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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홍진도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4. 24. 10:00
남양홍씨 묘역(홍진도 묘)
서신면 남양홍씨 묘역을 아무런 준비없이 오르면 맨 오른쪽 부터 가게 된다. 차를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민가에 댄뒤
거기 계신 분에게 여쭤보니 친절하게 대해주신다. 다른 분들은 모르고 남양군 묘는 알고 있다고 가르쳐주신다.
묘역의 맨 오른쪽에 있다보니 제일 먼저 가게된다. 문화재 안내판은 마을 입구쪽에 있어서 들어갈 때는 지나치기 쉬운데
나오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곳에 있는 다른 분들의 안내판은 신도비 근처라든가 묘역 바로 아래에 있어서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데 홍진도 묘 안내판은 너무 앞쪽이어서 차라리 묘역 앞에다 세워놓는게 좋을듯 보인다.
홍진도는 홍담의 증손으로 그 윗분들은 다른 곳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듯 보인다. 서신면 홍법리에도 여기저기 묘역이 보였지
만 시간관계상 많이 알려진 곳만 다녀왔다.
홍진도(洪振道)
1584년(선조 17)∼1649년(인조 2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유(子由).
동지돈령부사 홍희(洪喜)의 아들이다. 아버지 홍희가 인조의 외조부인 구사맹(具思孟)의 사위여서 인조와 이종사촌 형제이다.
1613년(광해군 5) 처음 별제(別提)를 거쳐 목천현감이 되고 의금부로 전임되었다. 광해군의 정치가 문란해짐을 보고 나라를 바로잡기 위하여 구굉(具宏)‧신경진(申景禛) 등과 모의하니 아우 홍진문(洪振文)도 이에 참여하였다.
광해군이 능창군(綾昌君)을 살해하자 능창군의 형인 능양군(綾陽君: 뒤의 인조)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집을 반환하자, 그의 집을 능양군에게 헌납하였다. 이들을 의심한 광해군이 능양군의 아버지 원종(元宗)이 죽었을 때 조객(弔客)들을 주시하였으나, 그는 두려움없이 끝까지 장례를 치렀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공조좌랑에 특진되고,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어 남양군(南陽君)에 봉하여졌다.
그뒤 공주목사를 거쳐 1645년(인조 23) 사은 겸 주청부사(謝恩兼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1635년 병자호란 때 신경진 등과 화의(和議)를 주장하였으며, 그뒤 판의금부사‧한성부판윤‧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목(忠穆)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경기도 기념물 168호 남양홍씨 묘역(홍진도 묘) 경기도 서신면 홍법리 산30 남양홍씨(토홍계) 남양홍씨 묘역
<안산시 문화관광사이트에서 인용>
◆ 화성 남양홍씨 가계도 홍익생(洪益生) 홍귀해(洪貴海) 홍형(洪泂) 홍언필(洪彦弼) 홍섬(洪暹) 홍언광(洪彦光) 홍담(洪曇) 증손 홍진도(洪振道) 홍한(洪瀚) ▼ 홍진도 묘역
▼ 홍진도 묘 안내판
▼ 홍진도 묘 안내판에서 바라본 홍진도 묘... 왼쪽 파란색지붕 집 뒷쪽으로 맨 윗 묘가 홍진도 묘다.
묘 안내판이 너무 앞으로 나와있어서 들어갈 때는 그냥 지나치게 된다.
▼ 홍진도 묘역 전경
▼ 홍진도 묘에는 묘비가 없어서 신도비를 읽어봐야 누구 묘인지 알 수 있다.
중간쯤에 남양부원군 홍공 휘 진도라고 보인다.
▼ 홍진도 신도비
▼ 홍진도 묘 측경
▼ 홍진도 묘 석물
▼ 홍진도 묘 근경... 다른 묘보다 동자석이 크다고 안내판에 나와있다.
▼ 홍진도 묘 입수도두... 태풍에 나무가 부러져 있다.
▼ 홍진도 묘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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