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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표석](종로98)의금부 터(義禁府址)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2. 8. 12:30
표 석 명
의금부 터(義禁府址)
임시관리번호
종로98
설치연도
1987
표석문안
조선조(朝鮮朝) 관리·양반 윤리에 관한 범죄를 담당하던 관아자리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공평동 100
찾아가는 길
1호선 종각역 1번출구-->20m 제일은행 화단 내
관계되는 내용
의금부(義禁府)
조선시대 특별사법 관청. 조옥(詔獄)·금부(禁府)·왕부(王府)·금오(金吾)라 부르기도 하였다. 포도(捕盜)·순작(巡綽)·금란(禁亂)의 임무를 관장하였다. 정약용(丁若鏞)은 “의금부가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관가이고 순찰하는 책임이 없으니 금오라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몽고의 지배를 받던 고려는 충렬왕 때 치안 유지를 위한 군사조직으로 순마소(巡馬所)를 설치하였다. 그것은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사평순위부(司平巡衛府)로 명칭을 바꾸면서 포도(捕盜)·순작(巡綽)·금란(禁亂)의 임무를 계속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종 초에 순위부(巡衛府)·의용순금사(義勇巡禁司)로 칭호가 바뀌었다. 의금부의 전신들은 왕조 창립과 왕권 확립에 공헌하였다. 순작과 범법자 처리 등의 임무를 계속 보았다.
그 뒤 왕권이 안정되어 정치·군사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 재정의 궁핍을 해결하기 위한 용관(冗官 : 중요하지 않은 벼슬아치) 정리책으로 1414년(태종 14) 의용순금사를 의금부로 개편해 사법 전담기관으로 독립시켰다. 그리고 녹관(祿官)을 없애 구전관(口傳官 : 無祿官)을 둔다 했는데 구전관 배치는 잘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
의금부는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의금사로 이름이 바뀌고 법무아문(法務衙門)에 속하였다. 다음 해에 고등재판소(高等裁判所)로 바뀌었다. 다시 1899년에 평리원(評理院)으로 개편되었다.의금부는 사법기능 외에 여러 임무도 담당하였다. 왕명을 받들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거나 그 밖의 잡무에 종사하였다. 즉, 왕명으로 실정을 파악하거나 민폐를 금지하는 임무를 수행하거나, 몰수한 죄인의 재산을 처리하거나, 소방서에 해당하는 금화도감(禁火都監)의 주된 구성원으로 의금부의 관원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고사장(考査場)의 금란임무를 수행했고, 나례의식(儺禮儀式)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의금부의 위치는 한성부 중부 견평방(堅平坊 : 현재 종로구 견지동)에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 의금부 터(義禁府址)표석
▼ 의금부 터(義禁府址)표석
▼ 의금부 터(義禁府址)표석... 뒤로 삼성 종로타워가 보인다.
▼ 의금부 터(義禁府址)표석<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 의금부 터(義禁府址)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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