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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92)우포도청 터(右捕盜廳址)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2. 8. 09:30

    표 석 명

    우포도청 터(右捕盜廳址)

    임시관리번호

    종로92

    설치연도

    1995

    표석문안

    포도청은 조선시대 도성 안팎의 치안과 순찰을 담당하였던 관청으로서 좌우 포도청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서쪽 지역을 담당하였던 우포도청 자리.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세종로동 139

    찾아가는 길

    5호선 광화문역 5번출구-->20m 동아일보 사옥 앞 화단내

    관계되는 내용

    우포도청(右捕盜廳)

     

    조선시대 서울의 서,북부와 경기우도를 관할하던경찰서
    포청(捕廳)으로 약칭되기도 하였다. 포도청은 조선 초기에는 설치되지 않았으나 중기 이후 상설되었고, 포도대장은 비변사와 의정부에 당연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포도청은 성종 때 좌, 우 양변으로 조직되고, 중종 이후 포도청으로 존속하다가, 고종 31년 7월 경무청으로 개편될 때까지 지속된다. 포도청은 경관직에 소속된 관아로서, 그 관할구역은 도성 및 성저 10리 일대와 경기도에 한했다. 우포도청은 서부 서린동 혜정교 남쪽(서울 동아일보사 일대)에 위치하여 서울의 서,북부와 경기우도를 관할했다. 포도청은 원칙적으로 한성부를 관할 구역으로 했다. 한성부는 경관직으로서, 왕궁을 관할했다. 한성부의 치안을 포도청이 맡았다는 것은 왕권 보호를 우선으로 했음을 말한다. 관할 구역은 나중에 성 밖 10리에다 경기도까지 포함되고, 지방에도 포졸을 파견하기도 한다.
    포도청은 병조에 딸린 무관직소로, 순조와 고종 때에는 좌 ·우 포도청에 각각 포도대장(종2품) 1명, 종사관(종5품) 3명, 군관 70명, 포도부장 4명, 포도군사 64명, 무료부장 27명, 가설부장 6명, 겸록부장 32명, 서원 4명, 사령 3명 등이 있었다. 좌 ·우 포도청에서는 각기 8패로 나누어서 패장 8명과 군사 64명을 동원해서 담당구역을 순찰하였다. 1894년 포도청을 합하여 경무청으로 개편하였다.

    <문화콘텐츠닷컴에서 인용> 

     

    ▼ 우포도청 터(右捕盜廳址) 표석... 집회가 자주 있는 곳이라 표석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 

    ▼ 우포도청 터(右捕盜廳址) 표석

    ▼ 우포도청 터(右捕盜廳址) 표석... 세월호 사건 때문에 두번이나 찾은 곳...

    ▼ 우포도청 터(右捕盜廳址) 표석<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우포도청 터(右捕盜廳址) 표석<네이버 거리뷰에서 옮겨옴>

    ▼ 우포도청 터(右捕盜廳址)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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