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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아산]맹사성 부친 맹희도(孟希道) 묘
    카테고리 없음 2015. 1. 21. 10:00

     

    맹사성 부친 맹희도(孟希道) 묘

     

     풍수지리연합체인 대한민국풍수지리연합회가 출범한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처음부터 연합회 창립에 관여한 본인으로서는 참으로 뿌듯한 일이다. 지난 연말에 송년 기념 답사로 충남 아산을 찾았다. 그중 외암마을과 외암선생 묘, 맹사성 부친 맹희도 묘 등을 둘러보았다.

     아산에서 설화산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매우 크다. 맹씨행단이 간방(艮方)에 위치하고 외맘마을이 곤방(坤方)에 위치한다. 이곳 맹희도 묘는 설화산을 멀리 조산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잡았다. 어떤 분은 회룡고조형이란 말을 쓰는데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백호가 한바퀴 돌아 본신안산을 이루고 있어 명당을 잘 막아주고 있다. 그러나 백호가 낮게 둘러있고 안산이 배를 내밀고 있으며 우선수에서는 청룡이 역관을 해주어야 음양조화가 맞는데 이런 면에서는 다소 미흡한듯 보인다. 재혈에서도 윗쪽의 부인 흥양조씨의 묘가 정혈로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맹희도(孟希道)

     

     본관은 신창(新昌), 호는 동포(東浦)이다. 군수를 지낸 맹유(孟裕)의 아들이며,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걸쳐 재상을 지낸 맹사성(孟思誠)의 아버지이다. 고려 말기에 한성윤(漢城尹)·전교부령(典校副令)·전교령(典校令)·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등을 지냈으며, 공양왕(恭讓王) 때 정치가 혼란해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충청도 온양(溫陽)의 오봉산(五峯山) 밑에 기거하면서 조선의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부모의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움집에 흰제비(또는 흰까마귀)가 둥지를 짓고 슬피 울자 부모를 여읜 슬픔에 젖은 그도 따라서 통곡을 멈추지 않아 그 효성이 널리 알려졌다고 전한다. 이에 고려 공양왕 때와 조선 태조 때 그의 효행을 기려 정려(旌閭)를 내렸다. 충청남도 아산시 법곡동에 묘가 있으며, 아산맹씨행단(牙山孟氏杏壇)의 뒤편의 세덕사(世德祠)에 아버지 맹유, 아들 맹사성의 위패와 함께 봉안되어 있다..

    <두산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비지정

    문화재명칭

    맹사성 부친 맹희도(孟希道) 묘

    소재지

    충남 아산시 법곡동 산 6-1

    관리자(연락처)

    신창맹씨대종회

     

    ▼ 맹사성 부친 맹희도(孟希道) 묘.. 묘표와 향로석이 묘하에 있다.

    ▼ 맹사성 부친 맹희도(孟希道) 묘..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 맹희도(孟希道) 묘 입구에서 바라본 설화산... 우측산이 백호본신안산이다.

    ▼ 맹희도(孟希道) 묘표..永樂甲辰(1424년)에 세웠다고 되어 있다. 

    ▼ 맹희도(孟希道) 묘.. 묘 앞에 작은 연못을 조성하였는데 비보의 일종이다.

    ▼ 맹희도(孟希道) 묘 청룡방 석물..

    ▼ 맹희도(孟希道) 묘 백호방 석물..

    ▼ 맹희도(孟希道) 묘 후경.. 안산 너머에 보이는 웅장한 산이 설화산이다.

    ▼ 맹희도(孟希道) 묘 위에 방형의 조선초기 묘가 있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다. 그런데 같이간 일행들이 맹희도의 부인 흥양조씨 묘라고 말한다..

    ▼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흥양조씨 묘가 정혈처에 있다고 한다...

    ▼ 맹희도(孟希道) 묘 윗쪽에 조상님들의 단이 마련되어 있다. 신창백은 두가지로 나오는데 맹자(孟子)의 50대손 맹우현이 고려 원종 때 국자감을 지냈고 그의 세째아들 맹리(理)가 시중을 지내고 신창백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신창으로 한다는 것과,  맹의(儀)가 충선왕 때 신창백(新昌伯)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신창(新昌)으로 하게 되었다고 하는 두가지로 관련 내용이 나온다... 맹의-맹유-맹희도-맹사성-맹귀미-맹계증-맹석경으로 이어진다. 맨 오른쪽 맹계증은 맹사성의 손자다.

    ▼ 맹희도(孟希道) 묘 입구에 있는 신창맹씨 대종회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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