봉긋 솟아있는 곳이 과저 묘 자리..
▼ 동작동 국립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소에 있는 백산 지청천(池靑天)장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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