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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표석](종로105)자수궁 터(慈壽宮址)여행등산/기념표석답사 2014. 12. 13. 12:30
표 석 명
자수궁 터(慈壽宮址)
임시관리번호
종로105
설치연도
2001
표석문안
자수궁은 조선조 광해군 때에 세운 궁궐이다. 조선 건국 초에는 북학이라는 학당이 이곳에 서 있었으나 광해군 8년(1616) 경희궁 일대에 왕의 기운이 서린다는 풍수설이 나돌아 광해군이 이 기운을 차단할 목적으로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표석위치(주소)
서울 종로구 옥인동 45-1
찾아가는 길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570m 조흥은행 효자동지점 좌회전 -->200m 필운대로 사거리 우회전-->70m 옥인동 군인아파트 정문 앞
관계되는 내용
자수궁 터(慈壽宮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에 있었던 궁궐.
풍수지리가인 성지(性智)와 시문용(施文用) 등에 의하여 인왕산왕기설(仁旺山王氣說)이 강력히 제기되자 광해군이 인왕산의 왕기를 누르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1616년(광해군 8)에 인왕산 기슭의 민가를 헐고 승군을 징발하여 자수궁과 인경궁(仁慶宮 : 지금의 사직동 부근)·경덕궁(慶德宮 : 뒤의 경희궁)의 세 궁궐을 지었다.
자수궁이 지어진 곳은 오학의 하나인 북학(北學)의 자리였였다. 인조가 반정한 뒤 경덕궁만 남겨두고 인경궁과 자수궁을 폐지하면서 자수원(慈壽院)이라 이름을 고친 뒤 이원(尼院 : 僧房)이 되었다. 후궁 중에서 아들이 없는 이는 이원에 들어와 있게 하였으므로 한때 5,000여 명의 여승이 살았다.
그 뒤 1661년(현종 2)에 여승의 폐해가 심하여 부제학 유계(兪棨)의 상계(上啓)로 폐지시키면서 어린이들은 환속시키고 늙은이들은 성 밖으로 옮기게 하였다. 1663년자수원의 재목으로 성균관 서쪽에 비천당(丕闡堂)을 세우고, 또 일량재(一兩齋)와 벽입재(闢入齋)를 세웠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 자수궁 터(慈壽宮址) 표석
▼ 자수궁 터(慈壽宮址) 표석
▼ 자수궁 터(慈壽宮址) 표석...옥인동 군인아파트 정문 담벼락에 붙어있다.
▼ 자수궁 터(慈壽宮址) 표석<다음 로드뷰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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