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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공원묘지#29]해관 오긍선(吳兢善) 묘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11. 14. 10:00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
망우리에 우리나라 의학계의 선구자 두분이 계시는데 지석영과 오긍선이다. 앞서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지식인들이 일제시대라는 터널을 통과하면서 훌륭한 일도 많이 했고 초창기의 대쪽같은 지조도 갖췄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허물들을 거의 모두 쓰고 있다. 어떤 잣대로 봐야할 것인가는 판단자의 몫이고
공과를 명확히 기록하는 것과 역사에 끼친 영향, 나라발전에 미친 영향은 또 다른 기록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망우리에 계시는 독립운동가들도 친일명단에 올라가신 분들이 여럿 있다. 이런 글을 쓰면서 조금은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풍수라는 미래학문을 연구하는 일을 하다보니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족지도자들도 미래를 알았다면 아마도 끝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었겠지... 사람들의 일이란 한치를 내다보기 힘든게 사실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하루에도 열두번씩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데 누구를 탓하랴....?
오긍선(吳兢善)
1879년(고종 16)∼1963년. 의학자‧사회사업가.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극(重克), 호는 해관(海觀).
아버지 오인묵(吳仁默)과 어머니 한산이씨(韓山李氏)사이의 장남으로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8세부터 한학을 공부하여, 상경 후 내부주사(內部主事)를 지냈으나 개화의 물결로 1896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협성회(協成會)‧독립협회‧만국공동회 간부로 활약하다가 일제에 의해 체포령이 내려져 피신하면서 공주‧논산‧군산 등지에서 선교사의 개인교사를 하였다.
1902년 미국유학을 하여 센트럴대학 교양학부를 수료하고, 켄터키주 루이빌의과대학에서 수학하고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07년 루이빌시립병원 인턴으로 들어가 6개월간 피부과를 전공하였고, 같은해 10월 미국남장로회선교부로부터 한국파견 선교사자격을 얻어 6년 만에 귀국, 전라북도 군산 야소병원장에 취임하여 본격적인 의료봉사사업을 시작하였다.
1909년 군산에 영명중학교(永明中學校)를 설립하여 교장직을 맡아가며 청소년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구암교회도 설립하였다.
1910년 봄, 군산을 떠나 전라남도 광주로 가서 광주야소교병원장에 취임하고, 1911년에는 목포야소교병원장으로 전임하여 목포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교장직도 겸임하였다.
1912년에는 남장로회 선교부 대표자격으로 세브란스의학교 조교수 겸 진료의사로 취임하였는데, 이는 한국인 교수로는 첫 등용이었다.
1916년 4월부터 1년간 일본 동경제국대학 의학부에서 피부비뇨기과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피부과를 신설하여 과장 겸 주임교수로 피임되었다.
1919년에는 경성보육원(京城保育員)을 설립하여 고아양육사업을 시작하고, 1934년 2월에 에비슨교장 후임으로 제2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으며, 교장취임을 축하하는 명예이학박사와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미국 센트럴대학과 루이빌대학에서 각각 받았다.
1942년 1월 일제의 압력으로 교장직을 사임한 뒤로 보육사업에만 전념하였다.
광복 후에는 관계진출의 권유를 뿌리치고 안양기독보육원장으로서만 진력하였는데, 그간 조선피부비뇨기과학회 명예회장, 대한성서공회이사장, 기독청년회이사, 서울여자의과대학 재단이사 등을 지냈으며, 구황실재산관리총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서울특별시 시민보건위생공로감사장, 민간사회분야 사회사업공로표창, 대한의학협회 의학교육공로표창, 정부의 공익포장(公益褒章), 새싹회의 소파상(小波賞) 등을 수상하였다.죽은 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증되었다...<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공원묘지(묘지번호 No.203636) 망우리묘지관리소
▼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 위치 (지도#29번)
29 오긍선(吳兢善) 203636 해관(海觀) 1878~1963 의학자, 사회사업가 ,친일명단 연보비 윗쪽, 해주오씨영역, 감찰오인묵적선비, 가족묘 ▼ 해관 오긍선(吳兢善) 연보비
▼ 해관 오긍선(吳兢善) 연보비 뒷면
▼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가 있는 해주오씨 가족묘역
▼ 해주오씨 가족묘 전경... 오긍선 묘는 맨 윗쪽 우측 묘이다.
▼ 묘는 봉분없이 대리석으로 덮은 특이한 형태다.
▼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 전경
▼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비...
▼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비 측,후면
▼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지번호
▼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 측경
▼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 측후경
▼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 후경
▼ 해관 오긍선(吳兢善)의 부친 감찰 오인묵 묘
▼ 해관 오긍선(吳兢善)의 부친 오인묵 묘 후경
▼ 해관 오긍선(吳兢善)과 사촌간이라고 나오는 오창선 묘
▼ 해관 오긍선(吳兢善)의 아들 오한영 묘
▼ 해관 오긍선(吳兢善) 묘역 맨 아랫쪽에 있는 정희라리 묘
▼ 해관 오긍선(吳兢善) 부친 오인묵 적선비...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 나온 이야기로는
군산지방의 소작인들이 송덕비를 세우고자 해서 오인묵 생전에 비석을 만들었으나 오긍선이 생전에
비석을 세우는 것은 옳지 못하다하여 논바닥에 묻었다가 사후에 세운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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