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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념표석](종로101)이문 터(里門址)
    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2. 9. 09:00

    표 석 명

    이문 터(里門址)

    임시관리번호

    종로101

    설치연도

    2001

    표석문안

    이문은 세조의 명의로 밤사이 마을을 살피기 위해 서울의 주요 골목 입구마다 설치한 일종의 방범초소이다. 주민들이 번갈아 올라가 마을을 살핌으로써 도둑을 막고 화재를 방지하는 등 치안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문은 임진왜란 전까지 100여 개소가 있었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2가22-2

    찾아가는 길

    1호선 종각역 11번 출구-->90m 던킨도너츠 앞 도로변 화단

    관계되는 내용

    이문 터(里門址)

     

     1930년대까지 남아있었다는 인사동 이문 사진을 보면 다락이 달린 2층 기와 문루로 판자문을 통해 그 골목에 사는 동민이 출입하게 돼 있다. 그 이문 안에 있는 집이 10호면 2명, 20호면 3명, 30호면 4명, 40호 이상이면 5명씩을 주민이 번갈아 차출하여 이 다락 위에 올라 도둑을 감시하는 야경소인 것이다.

    철종 때 안동김씨 세도가 주름을 잡던 무렵, 그 세도의 핵심 인물이요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 대감이 그 인근 교사동에 살고 있었다. 이 이문안의 막걸리와 곰탕 술국이 맛있기로 소문나 있어 어느 하루 하인에게 알리지 않고 탕건에 동저고리 바람으로 이 이문안 목로집을 찾아 들렀던 것 같다. 맛있게 먹고 보니 돈을 갖고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옛날 양반이 손수 돈을 몸에 지닌다는 것은 체통에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돈을 갖고 다니는 버릇이 붙지 않았던 때문이다. 신분을 모르는 터인지라 곰탕값을 아이를 시켜 가져다 주겠다고 해도 처음 본 손님 누가 믿느냐고 안 된다 하고 그럼 아이 하나 딸려 보내라 해도 그까짓 돈 세 푼에 바쁜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막무가내였다. 곤궁에 빠져 있는데 허술한 몰골의 막벌이꾼이 대신 곰탕값을 내주며 가시게 하라고 하였다. 성씨를 물었지만 막벌이꾼은 고개를 흔들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김병국 대감은 그 후 막벌이꾼의 인심에 자극받아 사리사욕에 찌든 조정의 병폐를 통감하고 그의 정치철학을 바꾸었다 하며 이것이 연유가 되어 ‘이문안 술국값’하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를 뜻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문안 막걸리 맛도 대단했던지 궁중에서 마시는 어용주를 이 이문안에서 대었기로 그 공로로서 이 목로집 주인은 선달이라는 벼슬을 받고 한 해에 1,000석을 받는 국고 선혜청의 창고지기로 발탁되었다 한다.

    <'이규태의 600년 서울/조선일보사'에서 발췌> 

     

    ▼ 이문 터(里門址) 표석 

    ▼ 이문 터(里門址) 표석.. 종각역 KFC 건너편 도로변 화단 내에 위치 

    ▼ 이문 터(里門址) 표석 

    ▼ 이문 터(里門址) 표석<네이버 거리뷰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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