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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35)3․1독립운동기념터;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1. 21. 09:00

     

    표 석 명

    3․1독립운동기념터;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임시관리번호

    종로35

    설치연도

    1993

    표석문안

    1919년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한용운(韓龍雲) 선생이 중앙학림 학생들과 전국 불교인들의 시위 계획을 논의하던 곳.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명륜1가 5

    찾아가는 길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북쪽으로 직진 혜화동로타리-->600m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좌회전 70m 카페 앞

    관계되는 내용

    중앙학림 (中央學林)

     

    1915년 11월에 개교한 불교계 교육기관
    중앙학림이 불교계 민족운동의 거점으로 떠오른 것은 3·1운동 전야인 1919년 2월 28일 밤 한용운이 계동 유심사 자신의 처소로 신상완ㆍ백성욱ㆍ김대용ㆍ오택언ㆍ김법린ㆍ박민오 등 중앙학립 학생들을 불러 독립선언서 3천 매를 전달하고 시내를 비롯한 각처에 배포할 것을 지시하면서부터였다. 한용운의 지시를 받은 학생들은 인사동 범어사 포교당으로 자리를 옮겨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협의하고, 중앙학림 기숙사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배분하였다. 그리고 3월 1일 당일 서울시내 각 처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한편, 범어사ㆍ해인사ㆍ통도사ㆍ동화사 등으로 내려가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특히 신상완ㆍ백성욱ㆍ김대용ㆍ김법린 등 4명은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신상완과 백성욱은 국내특파원으로 5월 중순 다시 귀국하여 불교계를 거점으로 지하신문 [혁신공보]를 발행하고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중앙학림 학생들은 1920년 창립된 조선불교청년회와 불교유신회에 참여하여 불교개혁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중앙학림 자리에는 1928년 4월 불교전수학교가 2층 양옥 벽돌교사를 신축하고 문을 열었다. 불교전수학교는 1930년 4월 중앙불교전문학교로 승격, 1940년 6월 혜화전문학교로 개청, 1946년 9월 동국대학이 되었는데, 이 자리는 1947년 9월 동국대가 중구 필동3가 26번지로 이전할 때까지 교사로 사용되었다.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에서 인용

     

    ▼ 3․1독립운동기념터;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표석

    혜화동에 우암 송시열의 집터가 있어서 일찌기 찾았었는데 흥덕사터는 눈에 들어왔는데 중앙학림 독립운동기념터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알고 찾아가는데도 잘 보이지 않는다. 글자의 음각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래저래 이 표석은 눈에 안띄게 만들어져 있다고 봐야한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된거지만 중앙학림과 중앙학교(중앙고등보통학교)는 전혀 다른 학교였다. 한용운의 유심사가 중앙고등학교 부근에 있다보니 착각한 것이다. 아무튼 3.1운동 때 만해선생과 함께 중앙학림 학생들이 크게 활약을 하게 된다.

     ▼ 3․1독립운동기념터;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표석

     ▼ 3․1독립운동기념터;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표석은 (주)효천공영 건물 앞에 있다.

     ▼ 3․1독립운동기념터;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표석

     ▼ 3․1독립운동기념터;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표석은 그라운드 씬 빌딩 앞인데...

     ▼ 건물이름이 잘 안보인다. 삼거리에 있으니 찾기는 쉬울 것이다.

     ▼ 3․1독립운동기념터;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표석 위치(혜화역부터...)

     ▼ 3․1독립운동기념터;중앙학림 (獨立運動紀念址) (中央學林) 표석 위치... (로타리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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