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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97)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 터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2. 8. 12:00

    표 석 명

    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 터

    임시관리번호

    종로97

    설치연도

    1999

    표석문안

    이언저리는 이이(李珥) 이율곡(1536 ~ 1564)선생이 살던 절골 집터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

    찾아가는 길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좌회전하여 골목길 따라 끝 태화빌딩까지 직진 -->우측대각선길(MARK 호텔과 우리은행 사이)-->골목길 끝 외환은행 앞에서 우회전-->50m 백상빌딩 화단 내 큰나무 아래 위치

    관계되는 내용

    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 터

     

    이이(李珥: 1536~1584년)는 외가인 강원도 강릉 북평촌北坪村 오죽헌烏竹軒에서 태어났으며, 조상의 고향인 경기도 파주 율곡栗谷에서 성장하였다. 또한 황해도 해주 수양산 서쪽, 지금의 황해도 벽성군 석담石潭등지에서 거주하였다.
    그러나 관직에 있을 때 거주하였을 한양의 집 위치는 명확히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선조 17(1584)년 1월 16일 한양 대사동大寺洞 우사寓舍(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사는 집)에서 별세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대사동, 즉 오늘날 종로구 인사동 관훈동 일대에서 거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1958년 김영상이 지은『서울명소고적』114면은 종로구 관훈동 197번지로 밝힌 바 있다. 현재 <이율곡선생 살던 집 터>라는 제목을 가진 표석은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에 있다.
    그런데 아래 기록을 통하여 이이는 한양 장동壯洞에서도 살았으며, 장동의 집은 이이의 사후 180여년이 지난 뒤에도 남아 있었는데 그곳에 황해도 해주海州에 있었던 이이의 사당이 이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계미(영조 39, 1763)년 3월 2일 율곡 선생 사당이 해서(海西: 황해도)로부터 장동 옛 집으로 되돌려 모셔지니 선비들이 교외로 나가 맞이하였다. -중략(中略)- 함께 나아가서 사당을 뵙고 절하였다. 박사해(朴師海),『 창암집(蒼巖集)』

    조선시대 한양의 장동은 작게는 한성부 북부 순화방 내, 지금의 종로구 효자동과 창성동에 걸친 마을 이름이며, 크게는 북악산 남쪽, 경복궁 서쪽, 인왕산 동쪽에 있던 마을들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장동이란 이름은 창의문의 다른 이름인 장의문藏義門, 章義門 또는 자하문紫霞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장동은 앞서 살펴본 대은암동과도 크게는 같고 작게는 이웃한 마을이다. 따라서 이이는 막역한 친구인 송익필과 아주 가까운 곳에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이의 장동집은 인접한 곳에 있었던 성수침, 송익필 등의 집과 마찬가지로 서인과 노론의 학문과 당파의 연원淵源으로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각별하게 보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블로그 오월의 세상이야기에서 발췌> 

     

    ▼ 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 터 표석 

    ▼ 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 터 표석

    ▼ 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 터 표석

    ▼ 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 터 표석

    ▼ 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 터 표석<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이율곡(李栗谷)선생 살던 집 터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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