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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은평]숙용심씨 묘표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1. 11. 18. 10:00

    숙용심씨 묘표

     

    한참 전에 일본에서 반환된 묘표가 있다고 신문에서 봤는데 간간히 글이 올라와서 위치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정확

    하지않아 여기도 시간나면 가야지 하고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 은평 뉴타운 쪽 묘지를 답사하면서 함께 다녀왔다.

    아드님이신 영산군 이전 묘역 앞쪽 작은 언덕에 모셔져 있다. 일대는 은평뉴타운 공사가 한창이라 터를 파놓아서 어수선

    하게 보인다. 가을이 깊어지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바라보니 묘표만큼이나 산하도 아름답다.

    숙용심씨(淑容沈氏)
    미상∼1652년(효종 3).
    성종(成宗)의 후궁으로 2남 2녀를 낳았으니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 영산군(寧山君) 이전(李恮)과 경순옹주(慶順翁主), 숙혜옹주(淑惠翁主)이다. 기타 내용은 찾을 수 없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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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5호
       숙용심씨 묘표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126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126(영산군 묘 전방 50미터)
       SH공사(이홍구)


     

     

     

     

     

     

     

     

     

     

    숙용심씨 묘표는 이수(이首)의 이무기의 힘찬 움직임과 운문(雲文)이 빼어나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숙용심씨는 죽은 후 서울 근교에 예장(禮葬)하였으나 묘가 실전되었다. 그러다가 부산일보 동경지사장으로 있던 최성규(崔性圭)씨에 의해 일본 토쿄도(東京都) 미나토구(港區) 아카사카(赤坂)에 있는 한 작은 공원에서 묘비와 이에 부수되는 듯한 석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문중 대표가 수차 일본을 방문하여 증빙자료를 제시하고, 현지 관청 공무원과 협상을 한 결과 2000년 7월 3일 현지 지방 관청의 허락을 받아 유물을 해체하여 귀국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문에는 이와 같은 반환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대리석으로 된 묘표는 전면에 “淑容沈氏之墓”라고 쓰여 있으며, 빼어난 조각미로 인해 왜병들에 의해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이며 우수한 조각 솜씨 등 예술성과 역사적인 유물로써의 가치가 있다. 

    <은평구 문화관광 사이트에서 인용>

     

     

     

     

     

     

     

     

     

     

     

    ▼ 숙용심씨 묘표 전경..

     

     

     

     

     

     

     

     

     

     

     

     

    ▼ 숙용심씨 묘 뒷쪽에 보이는 묘가 아들 영산군 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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