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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도봉]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세종2녀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3. 1. 31. 10:00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정의공주묘는 길 옆에 있어서 자주 봐왔지만 한번도 묘역 안으로 들어가보질 못했다. 물론 이 묘역은

    담장을 듬성듬성하게 하여 누구나 쉽게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였고 사진촬영도 큰 무리없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하다, 다만 안에 들어가야 묘비나 묘표의 내용을

    확인하고 촬영할 수 있는데 그게 힘들다.

    아침 일찍 도착하여 묘역을 한바퀴 빙 둘러봤다. 이 일대는 사천목씨, 죽산안씨 종중이 자리잡고

    있어서 같이 묶어서 답사를 하면 별 어려움이 없이 세곳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날도 세군데를 한데 묶어 돌아보았다. 사람이 없을 때 돌아보면 사진을 찍기 쉬어서 좋은데

    묘역을 오르내리다보면 그래도 누군가 같이 움직이는 편이 훨씬 든든하다. 아무래도 음기가 센 곳이라

    혼자보다는 같이가는 것이 음양의 조화면에서도 좋으니까...

    별 정보없이 무작정가도 크게 복잡하지 않지만 그래도 동선을 아끼며 시간을 절약하려면 미리

    묘역을 잘 보고  한꺼번에 답사할 수 있도록 동선을 잘 짜야한다. 처음 갈 때는 항공지도를 보고

    계획을 잘 세우길 바란다. 참고로 이곳 방학동 답사에 참고할만한 블로그가 있어 소개한다.

    나도 이 블로그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 고마움을 표했는데 '배철식의 LIFE'에 가면 방학동 묘지에

    대해 아주 자세히 나와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배철식의 LIFE 바로가기)

    일설에 의하면 정의공주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전국에 풍수가들을 보내 좋은 땅을 추천 받아

    오라버니 세조에게 부탁하여 이땅을 차지했다고 전한다. 시루봉에서 맥이 내려와 사천목씨

    목서흠의 묘역을 일구고 한줄기를 백호로 뻗어 죽산안씨 묘역을 일구는데 그 산진처에 해당하는 곳에

    정의공주 묘가 있다. 후경을 찍기 위해서 뒤로 가야되는데 접근로가 만만찮다. 빙둘러서 가야한다.

    공주의 바람대로 몇 백 년이 흘렀는데도 양명한 기운을 유지한체 잘 관리되고 있으니 백성들이 보고

    배워 모두 명당타령을 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정의공주(貞懿公主)
    1415년(태종 15)∼1477년(성종 8).
    세종(世宗)의 둘째 딸로 모친은 소현왕후심씨(昭憲王后沈氏)이다. 관찰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에게 하가하였다.
    안맹담은 1462년에 죽었다.
    1469년(예종 1)에 정의공주는 남편인 안맹담이 죽자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상‧중‧하를 간행하였다. 이책은 보물 966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정의공주와 안맹담의 묘소와 신도비가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번지에 있다.
    정의공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록은 《죽산안씨대동보(竹山安氏大同譜)》에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다.
    “世宗憫方言不能以文字相通 始製訓民正音 而變音吐着 猶未畢究 使諸大君解之 皆未能 遂下于公主 公主卽解究以進 世宗大加稱賞 特賜奴婢數百口” 즉 세종이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안맹담(安孟聃)
    1415년(태종 15)∼1462년(세조 8). 조선 전기의 사인.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덕수(德壽).
    조부는 서북면도순문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里使)와 평양부윤(平壤府尹)을 지낸 봉익대부(奉翊大夫) 안숙로(安淑老)이고, 부친은 함길도도관찰출척사(咸吉道都觀察黜陟使)와 함흥부윤(咸興府尹)을 지낸 가선대부(嘉善大夫) 안망지(安望之)이다. 모친은 봉상시주부(奉常寺主簿) 허지신(虛之信)의 딸이다.
    1428년(세종 10) 세종의 딸인 정의공주(貞懿公主)와 혼인하여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지고 숭정대부(崇政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1432년(세종 14)에는 연창군(延昌君)에 봉해졌으며,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다. 1444년(세종 26) 다시 광덕대부(光德大夫)가 되었다. 1453년(단종 1) 성록대부(成祿大夫)에 가자(加資)되고, 1457년(세조 3) 수록대부(綬祿大夫)에 올랐다. 그리고 그 해 8월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면서 부친 안망지는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우의정(議政府右議政)에 추증되었으며, 모친은 정경대부인(貞敬大夫人)의 봉호를 받았다.
    초서와 말타기를 잘하였으며, 음률(音律)에 통달하였다. 약물(藥物)에도 해박하였고, 불법(佛法)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전한다.
    1462년(세조 8) 48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이듬해 2월 25일 양주(楊州) 도봉산(道峰山) 해촌동(海村洞) 묘원에 묻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정보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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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명칭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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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서울특별시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전경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안내판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남향이고 산진처에 위치하여 양명한 기운이 감돈다.

    ▼ 세종의 2녀 정의공주 묘역... 뒤로 시루봉이 보인다.. 금성체로 부를 상징한다.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담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근접촬영을 시도했다.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의 멋진 모습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석물

    ▼ 안효공 안맹담 신도비

     

     

    ▼ 북한산둘레길 표지목

    ▼ 포토존에서 촬영한 정의공주 묘역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밖으로 세워놓은 문인석... 아마도 묘역을 정리하면서 나온 석물일 것이다.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으로 내려가는 용맥...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후경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후경.. 앞쪽에 안산이 거의 보이지 않으나 다행이 앞쪽 아파트가

    멋진 안산을 만들었다.

    ▼ 죽산안씨 재실에서 묘역으로 올라가는 입구

    ▼ 안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아래에는 그의 후손인 안종해(청주목사)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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