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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광주]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노물재(盧物載)
    답사는 즐거워/묘지답사 2019. 1. 20. 10:00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노물재(盧物載)


    조선초기에 크게 일어난 가문을 보면 왕실과 친인척, 또는 사돈간으로 좀 과장되게 말하면 족벌체계로 이뤄졌다고 볼 수도 있다. 교하노씨 가문도 혼인으로 인해 왕실과 인연이 많았다. 왕실 사람들과 혼인을 한 것이 아니라 처가집으로 인연을 맺은 것이 다르다. 

    노물재의 부친은 우의정 노한이다. 노한은 민제의 셋째사위로 태종과 동서간이다. 민무질 옥사 때 옥고를 치뤘다. 노물재는 심온의 둘째사위이다. 첫째 따님이 세종대왕의 왕비 소헌왕후이시다. 셋째사위가 강석덕으로 강희안, 강희맹의 부친이다. 아버지 노한에 이어 노물재도 왕의 친동서로 막강한 힘을 가졌다.

    본인은 크게 영달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으나 그의 아들 노사신이 영의정이 되니 증 영의정이 되어 교양부원군에 봉해졌다. 

    노물재의 묘는 광주 용마산 아래에 있는데 이곳은 삼정승의 묘가 있다고 해서 삼정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즉 노물재, 안망지(세종 정의공주 시아버지), 우의정 권진의 묘가 있는 곳이다.

    이곳 묘역은 국세가 아주 잘 짜여 있고 명당이 시원하며, 조안산이 멋진 곳으로 아주 빼어난 곳이다. 얼마전 다녀온 파주 노한, 노사신 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곳이다. 

    노한, 노사신 묘 바로가기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노물재(盧物載)


    ?∼1446(세종 28).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교하(交河). 할아버지는 천우위대호군(千牛衛大護軍) 노균(盧鈞)이고, 아버지는 우의정 노한(盧閈)이며, 부인은 심온(沈溫)의 딸로서 소헌왕후의 동생이다.

    1431년(세종 13) 유거감찰(謬擧監察)에 임명되었을 때 최안우(崔安雨)의 천거에 사사로움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파직되지는 않았다. 그 뒤 첨지중추부사·동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남회신(南懷愼)·남유신(南由愼)·남사신(南思愼)·남호신(南好愼) 등 4명의 아들이 있었다.

    사망 후인 1455년(세조 1) 원종공신 2등에 봉해졌고, 같은 해 부인이 죽자 부의는 물론 곡식과 종이·관곽까지 하사받았다. 1490년(성종 21)에는 노물재의 재산상속시 유서 중에 첩자에게는 재산상속을 하지 말라는 문구가 있어 문제가 되었다.

    이것은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상속법과 상치하기 때문에 조정의 논란이 되었으나, 의금부의 계에 따라 첩자에게도 상속이 되어 유서보다 상속법이 우선한 일례가 되었다. 특별한 재능은 없었으나 외척의 신분으로 2품의 품계에까지 올랐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문화재지정 

    미지정

    문화재명칭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노물재(盧物載)

    소재지

    경기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 산60-5(주차 삼성리 271-2)

    관리자(연락처)

    교하노씨 창성군파

     

    ▼ 노물재(盧物載)는 노한(盧閈)의 아들이면서, 노사신(盧思愼)의 아버지이다. 노물재(盧物載) 묘 전경

    ▼ 노물재(盧物載) 묘 진입로

    ▼ 노물재(盧物載)는 태종의 처조카이면서, 세종의 친동서가 된다.

    ▼ 노물재(盧物載) 묘 전경

    ▼ 노물재(盧物載) 묘비... 후에 교양부원군에 봉해졌다.

    ▼ 노물재(盧物載) 묘 측경

    ▼ 노물재(盧物載) 묘 문인석...

    ▼ 노물재(盧物載) 묘 청룡쪽 문인석

    ▼ 노물재(盧物載) 묘 입수도두

    ▼ 노물재(盧物載) 묘 후경... 조안산이 멋지다.

    ▼ 노물재(盧物載) 묘 국세...

    ▼ 노물재(盧物載) 묘 파노라마... 빈틈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근자에 절단된 도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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