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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 순국선열 묘역 #1]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2. 12. 24. 10:00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고등학교 교과서에 폐허 동인에 대해 무작정 외우고 시험치르고 할 때 오상순에 대해 알았는데 그의 호가

    특이해서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된 것 같다. 그는 담배를 너무나 애용해서 호를 꽁초로 지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별로 없다. 페허 동인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염세적인 글을

    썼을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번에 북한산 순국선열 묘역을 답사하면서 그의 묘가 북한산에 있다는 것을

    알고 별도로 찾아가서 답사하고 왔다. 북한산 자락의 대부분의 묘들이 깊은 계곡의 용맥위에 있다보니

    수기가 많고 그늘이 드리워져서인지 잔디에 이끼가 많은 묘들이 많다. 이곳 묘역의 잔디는 일반 잔디가

    아니라 특이하게 생긴 풀을 잔디 대신에 심어놨다. 오후 늦게 찾아서인지 묘역이 온화하지 못하고 습한

    기운이 있어서 느낌이 별로 좋지 못했다. 다음에 좀 더 햇살이 비추는 날에 찾아가서 묘역을 다시 확인해

    봐야 할 듯 하다.

    오상순(吳相淳)
    1894∼1963. 시인.
    서울 출신.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처음에는 선운(禪雲), 뒤에 공초(空超). 『폐허(廢墟)』 창간호에서는 성해(星海)라는 필명을 쓰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오태연(吳泰兗)이다.
    어의동학교(於義洞學校: 지금의 효제초등학교)를 거쳐 1906년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였다. 그 뒤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오상순은 원래 기독교 신자로서 1919년 교회 전도사로 있었으나 그 뒤 불교로 개종하여 1921년 조선중앙불교학교(朝鮮中央佛敎學校), 1923년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전국 여러 사찰을 전전하며, 참선과 방랑의 생활을 계속하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오상순의 문학 활동은 1920년 폐허 동인에 가입하여, 김억(金億)·남궁벽(南宮璧)·황석우(黃錫禹) 등과 친교를 맺으면서 『폐허』 창간호에 자신의 인생관과 문학관을 담은 수필 「시대고와 그 희생」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글에서 오상순은 자신의 ‘폐허의식’이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결부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어 1921년 『폐허』 2호에 「힘의 숭배」·「힘의 동경」·「힘의 비애」·「혁명」·「때때신」·「돌아!」·「가위쇠」 등 시 17편 및 평론 「종교와 예술」을 발표함으로써 폐허 동인 중 『폐허』에 가장 많은 작품을 게재한 시인이 되었다. 이 밖에 1920년 『개벽(開闢)』 11월호에 「의문」·「어느 친구에게」「나의 고통」 등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보아 오상순의 시는 어휘 구사가 생경하고 언어의 감각적 사용에도 그리 능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방랑(放浪)의 마음」(조선문단, 1935) 등 몇몇 작품에서는 사물의 심상화(心象化)를 성공적으로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오상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으로 「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호흡이 길고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여러 사실을 차례로 제시하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1956년에 예술원상, 1962년에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생전에 발간한 시집은 없고 1963년 제자들에 의하여 『공초오상순시집(空超吳相淳詩集)』이 간행되었다. 유해는 수유리에 안장되어 있고 1963년 여기에 「방랑의 마음」 첫머리를 새긴 시비가 건립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문화재명칭 
     소재지 
     관리자(연락처) 

       미지정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127-1
       해주오씨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위치 (지도#1번)    

     

    1

    오상순 서울
    (1894~1963)
    시인, 호 공초, 1920년 폐허동인, 1954 예술원 종신회원
    1930 불교중앙학교 교수
    빨래골공원지킴터 지나 삼성사,철문열림

     

    북한산 순국선열 묘역(총괄) 바로가기

     

    ▼ 북한산 순국선열 묘역 전체보기  

    ▼ 북한산 순국선열 묘역(1)-빨래골, 냉골 일대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전경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입구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안내문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비.. 앞면에 그의 시 방랑의 마음 앞부분이 새겨져 있다.

    방랑의 마음 - 오상순(吳相淳)

    흐름위에
    보금자리친
    오! 흐름위에
    보금자리친
    나의 혼......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이하 생략>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전면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우측에 세워진 이상한 조형물...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백호자락에 있는 조형물... 다른 묘의 망주석같이 세워져 있는데 한쪽만 있다.

    ▼ 윗부분에 구멍이 4면에 뚫어져 있는데 이는 꼭 장명등의 창처럼 느껴진다.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측경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입수도두...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후경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청룡, 백호쪽 후경

     

    ▼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가는 길.. 북한산 빨래골 공원지킴터를 지나 오르다보면...

    ▼ 빨래골 유래 안내판이 보이고...

    ▼ 계속 더 오르면 공원 화장실 건물이 나온다. 

    ▼ 화장실 뒷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좌측 언덕 윗쪽에 묘가 보인다.

    ▼ 화장실에서 5분정도 오르면 왼편에 공초 오상순(吳相淳) 묘 안내판이 하얗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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